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은 영유아 번아웃 지름길… '정서지능' 가르쳐야"
"사교육은 영유아 번아웃 지름길… '정서지능' 가르쳐야"
  • 이중삼·최규화 기자
  • 승인 2020.01.14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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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사교육, ‘불안’을 팝니다④] 정윤경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下)

【베이비뉴스 이중삼·최규화 기자】

연간 3조 70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영유아 사교육비. 등골 휘는 비용에도 많은 부모들은 ‘불안’ 때문에 오늘도 사교육을 선택하고 있다. 그 불안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에겐 어떤 대안이 있는 걸까. 베이비뉴스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공동기획으로 열두 명의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가 답을 구했다. - 기자 말

☞ (상편) "한국 영재교육은 틀렸다… 사람 아닌 인공지능 키우는 것"에서 이어집니다.

지난해 10월 2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카페에서 정윤경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를 만났다.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해 10월 2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카페에서 정윤경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를 만났다.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타인에게 착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면서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을 의미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 정 교수는 영유아 부모들은 특히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잘 하는 아이일수록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림대학교 소아청소년정신과 홍현주 교수는 2011년 발표한 논문 「사교육과 아동 정신건강의 연관성 연구」에서 “조기교육은 아이의 정서에 매우 해롭다”고 강조했다. 해당 논문은 하루 4시간 이하로 사교육을 받은 아이 가운데 10% 정도만이 우울 증상을 보인 반면, 4시간을 초과해 사교육을 받는 경우 우울 증상을 보이는 아동이 30%를 넘어섰다는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2016년 육아정책연구소가 발표한 연구보고서 「영유아 사교육 실태와 개선방안 - 2세와 5세를 중심으로」 역시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보고서는 “조기사교육에 집중하게 되면 아동의 정서·사회성 발달을 저해하게 되고 이는 또래관계의 외현화 행동 문제를 발현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외현화 행동 문제는 일탈행동을 개념화하는 행동 구조의 하나로, 공격, 과잉 행동, 짜증 및 비행과 같이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상의 문제를 의미한다.

정 교수는 “아이의 인생 최대의 목표는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부모가 ‘말 잘 들어서 예쁘다’, ‘이거 잘 외워서 예쁘다’ 등의 말은 삼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 교수는 그 이유를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왜곡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그러면서 “부모가 아이를 잘 키우는 방법은 기대를 낮추는 것”이라며, “밥 잘 먹고 내 옆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만으로 좋다는 마음만 가진다면 부모-자녀 관계는 자연스럽게 좋아지기 때문에 모든 것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Q. 사교육이 아이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요?

“영유아 사교육은 ‘영유아 번아웃’, ‘영유아 우울증’에 걸리는 지름길입니다. 아이들은 마음의 병이 몸의 병으로 나타납니다, 스스로 재밌는 걸 찾지 못하고 그저 엄마가 보내는 학원 등에만 익숙해지다 보면 부적응이나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게 되고, 심해지면 우울증에 걸릴 수 있습니다. 유아는 구구단을 어른처럼 외우지 못해요. 하지만 억지로 시키면 또 해냅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아직 유아의 뇌에서 학습할 단계가 아닌데, 부모는 강제로 하게 합니다. 그러면 뇌의 발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뇌의 발달에 따라 가르치자는 거예요. 나이에 맞게 영양제 먹이고 보약 먹이는 것과 똑같아요.

아이들은 자기가 어떤 감정을 숨기는지도 잘 몰라요. 무의식적인 억압에 놓이는 거죠. 숙제 잘하고 잘 외웠을 때 ‘착하다’는 말을 듣게 되면, 자기가 뭘 잘하고 원하는지 따져보려 하지도 않게 됩니다. 아이가 이것저것 엄마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잘 한다면, 좋아하지 말고 오히려 아이의 심리를 의심해봐야 할 일입니다.”

Q. 아이가 심리적으로 불안해하지 않게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결국 엄마들이 자신의 생각의 그릇을 키워야 합니다. 행복하게 산다는 건 뭘까, 여기서부터 논의가 시작돼야 합니다. 우리 아이가 영재일까 아닐까, 교육으로 영재를 키울 수 있을까 없을까,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더 못 해줘서 미안해’라는 마음을 버리고, 중심을 잡고 용기 있게 아이를 키워야 합니다.

좋은 부모가 돼야 하는 건 당연하죠. 그렇지만 아이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부모가 돼야 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미래 사회에 필요한 능력을 우리는 절대 알 수가 없어요. 아이가 스스로 부딪혀보고 스스로 찾는 능력을 키워줘야 합니다. 부모는 그럴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주면 됩니다.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아이가 성공합니다. 아이가 좋은 동료,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도록 사랑받는 사람으로 키우세요. 좋은 부모는 돈 많아서 사교육 많이 시켜주는 부모가 아니에요. 올바른 가치를 주는 부모를 만난 아이가 부모 잘 만난 아이입니다.”

◇ '숙제 잘했네' 칭찬 듣기 위해 자기 감정 숨기는 아이들… "무의식적 억압"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건물 계단에 부착돼 있는 영재교육 학원 로고.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의 한 건물 계단에 부착돼 있는 영재교육 학원 로고.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정 교수가 영유아기에 가르쳐야 할 것으로 강조한 것은 바로 ‘정서지능’이다. 영유아기는 정서지능을 가르칠 적기로, 만 3~5세가 정서지능이 꽃피는 시기라는 것이다.

정서지능은 미국의 심리학자 존 메이어(J. Mayer)와 피터 셀로베이(P. Salovey)가 1990년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이들은 정서지능을 “자신의 감정들과 다른 사람들의 감정들을 점검하는 능력, 구별하는 능력, 그리고 이러한 정보를 이용해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이끄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한마디로 정서지능은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을 잘 이해하고 서로 교감하는 능력을 말한다.

정 교수는 “감정의 에너지”라고 쉽게 설명했다. 정 교수는 “생후 3~4개월만 돼도 아기들은 웃을 수 있고 슬픔이나 분노를 표현할 수 있다”면서, “뿐만 아니라 엄마의 얼굴부터 시작해서 다른 사람들의 정서를 인식하기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기들은 엄마의 웃는 얼굴이나 다른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가장 좋아하는데, 이것은 어린아이도 다양한 정서적 표현을 변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덧붙였다.

Q. 정서지능이란 무엇인지 설명을 더 듣고 싶습니다.

“정서지능은 인간을 동기화 시키는 에너지입니다. 에너지는 강하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약하다고 좋은 것도 아닙니다. 에너지는 잘 써야 좋은 겁니다. 에너지를 잘 느끼고 유능하게 잘 쓰는 능력이 바로 정서지능입니다. 움직이는 모든 것에 정서지능이 있습니다. 슬퍼서 눈물이 나고, 좋으니까 웃고, 이런 것들도 다 정서지능이죠. 예를 들어 내가 옆 사람에게 화가 났지만 그 사람에게서 얻어야 할 것이 있다면 나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웃어야 할 수도 있죠. 이런 것도 바로 정서지능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Q. 영유아기 아이들에게 정서지능을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서지능은 누가 가르칠 수 있냐면, 아이가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만이 가르칠 수 있습니다. 아이들도 언제나 자기 정서를 다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쉽게 말해서 정서지능은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에게서 교육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그런 사람은 바로 부모죠. 아이에게 정서지능을 가르치려면, 먼저 아이의 정서가 자연스럽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좋은 정서는 물론, 나쁜 정서 역시 너무나 자연스러운 정서라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부모 자신은 자기 정서를 빨리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부모한테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 "부모 역할은 코치… 하나하나 계획하고 관리하는 '로드매니저' 돼선 안 돼"

정윤경 교수는 영유아기는 정서지능 가르치기 위해서는 감정코칭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정윤경 교수는 영유아기는 정서지능 가르치기 위해서는 감정코칭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정서지능을 유아기 때 배워야 하는 이유를 분석한 논문도 있다. 「유아의 정서지능 발달을 위한 부모양육태도에 관한 연구」(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정윤경, 2017년)는 “정서지능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학습이 가능하지만, 유아기의 경험이 결정적”이라고 강조했다.

논문은 “유아기에는 스펀지가 주변의 수분을 모두 빨아들이는 것처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예외 없이 이것저것 모두 흡수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특히 “생후 3~4세까지는 정서적인 학습이 어느 때보다 빨리 이뤄지고 정서발달의 토대가 된다”고 강조했다. 논문은 정서지능을 교육하기 위한 방법으로 ‘감정코칭’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논문은 “자녀의 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하고 이를 소화할 수 있도록 돕는 정서조절 코치 역할을 해 자녀가 자신의 정서적 경험을 신뢰하고 자아존중감과 자기효능감을 키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녀 교육에 극성스럽게 관심을 쏟는 부모를 ‘헬리콥터 부모’라고 한다. 항상 자녀의 머리 위를 맴돌면서 모든 것을 직접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부모. 정윤경 교수는 바람직한 부모의 역할을 ‘코치’와 ‘로드매니저’의 차이에 빗대 설명했다. “부모는 아이에게 연예인의 로드매니저나 소속사 대표가 되면 안 된다”는 것. 정 교수는 “코치는 평소에 선수와 함께 뛰고 훈련하면서 같이 땀 흘리며 경기를 준비하지만 결국 경기에 나서는 건 코치가 아닌 선수”라며, “부모가 직접 무대에 올라가려 하지 말고 무대 위에서 아이 스스로 잘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코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정 교수는 영유아기 ‘경험’의 중요성을 당부했다. 한글과 숫자를 배우고 영재검사를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덕목.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 가장 힘센 무기는 결국 ‘상상력’과 ‘창의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정말 필요한 능력을 키워주고 싶다면, 결국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줘야 해요. 상상력과 창의력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훈련을 통해서 나오는 거죠.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려면 정말 많이 경험해야 합니다. 무언가 상상하고 창조하려면 재료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다니고, 다양한 자연과 공감도 하고.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예민해서 꽃 한 송이를 가지고도 하루 종일 놀 수 있어요. 경험이 많아지면 상상력과 창의력은 저절로 생깁니다.

교육은 유아기에 끝나는 게 아닙니다.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는지가 언제나 제일 중요합니다. 길게 봐야죠. 부모가 하나하나 계획해서 시키는 게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걸 발견해서 지원하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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