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엄마, 불을 켜두면 어떡해요~. 탄소 발자국이 생기잖아요. 안 쓰는 불은 다 꺼야지.”
해가 들지 않는 아침 시간, 주방 조명을 켜뒀더니 첫째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꺼버린다. “엄마가 요리하는 동안 잘 안 보여서 켰는데” 하니, “아이 참, 아침이잖아요. 불은 밤에 켜야지” 한다.
“아빠! 장바구니 챙겼어요? 마트 갈 땐 장바구니 들고 가야지~.”
아이는 맥주 사러 편의점에 간다는 아빠에게 장바구니를 쥐여준다.
“물을 아껴 써야지. 물 많이 쓰면 탄소 발자국이 생겨서 지구가 더워져. 알아, 몰라?”
세면대에 서서 손을 씻다 말고 물장난을 치는 동생이 못마땅한지 아이는 수도꼭지를 내려 물을 못 나오게 한다. 둘째 아이가 억울한 듯 울음을 터트렸다. 동생이 울든지 말든지 뿌듯한 표정으로 유유히 화장실을 걸어 나온다. 지난달부터 종종 벌어지는 우리 집 풍경이다.
어린이집에서 ‘환경지킴이’ 프로젝트를 하고 난 후 아이는 잊을 만하면 환경지킴이로 변신해 점검에 들어간다. “귤껍질 때문에 음식물쓰레기가 많이 나오겠다”, “가까운 거리는 차 타지 말고 킥보드를 타야 한다”, “분리수거를 잘 해야 한다” 등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어린이집에서 열린 아나바다 장터에 안 쓰는 장난감을 갖고 가, 친구 장난감과 바꿔오기도 했다. 프로젝트를 마친 지 꽤 된 지금도 종종 환경을 생각하는 아이가 기특해 칭찬을 많이 해주고 있다.
어릴 때부터 환경과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특히 지금처럼 미세먼지, 이상기온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선 꼭 필요하다.
집 밖에서 환경지킴이로 변신해 잔소리를 쏟아낼 땐 살짝 난감하긴 하다. 한번은 마트에서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가는 아저씨를 보며 아이는 “장바구니를 꼭 챙겨 다녀야 하는데… 안 그러면 탄소 발자국이 생길 텐데… 장바구니가 없으신가~”라고 중얼거렸다. 아저씨가 들을까 걱정돼 아이를 데리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어찌됐건 다섯 살 아이가 지구를 살리고 환경을 지키겠다며 하는 행동 아닌가. 이 기회에 우리 가족 모두 제대로 환경지킴이가 되기로 했다. 우리 가족의 생활을 돌아보며 지구살리기 약속을 정해 지속적으로 행동하면 아이들도 잊지 않고 꾸준히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된 후 생전 관심 없던 환경과 먹거리 문제에 눈을 뜨고 관심 갖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관심과 나름의 다짐들이 시들해졌던 게 사실이다. 아이는 그 다짐들을 다시금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플라스틱 사용량 1위 국가라고 한다. 해외에 쓰레기를 수출하다 적발돼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해외토픽 뉴스에는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혀 고통스러워하는 바다거북이의 충격적인 모습이 나오고, 바다 곳곳에는 원인 모를 쓰레기 섬이 만들어지고 있다.
나와 관련 없는 이야기 같지만 나와 우리 모두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지나친 더위, 지나친 추위도, 일상이 되어버린 미세먼지도 우리 모두가 만들어내고 있다. 아이 말처럼 어른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탄소발자국을 만들어 지구를 아프게 하는 것이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장바구니 사용하기,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분리수거 잘하기, 음식물 남기지 않기, 꼭 필요한 것만 택배 시키기 등. 우린 이미 잘 알고 있다. 정부에서도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을 금지시키고 장바구니 사용을 권장하는 등 나름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소비를 줄이는 게 환경을 살리는 길이 아닐까 싶다. 싸니까 사고 남들 다 사니까 따라 샀다가 다시 그대로 버리는 나를 발견할 때가 많다. 또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며 잔뜩 버렸다가 필요해서 다시 사야 할 때도 있었다. ‘사지 않으면 버릴 것도 없다’는 마음으로 우리 가족은 꼭 필요한 것만 사는 습관을 갖기로 했다. 아이들에게도 물건의 소중함을 계속 알려 주기로 다짐했다.
소비자로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대형마트나 유통업계가 쓰레기가 아닌 물건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한다. 왜 딸기를 사도, 버섯을 사도, 시금치를 사도 플라스틱 용기까지 덤으로 사는 기분일까? 꼭 필요해서 사는데도 죄책감이 든다.
어쩔 때는 다양한 생활용품을 감싸고 있는 플라스틱 용기나 포장재에 거부감이 들어 물건 사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비닐봉투 없애는 것보다 이런 포장 문화가 개선되는 게 더욱 시급해보인다.
우리 가족은 환경지킴이로 변신하는 아이 덕분에 다시 돌아보고 있다. 아이가 잔소리하기 전에 엄마, 아빠 먼저 앞장서는 환경지킴이가 되겠노라 굳게 다짐해본다.
*정가영은 베이비뉴스 기자로 아들, 딸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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