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마주한다는 것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마주한다는 것 
  • 칼럼니스트 박현주
  • 승인 2020.02.1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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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꿈을 꾸는 아이] 잔인하고 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나는 경기도 화성에서 장애 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에선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했다. 그래서 내 아이의 육아를 위해 학교를 나와 작은 어린이집을 개원했을 때도, 자연스럽게 장애 아이들은 내 삶의 일부처럼 당연히 늘 함께였다.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묻는다. “어째서 어린이집 이름에 혹은 원아 모집 홍보 때마다 '장애' 또는 '통합'을 강조하는 문구를 사용하지 않느냐”라고. 그러나 나는 교육을 하는 사람이지, ‘특수교육’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나는 그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데, 그리고 단지 느린 아이들이 몇 있을 뿐인데, 그 아이들을 강조해야 한다니 웃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디에건 '장애 통합교육 기관'이라는 말이나 글을 쓸 때마다 살짝 오그라드는 기분이 드는 이유도 아마 그 탓인 듯하다.

◇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마주하는 일, 서로에게 아픈 일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마주하는 일이란 서로에게 잔인하고 아픈 일이다. ⓒ베이비뉴스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마주하는 일이란 서로에게 잔인하고 아픈 일이다. ⓒ베이비뉴스

장애 통합어린이집이라는 어린이집의 특성 때문에, 지난가을 무렵부터 요즈음까지 이어지는 상담은 아이의 발달에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마주한다는 것, 처음 만난 자리에서 아이의 부모가 놀라지 않게, 아프지 않게,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바라봐 주길 부탁드리는 일이 나의 일이다. 아이의 느림을 처음 마주한 부모를 만나는 일은, 마음 한쪽을 도려내면서 다시 쓰린 약을 발라주는 잔인하고 아픈 일이다.

장애 통합어린이집이라고 해도, 아이를 처음 키우는 부모들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담을 시작하면 나는 이렇게 먼저 묻는다. 

"어머니, 우리 어린이집이 장애 통합기관인 건 아시죠? 아이가 장애아반 입소할 친구인가요? 아니면 비장애아반 입소대상자인가요?

그러면 학부모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직 말을 못 해서 언어치료는 받고 있지만, 장애는 아니에요.”

“감각통합치료를 받으라고 권유받았지만 우리 아이는 장애아가 아니에요.”

“착석은 안 되지만 장애아는 아니에요.”

“이름 불러도 엄마에게 오지는 않지만, 우리 아이는 장애가 아니에요.”

이런 대답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혼란스럽다.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라는 단어의 인식 수준을 보는 것 같아서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성인들에게 ‘장애’라는 단어는 몹시 불편하고, 불쾌한 단어라는 것. ‘장애’는 그런 단어다. 부모의 바람대로 단지 조금 느릴 뿐인 아이가 될 수도 있고, 열심히 키웠지만 느림의 범주가 장애의 범주에 포함되어 버리는 아이를 키우게 될지 나는, 잠깐의 상담으로는 사실 알 수 없다.

나는 다시 묻는다. 어린이집의 장애아반과 통합반의 기준에 대해서.

“어머니, 이 아이가 3명당 한 명의 교사랑 있을 때 방치되지 않고, 어린이집에서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아니면 15명당 한 명의 교사랑 있을 때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으세요?”

대부분 이 질문에는 장애아반 입소를 희망한다. 장애냐 아니냐, 느림이 어느 정도냐 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이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만 고민한다면. 단지, ‘장애’라는 단어가 가진 부정적 인식이 부모들의 마음을 무겁고 아프게 만든다.

◇ 내 손에 이끌려 간 그 아이는 얼마나 아프고 속상했을까

아이의 다름을 다르지 않은 것인양 만드는 일이 좋은 일이라 믿었다. 그 일이 아이를 아프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아주 뒤늦게야 깨달았다. ⓒ베이비뉴스
아이의 다름을 다르지 않은 것인양 만드는 일이 좋은 일이라 믿었다. 그 일이 아이를 아프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아주 뒤늦게야 깨달았다. ⓒ베이비뉴스

‘다르다.’

누군가는 ‘느릴 뿐, 느린 것은 다르지 않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느림도 평균의 속도에서 봤을 땐 다름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다르지 않다.’

이게 무슨 이상한 말장난인가 싶을 테다.

결혼 전 나의 직장은 특수학교였다. 아이 한번 낳아보지 않았지만, 의욕만은 충만했던 유아 특수교사가 나의 직업이었다.

우리 반에 배정받은 아이들이 마냥 예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특수교사의 '특수'한 직업의식에 사로잡혀 아이마다 '다름'을 열심히 찾아내고 밝혀내 최대한 ‘다르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보고자 무던히 노력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렇게 ‘다름’을 다르지 않게 만들어 내거나, ‘다르지 않은 척’이라고 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내면 유능한 교사가 되기라도 한 듯 ‘자뻑(?)’을 하던 시절이, 나에게 있었다.

민망하지만 당시 나는 특수교육 현장에서 제법 유능했다고 자부한다. 아이들의 편식을 고치고, 착석 시간을 유지 시키며, 발화를 유도해내는 일에 집중했다. 최대한 다르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야 유능한 선생님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손잡고 이동하기 어려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데려가기 위해 아이의 손을 쥔 내 손의 힘은 점점 세졌지만 나는 자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 이게 올바른 교육이었나’ 하는, 교사로서 반성적 사고를 하기 시작한 것은, 장애 통합어린이집을 하면서, '비장애아'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하면서였을 것이다. 

어느 날인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옆에 있는 아이의 손을 잡았는데, 아이가 "원장님, 아파요. 왜 내 손을 아프게 해요?"라고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물었다. 사실 나는 아이의 손을 아프게 잡으려는 의도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익숙하게 특수학교에서 우리 반 아이들의 손을 잡듯 잡았을 뿐인데, 까만 눈동자는 원망을 가득 담은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날의 일은 나에게 무척 큰 충격이었다. 그간 우리 반이었던 아이 중에서 저렇게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없었다. 아이들은 무(無) 발화거나, 간단한 단어를 이야기하긴 했지만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는 수준은 아니었기에, 나는 내가 아이의 손을 잡는 일이, 아이들을 아프게 하는 일이라 생각조차 못 했다. 

“아, 내 아이들도 아팠겠구나. 말을 못 한다고 아프지 않았던 게 아니었을 텐데…, 말을 못 한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 텐데….” 

◇ 느린 아이는 좀 다르다, 하지만 결국 모든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이다 

장애가 있든 없든 아이들은 결국 모두 다르지 않다. 그저, 아이일 뿐이다. ⓒ베이비뉴스
장애가 있든 없든 아이들은 결국 모두 다르지 않다. 그저, 아이일 뿐이다. ⓒ베이비뉴스

어느 날은 15개월 영아가 어린이집에 입소했다. 모든 발달이 정상인 아이였지만 바닥에만 내려놓으면 울었다. 까치발로 깡충깡충 뛰면서 울었다. 종일 업으라고 울었다. 예민한 기질의 아이였다. 예민한 기질의 아이들이 아니라도 하더라도, 한 반에 몇몇은 감각 장애가 아님에도 까치발을 들고 걷는 아이도 종종 있었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아이들도 몇몇이 있었다.

사람들은 장애가 없는 아이들의 문제 행동은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그저 놀이고, 즐거움을 찾는 과정이라고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도, '장애'라고 불리는 아이가 같은 행동을 하면 부모와 교사는 심각해진다. 얼른 감각통합 수업을 추가하라고 압력을 넣는다.

비장애아들이 보이는 감각적 예민함은 어느 순간 소거가 된다. 장애아들이 보이는 감각 문제와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아이들을 보는 시각에서 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영아반 통합교육을 하진 않지만, 영아반의 경우에는 더 심각했다. 아이들이 친구를 무는 사고가 원에서 발생하기라도 하면 부모에게 받는 첫 번째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내 아이 문 아이는 장애아인가요?”

물론, 장애 있는 아이가 물때도 있었고, 반대의 상황도 있었다. 장애아라서 친구들을 무는 게 아니라, 그 시기는 단지 ‘아이들’이라서 무는 사고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장애아가 물면 ‘어느 심리치료를 보내야 한다’, ‘부모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 등 말이 왕왕하다. 친구의 장난감을 빼앗거나, 놀이를 방해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아이들이라서 있을 수 있는 일에, 아이가 발달이 느리면 ‘장애아’라서 라는 꼬리표를 달아주며 장애라는 가면으로 아이를 가려버린다.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발달의 속도는 아이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이 아이들 모두 똑같은 아이다. 아이의 느림을 마주했을 때, 가장 명심해야 하는 일이다. 그저 같은 아이들일 뿐이라는 것을.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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