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10개월 차, '인간혐오'가 시작됐다
서울살이 10개월 차, '인간혐오'가 시작됐다
  • 칼럼니스트 문선종
  • 승인 2020.01.1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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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문선종의 아빠공부] '지옥철'과 '만원버스'… 서울엔 사람이 너무 많다

작년 3월 서울로 발령을 받아 서울살이도 어느덧 10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그 10개월 동안 깨달은 바가 있어 정리해보려고 한다. 

지방에 살 때는 ‘버스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출퇴근 버스 안에서 일어나는 ‘사람 냄새’에 관한 이야기를 소재 삼아 글을 썼었다. 서울에서도 그럴 요량이었지만 이곳의 공기는 지방과 사뭇 달랐다. 모두 신경이 날카롭다. 출퇴근길 만원 버스와 김밥 옆구리처럼 터질 것 같은 지옥철을 겪어보니 ‘관찰의 인문학’ 따위는커녕 나의 신경 또한 날마다 날이 서고 있었다. 한 시간 동안 몸을 담아야 하는 버스 의자는 너무 비좁아서, 앉는다는 표현보다는 ‘몸을 구겨 넣는다’라는 표현이 적합했다.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특히, 지하철 출퇴근길은 ‘헬조선’이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아침마다 불쾌함에 서로 싸우는 모습 속에서 “인간혐오의 시발점은 지하철이다”는 극단적인 결론에 다다랐다.

서울엔, 사람이 너무 많이 산다. ⓒ베이비뉴스
서울엔, 사람이 너무 많이 산다. ⓒ베이비뉴스

◇ 한정적인 공간에 넘쳐나는 사람들… 감옥과 다를 바 무엇인가 

작년 12월 기준 수도권 인구가 대한민국 전체 인구 의 50% 이상을 차지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문득 20년 20일을 감옥에서 지낸 故 신영복 교수가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떠올랐다.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신영복 교수의 말마따나, 우리의 출퇴근길은 ‘감옥 속의 열대야’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한정적인 공간에 넘쳐나는 사람들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혐오’ 속에 서 있는 것이다. 

파란 방과 빨간 방 실험이 있다. A팀과 B팀으로 그룹을 나누고, A팀은 빨간 방에, B팀은 파란 방에 들어가게 한 뒤, 20분 정도가 지났다고 생각할 때 그 방을 나오라는 미션을 부여했다. A팀은 16분 만에, B팀은 24분이 지나서 방에서 나왔다. 빨간 방은 교감신경을 자극해 사람을 불안, 초조하게 만든다. 이는 좁은 공간 안에 있는 것과 같다. 파란 방은 부교감신경을 자극해 편안함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데 이는 넓은 공간에서 있는 것과 같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조앤 마이어스-레비 교수팀은 천장의 높이를 2m 40cm, 2m 70cm, 3m로 30cm씩 다르게 한 후 실험 참가자들에게 창의적 문제를 풀게 했다. 결론적으로 천장의 높이가 높을수록 창의적인 문제를 잘 풀었다. 책 「세상에 없던 생각」에서 건축가 김찬중은 “동그란 집에선 사람들이 동그래지고, 네모난 집에선 네모가 된다”며 공간이 사람을 바꾼다고 조언했다. 결국, 공간의 크기와 배치, 동선 등의 요소들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 공간과 희망이 일치했을 때 비로소 '집'이라고 부른다는데… 우리는?

지난 포항지진 당시 좁은 한 칸의 방을 세 식구가 공유했다. ⓒ문선종
지난 포항지진 당시 좁은 한 칸의 방을 세 식구가 공유했다. ⓒ문선종

우리 가족은 지난 2017년 11월 포항지진을 겪었다. 당시 진앙에서 불과 700m 떨어진 곳에 살았는데, 불행히도 이재민 피난소에 갈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 앞 슬레이트 집으로 이동해 여진이 멎길 바라며 그곳에서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좁은 공간에서 세 집 식구 총 아홉 명이 함께 생활하는 것은 마치 ‘빨간 방’에 들어간 것만 같았다. 불안했고 초조했으며, 신경 체계가 공회전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인간이 영유해야 할 최소한의 주거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릇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빈 곳’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있는 공간이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서 공간과 희망이 일치했을 때, 그곳을 ‘집’이라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주거 빈곤 아동은 94만 4000명으로, 이는 전체 아동의 9.7%에 해당한단다. 그중에서도 주택의 면적, 방 개수 등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한 아동은 85만 8000명이라고 한다. 이 아이들은 그 공간에 희망을 둘 수 있을까? 매일 아침 만원이 넘는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희망을 앉힐 자리가 있을까? 오늘의 칼럼은 어떠한 해답도 제시할 수 없는 푸념이 되고 말았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됐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 시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었고,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9년간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수행했다. 지금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홍보실에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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