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울 때 바르는 연고가 필요해 약국에 갔다. 싱가포르는 한국과 달리 약국이 따로 있는 경우가 드물다. 화장품, 헤어·보디 제품을 파는 체인점 내에 약국이 조그마하게 자리 잡은 경우가 더 많다.
약국 담당자의 추천을 받아 제품을 고르는데 브랜드 판촉 사원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나와 약국 담당자가 주고받은 내용을 우리 뒤에 서서 다 들었기에 이미 파악했고, 본인이 담당하는 제품을 소개하고 싶어 했다. 알아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에 따라가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가끔 애들한테 발라줘도 좋겠다 싶은 제품을 큰 거로 하나 집어 들고 고맙다고 말하던 그 순간,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Are you from Myanmar? (너 미얀마에서 왔어?)”
“Sorry, say again? (미안, 다시 말해줄래?)”
“Are you from Myanmar? (너 미얀마에서 왔어?)”
“No, I`m from Korea. (아니, 한국에서 왔어.)”
◇ 국적을 가늠하며 인생을 추측하는 질문 "Where are you from?"
내가 미얀마 사람처럼 영어를 써서 미얀마 사람이라 생각했단다. 미얀마, 이름은 들어봤지만, 어디인지는 잘 모르는 나라. ‘버마’, ‘아웅산 수치’ 같은 단어는 줄줄이 소시지처럼 따라오지만 정확하게 아는 건 없는 나라. 동남아 곡창지대 중 하나라는 설명을 학교 다닐 때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는 나라. 게다가 한국에서 영어를 배운 나에게 미얀마 사람들의 영어 악센트가 느껴진다니, 미얀마 말이 경상도 사투리와 비슷한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나저나 미얀마는 대체 어디에 있는 나라인가. 검색에 들어갔다. 미얀마(Myanmar)는 태국, 라오스, 네팔,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우리나라와 인구수가 비슷하며, 인구의 90%가 불교를 믿는 나라.
그런데 나는 미얀마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아, 지난번 친구네 집 아기 돌보미 이모가 미얀마에서 왔다고 했었나. 싱가포르에 있는 미얀마 사람이라면 집에 같이 살면서 아기를 돌보거나 집안일 도와주는 이모가 대부분일 텐데(1차 편견), 그럼 판촉 사원은 나를 집안일 해주는 이모로 봤다는 말인가(스스로 만들어낸 불쾌함). 도대체 미얀마 사람들이랑 나랑 뭐가 비슷하다는 걸까.
'미얀마 사람이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딱 떠오르는 생각이 솔직히 그랬다. 머리로는 차별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몸과 마음은 이미 차별에 익숙해져 있었나보다. 스스로에게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싱가포르에는 인근 국가에서 온 많은 외국인들이 일하고 있다. 싱가포르 도심에 밀집한 사무실 건물에는 글로벌 회사의 아시아 본사들이 즐비하고, 그곳에서 서양인 또는 고학력의 아시아인을 자주 볼 수 있다. 중국어와 영어. 두 언어가 주로 사용되다 보니 식당 서빙과 주방 일은 중국 본토에서 온 중국인이 하는 경우가 많다. 도로 정비, 건물 공사 현장 등 고되고 힘든 일은 방글라데시나 인도에서 온 사람들이 주로 한다. 집에 같이 살며 노인이나 아이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는 ‘헬퍼’들은 대부분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에서 왔다.
출신 국가와 인종에 따라 상세 직업을 떠올리는 행위는 학습된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러니 누가 나를 보고 미얀마에서 왔냐는 질문을 하면, ‘넌 헬퍼니?’’로 자동 통역이 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인종과 국적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피부색과 말투,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에 따라 급여 수준이 달라지고, 생활 수준의 격차는 선명해진다.
서너 명이 한방에서 월세를 나눠 내며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야 하는 삶을 살 수도, 방 서너 개에 수영장과 헬스장, 바비큐 공간이 겸비된 신축 콘도에 살며 수시로 아시아 곳곳을 여행하는 삶을 살 수도 있다. 얼굴색이 검든 희든, 어디에서 왔든 똑같이 싱가포르 정부가 허가한 입국 비자를 받고 들어와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신분이지만 국경만큼이나 명확한 경계가 우리들의 얼굴에 존재한다.
이렇게, 싱가포르에 온 이후 국적을 묻고 답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영어 이름 때문에, 생김새나 말투 때문에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받는다. 얼마 전에도 회사 근처 단골 빵집 '안티(이 곳에서는 ‘이모’를 ‘안티’라 부른다)'가 느닷없이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다. 생김새나 말투가 싱가포르 사람은 아닌데 어디서 왔는지 도통 감이 안 잡힌다는 눈치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안쪽에서 빵 모양을 잡던 삼촌도 고개를 끄덕이며 입으로 ‘아~’ 탄성을 질렀다. 아마 내 국적이 그들에게 한동안 풀리지 않은 숙제였던 모양이다. 어떤 경우는 약국에서 만난 판촉 사원처럼 나의 국적을 예상하고 물어보는 일도 있다. 버스에서 만난 할머니는 필리핀, 그랩 운전기사 아저씨는 태국, 동네 아이들 놀이방 사장님은 베트남에서 왔냐고 물어봤다.
“Where are you from?(너 어디서 왔니?)”와, “Are you from OO?(너 OO에서 왔니?)”라는 질문은 들을 때마다 한동안 어지러웠다.
국적,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요소가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추측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는 것만으로 불편했다. 국적을 묻는 일은 ‘네 아버지 뭐하시노?’ 또는 ‘시부모님은 어디에서 사셔?’처럼 상대방의 현재를 평가하려는 속셈이 담긴, 성질 못된 질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껏 살면서 내 국적을 이렇게나 자주 공개한 일은 없었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어색함도 분명 있다. 사람들은 나의 생김새와 말투, 옷 입는 스타일에서 내 국적을 찾는 게임을 한다. 2년 동안 햇볕에 그을려 피부는 이미 까무잡잡하고, 쌍꺼풀이 진한 커다란 눈을 끔뻑이며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말하기 전까지 사람들이 떠올리는 나라는 내게 모두 생소한 곳들이다.
언젠가부터 ‘국적 놀이’를 할 때마다 호기심이 생긴다. 들어봤지만 경험한 적 없는 나라 이름을 들으며 그곳 사람들을 상상하고, 그들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내가 같은 아시아인이기에 가질 수 있는 그들과 비슷한 특징들을 뒤적이게 만든다.
◇ 지구인으로 살다 보면 국적을 떠나 나를 ‘나답게' 세울 수 있을 거야
싱가포르에 오기 전 내가 아는 아시아는 중국, 한국, 일본이 전부였다. 역사를 배울 때도 주요 국가는 동북아 중심이었고, 국제면 아시아 뉴스도 동북아 3개국 관련 뉴스가 가장 크게 자리 잡았다. 우리의 일상과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나라도 중국과 일본이다.
아시아에는 총 47개 국가가 속해 있고, 약 40억 명이 산다. 아시아는 지구에서 가장 크고 인구도 가장 많다. 하지만 5000만 명이 사는 한국에서 내가 몸으로 겪은 아시아는 고작 한국 포함 3개 국가가 전부라고 생각하니 나의 세계관이 너무 작고 초라해 부끄럽기까지 했다. 오히려 서울보다 조금 더 크고 인구는 서울의 절반 정도인 500만 명이 사는 싱가포르에서 예전에 경험한 적 없는 거대한 아시아를 만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 왔다는 대답을 전할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뜨겁다. 물론 나에 대한 평가는 아니다. 방탄소년단이 정점을 찍은 한국 노래와 잘 만들어진 한국 드라마와 영화, 최근에는 봉준호 감독이 만든 업적의 수혜자가 바로 나이고, 그 덕에 ‘코리아’를 말할 때마다 쑥스럽고 어색하다.
나는 한국 사람으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싱가포르에서 유아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서 한국 사람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고, 김치를 ‘소울 푸드’로 먹는 것만이 한국 사람은 아닐 테니 말이다. 이름과 이메일 주소처럼 나를 소개하는 필수 정보에 국가가 추가되면서 ‘코리아’는 새로운 고민이 되었다.
이왕 한국을 떠나온 거 각자 자신의 색깔로, 자신의 스타일로, 자신의 꿈을 꾸며 살아가는 아시아인을 더 많이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단일 민족’을 떠나 다양한 인종이 섞인 이곳에 왔으니 말 그대로 다양한 사람들과 서로 다른 점, 서로 비슷한 점들을 찾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다르니까 틀린 게 아니라 그저 우린 다를 뿐이라는 것을 몸으로 겪을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그리하여 나와 아이들 모두 아시아를 넘어 지구 전체를 바라보는 사고도 유연해지지 않을까. 이런 경험이 “I`m Korean. (나는 한국인이다)”을 말하는 나를 나답게, 우리 아이들을 그들답게 설 수 있도록 도와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말레이반도의 맨 끝. 싱가포르에서 지구인으로 살아가기를 결심했다. 싱가포르로 이사 올 때만 해도 싱가포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민족이 섞여 사는지, 말과 문화는 어떠한지 기본 지식도 없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아시아를 만난다. 다른 말과 음식과 생김새를 엿보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려 애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면서 가졌던 생각을 고집하고 집착하며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나와 다름에서 배우고, 나아지고, 더 큰 생각을 하며 살고자 한다면, 지금 이곳의 생활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디딤돌이 될 테니 말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둘째 어린이집 등원길에 함께 했다. 18개월부터 동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해 어린이집에 다닌 지 6개월이 다 되었지만 내가 데려다줄 때면 언제나 울고 불며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데 그 날도 여전히 대성통곡이 시작되었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둘째 아이를 둘러업듯 데리고 들어가고 그 뒤를 따라가던 교장 선생님이 외쳤다.
“Why are you crying ‘OPPA?’ (왜 울어 ‘오빠’?), Don`t Cry ‘OPPA!’ (울지마 ‘오빠!’)”
교장 선생님이 한국 드라마를 엄청 좋아하는지 연신 ‘오빠’를 외치신다. 그렇게 우리 둘째의 국적 ‘코리아’는 어린이집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칼럼니스트 김보민은 '한국땅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산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라는 호기심으로 2년째 싱가포르에 체류 중이다. 싱가포르에 올 때 4살이던 첫째와 생후 2개월이던 둘째는 어느덧 각각 6살, 26개월로 훌쩍 자랐다. 365일 여름이고, 아시아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주로 영어를 쓰고, 작은 나라이면서도 어마어마하게 큰 아시아를 가르쳐주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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