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뽀뽀할 때도 '결재'를 받아야 합니다
아이에게 뽀뽀할 때도 '결재'를 받아야 합니다
  • 칼럼니스트 문선종
  • 승인 2019.12.1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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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문선종의 '아빠공부'] 보니하니 사건과 아이의 '자기결정권'

지난 10일 EBS 교육방송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 유튜브 채널 라이브 방송 중, 여성 청소년 진행자 채연이 남성 출연자 ‘당당맨’ 최영수의 팔을 잡자 최영수가 갑자기 뒤돌아 채연을 때리는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 노출됐다. 다른 출연자에 가려 명확하게 폭행이라 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누리꾼들은 ‘퍽 하는 소리가 났고 정황상 폭력’이라며 이를 ‘청소년 폭행’이라 정의했다. 

논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보니하니'에서 ‘먹니’로 활동하는 개그맨 박동근이 과거 채연에게 한 성희롱 발언과 욕설도 수면 위에 떠올랐다. 시청자 게시판에 항의글이 폭주했고, 이는 국민청원으로까지 번져 15일 기준 7만 8462명이 ‘청소년 방송인을 향한 폭력에 대한 진상규명’에 동의했다.

이 사태에 '펭수'가 그토록 부르던 EBS 김명중 사장은 직접 나서서 사과했고, 긴급회의를 소집해 제작진 전면 교체, 국장과 부장의 보직을 해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두 딸의 아빠로서 이번 이슈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자기결정권’이라는 감수성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보니하니' 사건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청소년 방송인을 향한 폭력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글이 올라왔고, 지난 15일 기준 7만 8462명이 이에 동의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보니하니' 사건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청소년 방송인을 향한 폭력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글이 올라왔고, 지난 15일 기준 7만 8462명이 이에 동의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집에서 시작하는 아이의 '자기결정권' 교육… "아빠가 너에게 뽀뽀해도 될까?" 

보니하니 사건을 놓고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서 그랬다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하는 A 집단과, '이 사건은 청소년에 대한 폭력이야!'라고 주장하는 B 집단으로 나누고, 'B 집단은 A 집단에 비해 감수성이 높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워본다. 지금까지 제작진과 출연자들은 그런 폭력적인 상황을 암묵적으로 동의했을 가능성이 크다. 감수성이 높은 B 집단이 그걸 보고 가만히 넘어갈 리가 없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했다.

당사자끼리는 서로 문제가 없었다지만, 이것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보니하니'는 초등학생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초등학생의 하위문화로 흘러들어 모방 혹은 폭력에 대한 허용적인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감수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미묘한 감수성을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을 '뽀뽀'로 설명해보기로 했다. 두 딸의 아빠로서 나는 아이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뽀뽀하기 전 이렇게 묻는다.

"아빠가 너에게 뽀뽀해도 될까?"

자신의 몸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는 자기 자신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또, 아이가 귀엽다고 함부로 만지거나 아무나 뽀뽀할 수 있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가족을 포함한 외부 사람들이 아이에게 신체적으로 접촉할 때 이렇게 외쳐야 한다.

“귀엽다는 표현으로 아이를 만지고 싶으면 아이에게 허락을 먼저 받으세요!” 

아이는 부모의 이런 모습을 통해 “아! 이런 게 자기결정권이구나!”라고 자연스럽게 배울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 “선종이 많이 컸네~. 어디 고추 한 번 먹어보자!”며 나의 음경을 만진 동네 사람들을 생각하면 36살이 된 지금도 수치스럽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음경을 허락한 적이 없다. 2014년 판례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징역 2년 6개월 감이다.      

첫째의 결재를 받아 뽀뽀하고, 뽀뽀하는 사진도 찍었다. 둘째는 거절했다. ⓒ문선종
첫째의 결재를 받아 뽀뽀하고, 뽀뽀하는 사진도 찍었다. 둘째는 거절했다. ⓒ문선종

◇ 보니하니 사건은 결국 관계의 문제가 아닌 '자기결정권'의 문제

'보니하니' 출연자들에게 ‘자기결정권’이 있었을까? 사건에 대한 입장을 표명할 때, 제작자와 소속사에 ‘문제없음’을 강요받지는 않았을까? 과거 다른 출연자가 채연의 목을 세게 잡는 모습, 채연의 얼굴에 물을 퍼붓는 장면 등 폭력적인 장면이 누리꾼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이런 현장의 분위기들이 쌓여 여성 출연자의 ‘자기결정권’이 무력화한 것은 아닐까? 그것이 무력해지면서 여성 청소년 출연자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작금의 사태를 만들었을 것이다.

최근 성교육이 양성평등과 같은 ‘젠더 감수성’ 교육으로 이어지면서 가끔 나보다 상당히 높은 인식을 가진 아동들을 만날 때도 있다. 34개월 둘째 딸이 귀여워 엉덩이를 꼬집었다가 “아빠, 내 엉덩이 만지면 어떡해?”라는 소리에 첫째 딸까지 가세해 비난의 공세를 받은 적도 있다. 나는 "앞으로 아빠가 조심하겠다"며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고 사건을 매듭지었다.

말인즉슨, 어릴때부터 만들어지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안다면 보니하니 사건은 당사자들 간 '허물없음'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니하니' 제작진은 공식 SNS 계정에 사과문을 올려 "출연자들끼리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심한 장난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나는 이 글 속에서 어렴풋이 제작자들이 출연자들을 사건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객체라는 ‘을(乙)’이기에 ‘자기결정권’은 자연스럽게 갑(甲)인 제작진과 소속사의 소유로 넘어가는 것 아닌가?      

영화 '미쓰백'의 이지원 감독은 아역배우 김시아에게 심리상담을 진행하며 영화를 촬영했다. 아동·청소년이 미디어에 출연할 경우 신체적·정서적 폭력에 대한 치유와 자기결정권의 주체성을 상실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에 맞는 방송사의 가이드라인과 이들을 보호할 촘촘한 장치들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리 부모들은 이번 사건을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야 한다. 한 인격체에 대한 동등함과 주체성의 인정이야말로 미생인 인권이 '완생'으로 가는 길이다. 오늘부터 아이에게 “뽀뽀해도 될까?”라며 결재를 받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됐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활 동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었으며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9년간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수행했고, 현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실에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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