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고 또 부끄러웠던 첫 번째 '공동육아'의 추억
불편하고 또 부끄러웠던 첫 번째 '공동육아'의 추억
  • 칼럼니스트 노미정
  • 승인 2020.02.17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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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과 함께하는 마을 육아] 아이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였구나

온라인 맘 카페나 육아 커뮤니티를 보면 종종 공동육아를 하고 싶다는 글이 올라온다. 혼자는 외로워서 근처에 사는 또래 엄마들과 소통하고 지내면 좋겠다는 얘기도 많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올해 세 살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내년에 어린이집 보내야지 마음먹고 대기도 걸고 상담도 한곳 갔다 왔어요. 그런데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만이 답일까요? 혹시 또래 아이들 모아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만나 공동육아 비슷하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 숲에도 같이 가고 돌아가며 집에 모여 미술이나 요리 활동도 하고요. 혹시 이렇게 해보신 분 계시면 의견이나 조언 듣고 싶어요.”

"공동육아, 어떨까요? 근처 사는 엄마들끼리 소통하고 지내면 덜 외로울 것 같기도 하고요." ⓒ베이비뉴스
"공동육아, 어떨까요? 근처 사는 엄마들끼리 소통하고 지내면 덜 외로울 것 같기도 하고요." ⓒ베이비뉴스

댓글 1: “미술이나 요리 활동…. 글쎄요? 재료비 걷고, 커리큘럼 짜고, 그럼 누군가 앞장서거나 역할분담을 해야 하는데 마음 딱 맞기가 쉬울까요?”

댓글 2: “아이 성향에 따라 속상한 일도 생기고, 비슷한 또래면 계속 비교하게 되지 않을까요? 어린애들이지만 그 안에서도 잘하고 못하고가 보이고, 서로 때리고 싸우고 할 텐데. 애들은 그럴 수 있지만 그걸 중재하는 엄마의 모습 따라 또 상황이 달라지죠. 생각만 해도 속 시끄러운 느낌이….”

댓글 3: “저도 세 살 아들 키우는데 한 번씩 그냥 같은 공간에서 놀게만 해줘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은 많이 해요. 놀이터 가도 다 어린이집 친구들이라 놀아주지도 않더라고요. 물론 아이들 성향이나 엄마끼리도 마음이 맞아야 가능하겠지만.”

◇ 아이들끼리 자꾸 싸우는 이 공동육아, 계속 해도 괜찮을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의견을 밝히기에 앞서, 꽤 오래 전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큰아이 네 살, 둘째가 두 살 때의 일이다. 온라인 맘 카페에서 아이 둘에, 아이들 나이와 성별도 같은 나와 동갑내기 엄마를 만나 친구가 됐다. 한 번씩 왕래하다 아이들 미술체험 수업도 함께 듣게 됐다.

우리 아이는 신체 활동이 많은 퍼포먼스 미술 수업을 정말 좋아했다. 뚜벅이인 나는 그때 그 친구의 차를 얻어타고 다녔는데, 한 번씩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친구의 아이가 “우리 엄마 차”라며 우리가 타는 것을 싫어했다. 4개월 동안 매주 함께 다녔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난 후,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친구의 아이가 뒷좌석 문 입구에 딱 버티고 앉아 한참 동안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조금만 들어가자고 말하며 차에 올라타려는데, 갑자기 밀치는 바람에 우리 애가 차 밖으로 넘어졌다. 너무 화가 나고 속상했다. 친구가 자기 아이를 혼내며 상황이 마무리되긴 했지만, 엄마한테 혼난 아이는 여간해선 분이 풀리지 않는지 식당에선 밥도 먹지 않았다.

네 아이 밥을 모두 챙겨 먹이고 나서야 엄마들도 밥 한 공기를 비웠다. 그렇게 한숨 돌리고 있는데 아이들끼리 싸움이 났다.

친구는 웬만해선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인데, 아이를 옆방으로 데리고 가더니 단호하게 야단을 쳤다. 아이는 설움이 북받쳤는지 고함을 지르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집에 와서 며칠 동안 고민했다.

‘아무리 좋은 체험 수업이라도 내 아이가 상처받는데 같이 다닐 필요가 있을까?’

마음의 결정을 내린 후 친구에게 어렵게 전화를 걸었다. 꼭 일주일 만이었다.

◇ 엄마들은 원하지만 아이들은 원망하는 이 만남, 이럴 바엔 관두자 마음먹었는데…

"나 쟤가 우리 차 타는거 싫다고오!" 자꾸 상처만 남기는 이 공동육아, 에잇 그만두자. ⓒ베이비뉴스
"나 쟤가 우리 차 타는 거 싫다고오!" 자꾸 상처만 남기는 이 공동육아, 에잇 그만두자. ⓒ베이비뉴스

“주말 잘 보냈어? 있잖아, 할 말이 있는데….”

“미술 수업 같이 못 한다는 얘기지? 네가 한동안 연락이 없길래….”

“매번 차 얻어타고 다니는 것도 미안하고, 애들끼리도 좀 그래서….”

“미안해. 나도 우리 애가 왜 이러는지 속상하고 화나. 같이 잘 지내면 좋겠는데. 집에 와서 얘기를 좀 해봤더니, 다른 사람이 우리 차에 타는 게 너무 싫대.”

“….”

“근데, 미술만 안 하는 거지? 혹시, 이제 우리 못 만나는 거야?”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어차피 이제 안 볼 사이인데 싶어 그동안 속에 담아 뒀던 말을 꺼냈다. 차 탈 때마다 너무 속상했고, 엄마들끼리는 정말 좋은데 애들이 너무 안 맞아서 앞으로 못 만날 거 같다고.

그런데 친구가 한참 만에 의외의 말을 했다.

“이대로 끝난다니까 너무 아쉽고 속상하다. 울산 와서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했거든. 사실 나도 주말 동안 우리 관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봤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너의 아이한테 더 잘하면 어떨까? 그리고 너도 우리 아이에게 조금만 더 신경 써 주고. 우리 그렇게 한 번만 더 노력해 보면 어때?”

이 상황 뭐지? 마음이 이상했다. 나는 피하려고만 했는데 그 친구는 함께 노력해 보자고 했다. 이게 아이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였구나. 아이보다 내 상처가 더 컸고, 내 마음이 불편했던 거다.

아이는 자라며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 중엔 안 맞고 불편한 관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피해야 할까? 피할 수는 있을까? 내 아이가 그렇게 크길 바라나? 

나는 용기 내어 말해준 친구가 고마웠고, 우리들의 공동육아는 그렇게 다시 이어졌다. 그날 이후 나는 친구 아이를 만날 때면 그 아이의 이름을 먼저 부르고, 말 걸고, 웃어줬다. 아이를 키우며 항상 내 아이가 먼저였지 다른 집 아이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울산 태화강 억새밭을 걷다' 행사 모습. 작은도서관에서 만난 엄마와 아이들이 울산 곳곳을 누비며 신나게 놀았다. ⓒ노미정
'울산 태화강 억새밭을 걷다' 행사 모습. 작은도서관에서 만난 엄마와 아이들이 울산 곳곳을 누비며 신나게 놀았다. ⓒ노미정

우리는 살면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함께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학창시절 때도 성적으로 경쟁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내 아이만 잘 키우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공동육아와 공동체. 함께 부딪히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배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와 ‘절친’으로 함께 지내고 있는 친구와의 첫 공동육아 추억을 이렇게 소환하며, ‘작은도서관과 함께하는 마을 육아’ 칼럼을 시작한다. 

참, 나도 저 육아 커뮤니티에 올라온 ‘공동육아’ 글에 댓글을 남겼다. 나의 댓글은 이렇다.

“공동육아 정말 좋아요. 제 경험으로는 장점이 훨씬 많아요. 처음부터 맘에 맞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어울리며 맞춰가는 거지요. 애들끼리 다투고 힘든 일도 생겨요. 그런데 애들은 다시 또 어울려 놀아요. 불편한 건 엄마 마음이더라고요. 그런 부분은 계속 얘기하고 소통하세요. ‘아빠 찬스’ 이용해서 엄마들끼리 수다 모임도 하고, 좋은 책이나 영상도 공유해서 보시고요.

아이가 세 살이면 미술, 영어 등의 학습 놀이 보다는 바깥 놀이, 숲 놀이 위주로 활동하시면 좋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관심사가 다 달라서 같은 장소에서 다 함께 노는 건 힘들 수 있어요. 아이들 동선에 맞춰서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해주세요. 주위에 함께 할 사람을 먼저 찾아보세요. 숲 놀이, 공동육아 관심 있는 엄마들이 꽤 많아요. 함께 어울려 아이 키우는 것만큼 좋은 게 없어요. 아이가 자라며 엄마도 함께 성장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실 거예요.”

내 댓글에 글쓴이의 댓글이 달렸다.

“힘이 생기네요. 함께 할 사람도 찾고, 자료도 검색해 볼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칼럼니스트 노미정은 중학생 둘에 늦둥이 다섯 살까지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울산 동구의 더불어숲작은도서관에서 친구들과 공동육아·마을공동체를 고민하며, 함께 읽고, 쓰고, 밥도 먹는다.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마을. 우리가 오래도록 살고 싶은 마을을 위해 지금 나부터 ‘꿈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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