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사람 없는 미국에서, 아이가 아프다 
기댈 사람 없는 미국에서, 아이가 아프다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0.02.25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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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 인류학] 미국은 지금 독감 유행 중

“콜록콜록….”

조금씩 기침을 하던 둘째가 얼마 전부터 콧물이 흐르고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결국 39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에 함께 트램폴린 파크에 다녀오고 나서부터 나도 몸이 좀 으슬으슬하고 미열이 나서 잠시 고생을 했는데, 그 새 아이에게도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랑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까딱하며 ‘씨익’ 미소지어주는 애교쟁이 딸내미가 열에 시달려 힘없는 눈으로 아픈 표정을 짓고, 몸도 너무 힘든지 거의 내지 않던 짜증 섞인 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해열제를 먹였는데도 열이 잡히지 않아서 미지근한 물에 적신 물수건으로 마사지를 해주고 4시간 간격으로 계속해서 타이레놀을 먹였다.

이틀이 지나자 아이가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 예약하지 않아도 되는, 워크인(Walk-in) 시간이 따로 있는 소아과에 급히 찾아갔다. 첫째 아이 등교 시간이 겹쳐서 평소라면 불가능했을 시간대였는데, 마침 남편이 오전 강의를 하지 않는 날이기에 가능했다. 첫째 등교는 남편이 담당하고, 나는 둘째를 데리고 소아과에 갔다.

◇ 하루 ‘씩이나’ 걸리는 미국 독감 검사… 엄마 마음이 타들어간다

둘째가 며칠째 고열에 시달렸다. 소아과에서 독감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하루나 지나야 나온다고. 미국은 지금 독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엄마 마음은 타들어간다. ⓒ이은
둘째가 며칠째 고열에 시달렸다. 소아과에서 독감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하루나 지나야 나온다고. 미국은 지금 독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엄마 마음은 타들어간다. ⓒ이은

담당 의사는 아이의 상태를 보더니 “독감 예방주사를 맞긴 했지만, 혹시 독감일지도 모르니 검사를 진행해보자”라고 하셨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옛날에 한국에서 첫째가 독감 검사를 받았었다. 그때 독감 양성 반응이 나와서 타미플루를 먹이고 얼마나 마음 졸였던지. 아이를 봐주시던 친정어머니도 감기가 옮아 폐렴으로 번지고 결국 입원까지 하셨다. 이래저래 죄인이 된 나는 덩달아 마음을 앓았다. 

미국에서 독감 검사는 처음이라, 당연히 한국에서처럼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바로 검사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거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오래 기다려야 해요?”라는 마음의 소리를 표정에 드러냈던 모양이다. 의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검사를 진행할 근처 실험실에 아이의 검사 표본을 직접 가져다 내면 검사 결과가 빨리 나올 수도 있다”라고 얘기했다.

미국의 병원에선 채혈은 물론, 기타 검사의 분석 역시 지정된 실험실에서 진행한다. 즉, 실험실에서 표본을 취합해가는 시간이 보통 늦은 오후이니, 오전 중 미리 아이의 검사 표본을 제출하면 결과를 더 빨리 받아볼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다행히 실험실이 집과 병원 사이에 있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실험실에 들러 검사물을 제출하고 집에 돌아오니 녹초가 됐다. 이틀 밤 동안 고열에 시달린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느라 제대로 못 자기도 했고, 낮에도 아이가 안아달라고 보채는 탓에 피로가 쌓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내가 아픈 아이보다 더 힘들까. 아이는 몸이 축 늘어지고 열 때문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낮잠도 제대로 못 잤다.

독감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한국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지역 사회 전체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다. 이에 비견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미국에서도 올해 독감으로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독감 검사 결과에 더욱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재채기나 기침할 때 꼭 가리고 하라고 가르치고, 손 세정제도 자주 사용하는 편이지만 답답해하는 아이의 외출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종종 아이가 콧물감기를 앓는 일은 있었는데…. 독감 예방주사도 만능은 아니니, 이제는 독감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다음 날, 혹시 결과가 나왔을까 싶어 병원 문 여는 시간이 되자마자 바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담당 간호사는 결과가 나왔다며 ‘음성’이라고 알려줬다. 독감이 아니라고 하니 한시름 놓긴 했지만, 아이의 열은 계속 올랐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했다. 체온계와 물수건, 해열제를 계속 내 손이 닿는 곳에 놓아뒀다.

◇ 목도리 두르고 가글하며 기원한다…“어디서든 다들 건강하시라” 

한국에선 아플 때 죽을 먹지만, 미국에서는 보통 '치킨 누들 수프'를 먹는다. 아프지는 않지만 치킨 누들 수프를 좋아하는 큰아이와 감기를 앓는 작은아이를 위해 아빠가 치킨 누들 수프를 끓였다. 작은아이는 엄마 품에서 떨어질 줄 모르므로, 엄마는 옆에서 훈수만 두었다. ⓒ이은
한국에선 아플 때 죽을 먹지만, 미국에서는 보통 '치킨 누들 수프'를 먹는다. 아프지는 않지만 치킨 누들 수프를 좋아하는 큰아이와 감기를 앓는 작은아이를 위해 아빠가 치킨 누들 수프를 끓였다. 작은아이는 엄마 품에서 떨어질 줄 모르므로, 엄마는 옆에서 훈수만 두었다. ⓒ이은

한국이었다면 긴박한 순간에 달려와서 도와줄 친정 식구들도 있고, 소아과는 예약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갈 수 있었을 것이며, 늦은 시간이나 주말에 문 여는 소아과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겠지만, 이곳은 미국의 작은 도시. 서울에선 당연하던 일이 여기서는 당연하지 않다. 

과잉 진료도 문제이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일은 일단 확인하고 안심하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일 텐데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아프면 몇 배 더 종종걸음하고 신경 쓰는 경우가 많았다. 진료를 받는 것도, 또 검사를 받는 것도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느리고 또 결과 또한 늦게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꼭 독감이 아니라는 소리를 기다린 것처럼, 아이의 열은 검사 결과를 듣고 나서부터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목이 붓기 시작하고 몸이 다시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한다. 엄마는 마음대로 아플 수도 없는데.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목도리를 목에 두른 뒤 가글도 했다. 열이 내리고 엄마에게 안겨서 금방 배시시 웃는 둘째의 얼굴을 보니 안심이 된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자, 우리 아가. 한국에 있는 많은 분도 모두 건강, 또 건강하기를 마음 모아 기원한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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