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밥·삶을 나누는 '도서관'에서 아이를 키웠다
나는 책·밥·삶을 나누는 '도서관'에서 아이를 키웠다
  • 칼럼니스트 노미정
  • 승인 2020.03.0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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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과 함께하는 마을육아] 마을 공동체의 중심 '작은도서관'

몇 달 전, 도서관 책 모임에 꾸준히 두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아기엄마가 둘째 아들 돌 기념 선물을 놓고 갔다. ‘육아와 가사노동의 힘겨움을 혼자가 아닌 도서관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하다’라는 가슴 뭉클한 편지도 함께. 오랜만에 받아본 손편지. 이 편지를 함께 읽으며 나뿐만 아니라 책 모임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따뜻해졌다.

'안녕하세요.

9월도 이렇게나 훌쩍 빨리 지나가고, 내일이면 10월이네요. 10월은 제게 정말 의미 있는 달이랍니다. 두 아이를 만난 날이거든요.

아, 이 세 줄을 쓰는데 몇 번을 앉았다 일어서는지 모르겠네요.

첫째를 낳고 긴긴 터널에 갇힌 마냥 어둡고 우울한 나날을 보냈는데 둘째를 낳고선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참 즐겁네요. 아이가 주는 기쁨을 이제야 깨달은 미숙한 엄마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민들레 책 모임과 도서관 덕분이라 말하고 싶어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나누고, 덜어내고…. 이런 것들이 정말 큰 힘이 되었답니다. 이제는 ‘더불어숲’ 없는 육아는 상상도 하기 싫네요.

내일이 둘째의 돌입니다. 작게나마 그간의 감사함을 나누고 싶어 천 쪼가리 몇 개 보냅니다. 그릇 닦거나, 행주 등등 다용도로 사용하실 수 있어요. 오늘 아이들과 고구마 캐러 가서 얼굴 못 뵙네요. 10월의 첫날, 잘 맞이하시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 육아의 늪에서 헤매다 '숲'을 만났고 위로와 해답을 얻었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마을 사랑방, 더불어숲작은도서관. ⓒ노미정
지역주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마을 사랑방, 더불어숲작은도서관. ⓒ노미정

문득 내가 처음 ‘더불어숲 작은도서관’을 만났던 때가 생각났다. 결혼하고 남편 따라 온 울산은 외롭고 낯설었다. 첫째를 키우며 너무 힘들었고, 아이와 집에만 있으니 바보가 되는 것 같았다. 

“세 살 육아가 평생을 좌우한다고? 우리 애가 벌써 세 살인데 어쩌지? 우리 아이 독서 영재 만들기? 우리 애도 이거 한번 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아이가 잠들면 도서전집, 육아용품 사기에 바빴다. 최저가를 찾다 보니 매일 늦게 자고 아침엔 퀭했다. 피곤한 날이 반복됐다. 육아서적은 ‘뛰어난 아이’를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완벽한 엄마를 요구했다. 그래서 항상 아이에게 미안하고, 불안했으며 늘 부족한 엄마가 된 것 같았다. 맘카페에서 정보를 얻고 도움도 받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해소되지 않는 게 있었다.

둘째가 세 살이 되던 해 ‘울산부모’, ‘부모교육’, ‘부모학교’라는 단어로 폭풍검색을 했다. 그렇게 우리가 지금 ‘숲’이라 부르는 이곳, ‘더불어숲 작은 도서관’을 만났다. ‘자녀의 마음을 읽어주는 대화법’, ‘우리 아이 그림책 읽어주기’, ‘건강한 먹을거리’, ‘협동과 배려 가득한 북유럽교육’, ‘부모 내공 키우기’ 등의 내용을 이곳에서 만났다.

더불어숲 작은도서관은 울산 동구에서 지역 주민들이 함께 돈과, 품과, 시간을 들여 만든 작은 사립 도서관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함께 버티며 올해로 10년이 됐다. 하지만 내가 처음 이 도서관을 만났을 때만 해도 울산에서 부모교육을 하는 곳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매일 아이 얼굴만 보다가, 작은도서관에서 좋은 강의도 듣고, 선배맘들이 먼저 아이 키운 경험담도 듣다 보니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이 시기에 아이에게 뭐를 해줘야 하는지, 비교하고 경쟁하는 대화가 아니라 ‘그 정도면 잘하고 있어. 너도 엄마가 처음이잖아!’ 따뜻한 말로 위로받는 시간이었다.

작은도서관 부모학교 2기 졸업생이었던 나는, 3기 부모학교에선 도우미로 활동했다. 도서관 이용 안내와 부모학교 후기도 도서관 홈페이지에 꼼꼼히 남겼다. 도서관이 책만 빌리고, 강좌만 듣고 가는 곳이 아니라 누구나 언제라도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처음엔 이용자로, 봉사자로 지금은 운영위원을 하며 작은도서관 활동가가 됐다.

◇ 함께 끼니를 나누고, 아이를 키우며 어울리는 '느슨한 공동체' 

어떤 사람은 '밥 먹는 재미'로 도서관에 온다고 했다. 밥은 우리를 엮어주는 일등 공신이다. ⓒ노미정
어떤 사람은 '밥 먹는 재미'로 도서관에 온다고 했다. 밥은 우리를 엮어주는 일등 공신이다. ⓒ노미정

책 모임, 만들기 모임 등 다양한 소모임이 끝나는 시간 정오. 작은도서관이 밥 먹는 도서관으로 변하는 ‘마법의 시간’이다. 모임을 마친 우리는 꼭 함께 점심을 먹으며 일정을 마무리한다. 정오가 되면 우리가 ‘동구 맛집’이라 부르는 마을 식당이 펼쳐진다. 한 사람씩 집에서 싸 온 반찬을 펼쳐놓고 도서관에서 갓 지은 따뜻한 밥을 함께 먹는다. 갖가지 나물 반찬, 계란말이, 부침개, 쌈까지…. 신기하게도 매번 어느 것 하나 겹치는 반찬이 없다.

함께 밥을 먹으며 다른 이가 해온 요리 비법을 묻고, 배우기도 한다. 너무 맛있다고 좋아하면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 엄마처럼 반찬을 산처럼 담아와 나눠주는 언니, 집에서 기른 콩나물, 텃밭에서 키운 상추를 잔뜩 가져와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과 나눠 먹는 이들도 있다. 빈손으로 와도 편하게 한 끼 밥 어울려 먹고 가는 느슨한 공동체. 작은도서관은 어느새 마을에서 엄마들의 사랑방,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공간이 됐다.

누구는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밥 먹는 재미로 도서관에 온다”라고. 함께 먹는 밥은 우리를 끈끈하게 묶어주는 일등 공신이다. 밥 먹으며 편하게 나누는 얘기들로 도서관 특강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도서관을 운영하는 좋은 제안들과 정보가 쌓인다. 한편, 밥 먹을 때마다 사용했던 플라스틱 접시가 늘 마음에 걸려 한 사람씩 힘을 모아 스테인리스 접시 60개를 마련한 감동적인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밥 먹는 도서관이란 사실을 아시곤 쌀을 기부해주시는 ‘기부 천사님’까지. 이곳에선 매 순간 감사한 일들이 일어난다. 누군가에게는 잠시 이용하고 스쳐 가는 곳일 수 있지만, 나와 우리에게 작은도서관은 내가 스스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공간이자 애정을 담은 공간, 소중한 공간이 됐다.

◇ 오래오래 작은도서관 활동가로 남고 싶다…그래서 작은도서관의 미래를 고민한다

전국에 6900여 곳의 작은도서관이 있다고 한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수백억 원의 예산을 들여 작은도서관을 만든단다. 하지만 최근 3년 반 사이 2435곳이나 휴관하거나 폐관을 결정했단다. 인력 부족, 예산 부족 등 운영상의 어려움과 그에 다른 이용자 감소가 도서관 휴·폐관의 원인이라고.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작은도서관 설립에만 신경을 쓰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기초단체장이 관심을 두는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의 간격도 크고, 활발하게 운영 중인 도서관도 여전히 정보, 인력, 재정, 프로그램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택건설기준 규정에 따르면 500세대 이상 주택단지에는 주민공동시설로 경로당, 어린이집 등과 함께 작은도서관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작은도서관 설치 의무만 있을 뿐 운영·관리에 대한 규정은 없다. 현재 울산에는 공립 38개, 사립 132개 등 총 170개 작은도서관이 운영되고 있다. 132개 사립도서관 중 아파트 단지 내 설치된 작은도서관은 99개(75%)나 된다.

하지만 아파트 작은도서관 같은 경우 공간은 잘 만들어 놓고 봉사자나 인력이 없어 방치된 일도 있고, 도서 대출 반납 업무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곳이 많다. 누군가 작은도서관을 운영하고 싶어도 아파트관리소나 입주자대표회의 반대에 부딪혀 포기하는 예도 있다. 작은도서관은 자원봉사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활동을 하다 보면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재정적 지원이 없다 보니 공모사업에 의지해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데 이 또한 서류작업이 만만치 않다. 공모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할 사람의 활동비조차 책정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작은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책과 사람, 관계가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베이비뉴스
작은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책과 사람, 관계가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베이비뉴스

공립도서관은 많은 책과 자료, 다양한 프로그램과 강좌가 운영되는 지식의 창고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다. 하지만 작은도서과은 아이 혼자 걸어올 수 있고, 주민 누구나 부담 없이 들를 수 있으며 지역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마을의 ‘사랑방’같은 공간이다. 즉 작은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책과 사람, 관계가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편, 울산에서는 지난해 작은도서관 활동을 응원하고 돕기 위해 작은도서관 활동가들이 뭉쳤다. ‘울산 작은도서관협회’를 설립해 1년 동안 5개 구군의 작은도서관 활동가들이 만나고 소통했다. 그리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지원하려고 한다. 혼자는 힘들지만 여럿이 함께하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절실히 느꼈다.

작은도서관을 통해 만난 엄마들이 아이들을 함께 어울려 키웠다. 아이들이 크는 만큼 엄마들도 함께 성장했다. 육아의 고충과 삶의 고단함은 책을 함께 읽고 밥을 나눠 먹으며 사라진다. 이용자와 운영자의 경계가 없이 도서관을 함께 만들어 가는 주체가 되는 곳. 삶을 나누는 공간, 여기는 작은도서관이다.

올해는 작은도서관에서 마을 방과후 학교가 열린다. 교육청 공모사업에 선정돼서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됐다. 전국적으로 코로나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 상황이 얼른 나아져 도서관 문을 활짝 열고 다시 사람들과 북적이며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을엔 작은도서관이 있어야 한다. 나는 오래도록 작은도서관 활동가로 남고 싶다.

*칼럼니스트 노미정은 중학생 둘에 늦둥이 다섯 살까지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울산 동구의 더불어숲작은도서관에서 친구들과 공동육아·마을공동체를 고민하며, 함께 읽고, 쓰고, 밥도 먹는다.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마을. 우리가 오래도록 살고 싶은 마을을 위해 지금 나부터 ‘꿈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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