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길고 방학은 짧고… 한국의 키즈카페가 그립다
겨울은 길고 방학은 짧고… 한국의 키즈카페가 그립다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0.01.16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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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그래도, 펜실베이니아에서 봄을 기다리는 이유

미국 학교의 겨울 방학은 참 짧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주의 직전 주말에 방학을 시작해서 보통 1월 2일이면 개학을 하니 방학은 주말과 휴일을 빼고 나면 일주일도 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큰아이의 학교는 이미 진작에 봄학기를 시작했다. 한국과 달리 8월 말에 새 학년이 시작되어 다음 해 6월 초면 학년이 끝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아이는 여전히 같은 학년이다.

두 돌 지난 지 얼마 안 된 둘째는 아직 기관에 다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하루하루가 겨울 방학 같다. 특히 내가 사는 이곳 펜실베이니아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고 춥기 때문에 야외 활동이 쉽지 않아 늘 고민이다. 

◇ 아이 키우기 낯설고 고독한 곳, 여기는 내가 사는 펜실베이니아 

그래서 나는 지역의 유아동을 위한 행사와 활동들을 모아서 정리해놓은 사이트에 거의 매주 들어가서 이번 주에는 어디로 외출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행사가 많고, 폭설 때문에 겨울엔 운전이 더욱 쉽지 않은 이곳 펜실베이니아에서는 겨울이면 대부분의 유아동 프로그램이 휴지기에 들어간다. 겨울에는 영유아 수업도 찾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겨우내 아이를 집 안에만 데리고 있기도 힘드니, 완전무장하고 산책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산책하기도 쉽지 않다. 미국은 대도시나, 번화가나, 다운타운 말고는 인도가 아예 없는 길이 많기 때문이다. 보행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인도의 필요성을 잘 못 느낀 탓이리라.

때문에, 드물게 가까운 곳에 공원이 있더라도 걸어서 가는 것은 위험하다. 차도 이외에는 아예 길이 없는 경우도 많으니 유모차를 밀며 차도 한쪽을 걸어서 간다는 것은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다. 게다가 요즘처럼 눈이 길 가장자리에 많이 쌓여있는 시기에는 위험을 감수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걸어서 공원에 가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심조심 운전해서 근처 몰(Mall)에 간다든지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는 수밖에 없다. 용기 내어 완전무장하고 공원에 차를 몰고 간다고 하더라도 몇 분 되지 않아 추위에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착하지 않은 가격이라고 듣긴 했지만, 한국의 키즈카페가 부럽고 그리운 순간들이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검색을 거듭한 끝에 한 체조 체육관에서 운영하는 영유아 자유 놀이 시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어린이 체조 수업을 하는 체육관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 평일 오전에는 간단한 놀이기구를 놓아두고 실내 놀이터처럼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었다. 한 시간씩만 운영하는데 다행히 집에서도 멀지 않고 5불 정도 되는 가격이라(더 저렴하면 좋았겠지만) 부담 없이 가보기로 했다. 

사실 그동안 “엄마는 공부해야 해”라며 아이에게 TV를 틀어주고 한참 혼자 놀게 둬서 미안함도 컸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한 시간만이라도 밖에서 놀게 해 주자는 다짐을 하며 체육관으로 갔다.

시설은 조금 낡았지만 안전한 편인 것 같았고 생각보다 아이도 좋아했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다가 이리 콩콩 저리 콩콩 신나게 점프도 했다. 무엇보다 미국에선(적어도 내가 사는 이 도시에서는) 찾기 힘든 실내 놀이터니 감기 걱정도 없어 내 마음도 편안했다. 짧다면 짧은 한 시간 동안 아이는 이리저리 탐색하고 뛰고 땀을 흘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더니 이내 잠들어 버렸다. 

오랜만에 신나게 뛰어 노는 둘째. 이마에 땀 맺힌 모습을 참 오랜만에 본다. ⓒ이은
오랜만에 신나게 뛰어 노는 둘째. 이마에 땀 맺힌 모습을 참 오랜만에 본다. ⓒ이은

◇ 봄이 오면 이제 낯설지 않게 살리라, 아이들을 어디서든 뛰어놀 수 있게 하리라

이렇게 신나게 뛰어노는 것을…. 이 한 시간조차 아이와 함께 보내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드며 죄책감이 몰려왔다. 2020년은 이미 시작했는데, 나는 아직 작년의 기억, 작년에 후회했던 것들을 떠나보낼 수가 없다. 주로 아이들에게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 것들이다. 하지만 작은 틈새로 즐거운 추억들도 떠오른다.

지금 사는 이 도시에 온 지 어느덧 4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큰아이는 한 학기를 마치고 짧은 겨울 방학을 보냈고, 우리 가족 모두 새해를 맞았다.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 그리고 겨울을 겪고 이제는 다가올 봄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이곳에서 보낸 짧은 시간을 되돌아본다. 동양인이 많지 않은 이 작은 도시에서 네 식구가 함께 장이라도 보러 나가면 큰 도시에서와는 달리 꼭 한두 명쯤은 신기하게 쳐다보는 아이들이 있었지. 처음 둘째를 데리고 문화센터 수업에 갔을 때는 흑인이나 라틴계, 인도계 사람들도 없이 모두 백인인 구성원에 새삼스럽게 놀라기도 했었다.

전학 간 학교 정문에 큰아이의 그림이 뽑혀서 전시된 일에 괜스레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었고, 남편이 임용된 대학교의 연구실을 방문해서 교수로서의 남편의 첫 학기를 응원하기도 했었다. 그동안 예비 학자로서의 나의 커리어, 그 밖의 한 여성으로서의 내 개인적 성취는 참 오래 멈춰 있지만, 아이들이 있어서, 가족이 있어서 힘을 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매서운 추위와 눈, 그리고 길고 긴 겨울로 유명한 이곳 펜실베이니아 북부에서 나는 아이들과 어느 때보다 더 아름답고 즐거울 봄을 기다리고 있다. 새해가 왔고 아이들은 쑥쑥 자란다. 인도가 없는 전형적인 미국의 길을 달리면서 나는 다시 한번 다짐한다. 낯선 곳이지만 더는 낯설지 않게 살리라. 아이들을 어디서든 콩콩 즐겁게 뛰어놀 수 있게 하리라. 겨울이 긴 만큼 다가올 봄은 아름다울 것이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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