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서'가 아닌, '행복해지려' 떠나는 가족여행
'행복해서'가 아닌, '행복해지려' 떠나는 가족여행
  • 칼럼니스트 송이진
  • 승인 2020.02.0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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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리포터 엄마의 행복한 여행 육아] 여행이 꼭 정답은 아니지만, 방법이 될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여행을 하루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창 일하고 있는데 아이를 봐주는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왔어요.

“백 서방 퇴근해서 가려고 하는데 애 컨디션이 안 좋은 거 같더라.”

불안한 마음에 남편에게 전화해 아이를 늦지 않게 재우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하지만 자정이 다 돼 돌아온 저는 기어이 큰 소리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 시간까지 온 집안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아이는 벌게진 눈으로 아빠와 놀고 있었거든요.

“나는 자라고 했는데 애가 안 자겠다는 걸 어떡해?”

남편의 궁색한 변명이 무색하게 아이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기침을 시작해 여행 내내 감기를 달고 있었습니다. 큰맘 먹고 떠난 여행인데 아픈 아이와 숙소에만 있으려니 남편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더라고요. 당신 아들은 주변이 어두워야 잠든다는 걸 왜 모르냐고 남편에게 수십 번은 말했던 것 같아요.

주변 엄마들에게 하소연했더니 저 같은 일이 많았습니다. 아이 감기약을 계량컵에 따라두었더니 병에 든 나머지 약을 먹여 아이가 저체온증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이야기부터 육아에 미숙한 남편들이 벌인 에피소드들이 끊이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그 이야기의 공통점은 모두 ‘바쁜 아빠’라는 점이었어요. 제 남편 역시 아이가 잘 때 들어와서 일어날 때 나가는, 심지어 주말에는 밀린 잠을 자느라 아이와 얼굴 마주칠 일이 많지 않은, 너무나 바쁜 아빠거든요.

◇ 아빠는 아이와 여행하며 아이에 대해 하나둘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바쁜 남편은 틈틈히 아이와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송이진
바쁜 남편은 틈틈히 아이와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송이진

그나마 다행인 건 남편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틈틈이 아이와 여행을 해왔다는 점입니다. 평소에는 아이와 무얼 해도 30분을 못 넘기더니 여행을 할 때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놀아 주더라고요. 그 시간을 통해 남편은 아이에 대해 하나둘 알아가는 듯했습니다. 촉각이 예민해 까칠한 해먹이나 산호가 많은 모래사장을 싫어한다는 것, 소심하고 조심성이 많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면서도 아찔한 놀이기구와 활동들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지요.

아이 역시 엄마에게 배우지 못한 과감하고 창의적인 면모를 아빠를 통해 배울 수 있었는데요. 그 덕에 남편은 아이의 첫 뒤집기나 첫걸음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아이의 첫 바다 수영과 첫 스노클링을 저보다 먼저 보았습니다. 그럴 때 남편은 강한 성취감을 느끼는 듯했어요. 심지어 아이와 여행을 더 잘 하기 위해 평소 아이에 대해 잘알려고 노력하기까지 하더라고요.

물론, 여행 몇 번에 평소 함께 하지 못한 육아 공백이 다 메워지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여행에서 돌아오면 한동안 아이는 아빠가 보고 싶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말하더라고요. 저 역시 독박육아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지면서 남편이 예뻐 보이기까지 했고요. 그때 알았습니다. 우리 세 사람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데 여행만큼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을요.

◇ 가족여행이 행복의 정답은 아니지만 방법 중 하나는 될 수 있습니다 

여행은 우리 가족 모두가 만족하며 행복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습니다. ⓒ송이진
여행은 우리 가족 모두가 만족하며 행복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습니다. ⓒ송이진

취재하다 보면 서먹해진 관계를 풀기 위해 여행 왔다는 가족을 종종 마주칩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았는데 외톨이가 된 것 같다는 아빠, 그런 아빠와 친밀해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아이, 겉도는 대화만큼 이 모든 상황이 안타까운 엄마. 그런 모습이 우리 가족의 미래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그런 두려움이 들 때 가장 먼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가족 간 공통 관심사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예를 들어 축구를 좋아하는 아빠와 아들이라면 원정경기를 보러 떠난다든지, 그동안은 아빠 혼자 낚시를 다녔다면 이제는 가족이 함께 낚시 여행을 떠난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진즉 이런 시간을 보낼걸.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요.”

예전에 저는 어차피 남편이 바빠서 육아를 함께 하지 못 할 거면 아이와 단둘이 타지로 한 달 살이를 떠나거나 아이의 영어 공부를 위해 기러기 엄마가 될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생각은 잠시 접기로 했어요. 아이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건 남편에게도 부모로서 누릴 수 있는 큰 행복이니까요.

육아에 정답이 없듯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꼭 여행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가족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을 찾은 것뿐이었어요. 저희와 같은 목적으로 떠난 여행이라면 거창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이를 만족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바쁘게 돌아다닐 때도 있었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은 눈을 마주치고 함께 이야기하며 웃었던 소소한 순간이었거든요.

바쁜 남편은 여전히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의 모습을 놓치고 있지만, 다음 여행에서 또 어떤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될지, 가슴이 설렌다고 합니다. 이런 게 바로 아이를 키우는 기쁨이 아닐까요?

*칼럼니스트 송이진은 공중파 방송을 비롯한 다양한 채널에서 활동하는 19년차 방송인이자 50여 편의 광고를 찍은 주부모델이기도 합니다. 아이와 매년 4~5회의 해외여행, 다수의 국내여행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아이와 해외여행 백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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