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언니가 최근 이혼했다. 이혼한 이유는 ‘시어머니’였다.
언니 말에 따르면, 시어머니는 우선 돈이 좀 많았고, 언니 부부 사이에 나름 깊은 애정(?)과 질투가 있었다고. 그래서 모든 상황을 시어머니가 편한 쪽으로 결정해야 집안이 조용했단다. 남편은 기세고 돈 많은 어머니에 눌려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 아내를 그저 자기 어머니의 깊은 뜻을 헤아릴 줄 모르는, 철없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 언니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겉모습은 평범한 한국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생각과 행동만큼은 합리적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한국 특유의 전통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수직적 관계를 견뎌야 했으니, 얼마나 스트레스 받으며 살았을까. 또, 언니는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 했다. 공부만 하다가 결혼을 해서 그런지 세상 물정은 잘 모른다. 성격은 또 얼마나 온순하고 순종적인지. 기센 시어머니에겐 안성맞춤인 며느리였을 것이다.
이렇게 착하고, 정 많고, 여리고, 희생을 감내하면서까지 결혼을 유지하던 사람이 이혼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둘째가 태어났는데, 시어머니가 아기 울음소리 듣기 싫으니 시댁에 오지 말라고 했단다. 언니는 그길로 친정에 갔고, 둘째가 어느정도 클 때까지는 어지간하면 시어머니 집에 안 갔다고.
“내 심장과도 같은 아이를 태어나자마자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시어머니 행동에 모멸감을 느꼈어. 시어머니는 늘 나를 자기 돈만 탐하는 탐욕스러운 며느리라고 생각해왔지. 나는 그렇게 10년을 참았어. 그리고 나를 지키지 않는 남편과, 우리 사이를 늘 이간질 하는 시어머니의 말이 늘 상처이자 고통이었어. 더는 못 참겠더라고.”
◇ "이혼하니까 살 것 같아"… 더 큰 고통이 올 거라고 차마 말 할 수 없었다
언니에게 며칠 전 전화가 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은아야, 넌 이혼했을 때 어땠니? 난 이혼하고 나니까 정말 살 것 같아. ‘살 것 같다’는 이 기분이 뭔 줄 아니? 진짜 마음이 기뻐!”
“언니, 저는 그때 맘이 좀 아팠어요. 사랑이가 저 때문에 아빠 없이 사는 삶을 살게 된 것 같아서….”
“…아이들은 더 잘 지낼 거라고 난 믿어.”
‘지옥’이라도 탈출한 것 마냥 기뻐하는 언니에게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이혼하는 게 좋겠냐고, 그냥 참고 사는 게 좋겠냐고. 나는 “이혼해도 힘들고, 사고 치는 남편이랑 사는 것도 힘든데, 저는 이혼이 더 힘든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이혼이 더 힘들다고 말한 이유는 이렇다. 이혼에 필요한 절차가 끝났으니 우선은 홀가분할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이혼은 이제 시작이다. 함께 했던 시간을 정리해야 하는 ‘정서적 이혼’의 과정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혼을 위한 ‘서류상’ 과정이 모두 끝났을 땐 이겼다는 기분이 들어 좋을지 몰라도, 이혼만 하면 다 괜찮을 것 같던 그 시간이 막상 현실로 닥쳤을 때, 점점 무심한 듯 냉정하게 다가오는 이혼 후유증을 혼자 견뎌야 한다.
나는 정서적 이혼 과정도 마친 것 같다. 홀가분하다. 하지만 7년이 걸렸다. 그 7년이 내겐 너무 고통이었다. 나만 알고 있는 전 남편의 행동, 그와의 기억들. 나 혼자 하나 하나 다 꺼내서 더러워진 감정과 기억을 다시 깨끗하게 씻어서 내 가슴에 넣어 정리하는 일들. 피로했고, 억울했고, 답답했고, 우울했다.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이런 과정과 상처를 내가 미리 알았다면 나는 이혼을 결정했을까? 정말,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서류상 이혼의 끝에는 행복이 아닌, 또 다른 상처가 남아있음을, 그 상처가 또 회복되기까지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함을, 언니에게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그저 언니가 걸어야 할 길을 옆에서 묵묵히 응원해줄 수밖에. 그저 언니가 그 모든 과정을 다 마치고 진짜 행복하기만을 바란다. 우리는 모두 소중한 존재니까.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8년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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