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중학생인데, 학습지 안 하기로 했습니다
곧 중학생인데, 학습지 안 하기로 했습니다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0.02.06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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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혼자 해보겠다’는 아이의 말 존중하기

'학습지 지참 휴가를 반대한다'라고 적힌 대목을 보자마자 '혹시 우리 애들도 그런가?' 싶어 고민에 빠졌다. 뜨끔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도 여행을 갈 때면 꼭 학습지를 챙겼다. 밀리면 하기 힘들고, 하기도 싫어지니까.

당연히 아이들 의사를 물어본 적은 없었다. 으레 그래야 할 것이었다. 학원도 안 가는데 이 정도는 기꺼이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내가 이 글을 읽고 허를 찔린 듯 놀란 이유다. "이번에는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여행 갈 때 학습지를 가져가지 말아야 한다"라고 한 책 속 아이의 말은 이랬다.

"낮에는 관광하고 놀다가 저녁때 숙소에 돌아오면 호텔이 마치 우리 집 공부방처럼 변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낮에 체험 활동, 반에는 공부방이 되니까 쭈욱 신나게 노는 게 아니지요. 더군다나 휴가는 4박 5일인데, 엄마가 치사하게 학습지를 무려 5일 치를 가져가서 하루 치는 비행기 안에서 했단 말이에요. 너무 억울해요."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김현수, 해냄출판사, 2019년)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김현수 지음, 해냄출판사, 2019년). ⓒ해냄출판사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김현수 지음, 해냄출판사, 2019년). ⓒ해냄출판사

◇ 여행갈 때 학습지 가져가기, 너도 싫었을까?… "당연하지!"

아이 입장에서 보니 진짜 그랬다. 놀러 가자고(실제로 부모들은 온종일 놀면서) 해놓고 공부는 하루도 빠짐없이 시키는 셈인 거다. 나도 그런 것이었고. 양심에 찔려서 큰아이에게 물었다.

"우리 여행 갈 때 학습지 가져가는 거 말이야… 너도 혹시 싫었니?"

"당연히 싫었지!"

"역시 그랬구나."

"응… 놀려고 가는 건데 저녁에는 학습지 해야 하는 게 좋진 않았어."

"근데 왜 말 안 했어? 저번에 베트남 한 달 살기 갔을 때도 가져갔잖아."

"그건 길게 가는 거니까 가져가야 할 것 같았고. 짧게 여행 갈 때는 안 가져갔으면 좋겠어."

"그럼 짧은 여행 갈 때는 학습지 가져가지 말까?"

"응! 그럼 좋지!"

흔쾌히 그러마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지난 여름방학을 앞두고 학습지를 아예 끊었기 때문이다. 긴 해외 출장에 아이를 데려가기로 하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물론 지난해 겨울방학처럼 몇 주간 학습지를 가져가면 되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거의 5년간 학습지를 계속해오기도 했고 선생님과의 소통도 원활하지 않은 듯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아이 말에 따르면, 뭘 물어도 이해가 되게 설명해주는 게 아니라 똑같은 말만 반복한다는 거였다. 일주일마다 검사는 받아야 했기에 혼자 애써서 푸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전혀 몰랐던 상황. 한 선생님에게 5년, 뭔가 변화가 필요한 순간인 걸 직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학습지를 계속하는 게 의미가 없어 보였다. 좀 쉬자는 결론이 났다. 큰아이를 핑계로 작은 아이까지 학습지 중단! 땅땅땅! 뜻밖의 소식에 아이들은 환호했다.

"드디어 ‘구몬스터(학습지 이름+몬스터의 합성어로 우리 아이들이 쓰는 말)’에서 해방됐어!"

이게 그렇게 좋아할 만한 일인가 싶었지만, 그만큼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컸던 모양이다. 그런데 거의 폭발적인 아이들 반응과 달리, 이 소식을 접한 내 주변 엄마들은 전혀 아니었다.

"무슨 소리야. 거긴 애가 학원도 안 다니잖아. 중학교 올라가서 헤매면 어쩌려고 해. 얼른 다시 시작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 말을 들으니 아이들 마음 편하게 해 주길 잘했다 싶은 마음이 쏙 들어갔다. 다시 마음이 살랑거렸다. '그래 지금까지 학원을 안 다녀도 수업을 잘 따라갔던 건 꾸준한 학습지의 힘도 컸을 텐데… 내가 경솔했나?'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 더 그런 마음이 들었다. 몇 개월 쉬었으니, 이제 다시 학습지를 하자고 해야지. 아이에게 말할 기회만 틈틈이 노렸다. 그러다 어느새 겨울방학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를 어쩐다 싶었을 때 기회가 왔다.

"겨울방학 때 어떻게 할 거야?"

◇ 예비 중학생의 겨울방학, 아이는 혼자 준비해 보겠답니다 

곧 중학생이 되는 아이가 이번 방학에 혼자 공부해 보겠다고 했고, 나는 아이의 말을 존중하기로 했다. ⓒ베이비뉴스
곧 중학생이 되는 아이가 이번 방학에 혼자 공부해 보겠다고 했고, 나는 아이의 말을 존중하기로 했다. ⓒ베이비뉴스

"응? 뭘?"

"학원은 안 갈 거잖아."

"응. 안 가."

"그럼 그 많은 시간 집에서 뭐하면서 지낼 거야?"

"글쎄…하던 것이나 하고…문제집이나 좀 풀어볼까?"

"그것도 하고 학습지도 다시 하자."

"왜? 아, 싫은데…."

"그래도 네가 연산을 꾸준히 해서 수업은 잘 따라갔던 거 같은데, 중학교 갈 준비도 조금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긴 하지. 그래도 수업은 받기 싫어. 학습지만 하면 안 되나?" 

"수업 안 받으면 학습지만 해도 상관없어?"

"응. 문제집 푼다 생각하고 혼자 해보지 뭐."

뭐가 이렇게 싱겁지? 하느니 마니 긴 실랑이를 벌일 줄 알았더니 이렇게 ‘쿨’ 하기야? 그런데 나는 그때까지 몰랐다. 그저 아이가 수학 문제 푸는 게 싫다고만 생각했는데, 수업 분위가 싫었던 거였다. 그렇게 아이는 겨울방학 동안 원하는 대로 매주 혼자 학습지를 풀고 있다(개학이 무려 3월 2일).

비밀 러브레터를 주고받는 것도 아닌데, 다 푼 학습지를 우편함에 넣어두면 선생님이 채점해서 우편함에 넣어두는 이상한 수업. 이럴 땐 내가 '혼자 해보겠다'라는 아이 말에 코웃음 치지 않는 엄마라서 다행이다. 느리지만 좌절하지 않고, 하나씩 스스로 해내고 있는 내 아이가 새삼 무척이나 귀하게 느껴진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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