【베이비뉴스 소장섭 기자】
무상보육을 도입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보수 정권이었습니다. 당연히 보육 철학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표를 의식해 갑작스럽게 무상보육의 도입이 결정됐습니다. 제대로 된 준비과정을 거쳐 도입되지 않은 무상보육은 사회적 갈등을 촉발시켰습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예산 문제로 강하게 맞붙은 것입니다.
2019년 현재, 문재인 정부 3년차입니다. 무상보육은 과연 발전하고 있을까요? 표면적으로는, 예산 문제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갈등하는 일은 더 이상 없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무상보육이 곪아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부모 대신 보육료를 지급하겠다고 해놓고는, 정작 보육료 지원 단가를 동결시킨 것입니다. 물가도 오르고, 월급도 오르지만 보육료는 매년 제자리입니다.
만 3~5세 누리과정 지원단가는 현재 22만 원입니다. 2013년 이후, 현재까지 한 푼도 오르지 않고 그대로 22만원입니다. 올해로 7년째 동결입니다. 같은 기간 만 0~2세 보육료는 평균 3.5%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그마저도 2013년, 2014년, 2017년에는 동결이 됐었습니다. 만 3~5세 누리과정 보육료는 아예 멈춰있었고, 만 0~2세 보육료도 아주 조금 오르는데 그친 것입니다.
보육료가 오르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면, 보육의 질이 그만큼 낮아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질 낮은 무상보육은 한마디로 죄악입니다. 어린이집 운영비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보육교직원의 인건비와 아이들의 급간식비입니다. 보육교직원 인건비는 현재 최저임금 수준이고, 아이들이 급간식비는 1745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현행 영유아보육법 제34조 제4항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린이집 표준보육비용 등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예산의 범위에서 관계 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비용을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금까지 표준보육비용을 2005년과 2008년, 2013년, 2018년 네 차례 계측했습니다.
2013년에 약 2억 5000만 원을, 2018년에는 1억 8000만 원을 투입해 표준보육비용 계측을 진행했는데요. 이렇게 많은 예산을 들여서, 표준보육비용을 조사하면 뭐합니까? 실제 보육료를 산정할 때, 반영을 해야 하는데 보육료를 정할 때 표준보육비용을 반영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헛돈만 쓴 꼴입니다.
내년부터, 정부는 3년에 한 번씩 표준보육비용을 조사해야 합니다. 지난해 통과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에 내년부터 시행되는 것입니다. 애초 3년에 한 번씩 표준보육비용을 조사하고, 표준보육비용 이상으로 보육료가 책정될 수 있도록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지난해 국회에서 심의되면서 ‘속빈 강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표준보육비용 이상으로, 보육료가 책정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삭제된 것입니다.
하지만, 올해 국회에서는 표준보육비용 이상으로 보육료가 책정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영유아보육법 개정이 다시 추진됐습니다. 최도자, 남인순, 김세연, 임이자, 윤상현, 김동철, 인재근 의원 등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같거나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각각 대표발의했습니다.
이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최소 3년에 한 번씩은 보육료가 자동적으로 인상될 수 있게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 수준도, 실제 보육현장에서 필요한 만큼인 표준보육비용 이상으로 책정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처우도 개선하고, 우리 아이들의 급간식비도 올리려면 이 법안들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꼭 통과돼야 합니다.
이 법안들은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원회 안건으로 올라가 있습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국회 복지위는 4차례의 법안소위 회의를 가졌지만, 이 법안들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여당 측에서는 ‘예산 수반 법안은 기획재정부의 반발이 크다’고 변명합니다. 보육 철학이 부재한 정권의 수준 낮은 변명일 뿐입니다. 정부와 여당이 앞장서서 챙기지 않으면, 이번 법안은 폐기 처리되고 말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정말 아이 키우는 문제에 대해서 철학이 있다면, 또 깊어가는 저출생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한다면 이번 기회에 쇠퇴해가는 무상보육을 살려야 합니다. 예산 확보도 하지 않은 채 무상보육을 시작한 정권과 보육료 지원 단가 인상에 전혀 관심 없는 정권이 무슨 차이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상보육의 완성, 문재인 정부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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