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마흔, “왜 나를 낳았어?” 질문을 받는다면?
내 나이 마흔, “왜 나를 낳았어?” 질문을 받는다면?
  • 칼럼니스트 김보민
  • 승인 2020.03.2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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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지구인으로 살아가기] 마흔 번째 생일과 삶의 이유

얼마 전에 마흔 생일을 맞이했다. 마흔에 접어들었다고 늙었다는 느낌도 없고, 세상이 그리 대단하게 달라보이지도 않는다. 십의 자리 숫자 하나가 조금 더 무거워졌고, 체중이 더 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오히려 안심이 된다. 학창 시절에는 생일이 3월이어서 불편했다. 새 학년 친구들은 만난 지 불과 열흘이 채 되지 않아 생일을 알리는 게 괜히 머쓱했고, 전 학년 친구들은 이미 끝이 난 사이처럼 느껴져 혼란스러웠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생일이 다가오면 혼자 떠올리는 엉뚱한 생각이 있다. 

내가 지구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선택인가? 당연히 나의 선택권은 존재하지 않았고, 나의 부모도 ‘나’의 모습을 한 사람을 예측하고 낳진 않았을테고, 나를 점지해준 삼신 할머니도 ‘나’를 다 알진 못했을테고, 조물주 역시 나의 부모와 삼신 할머니와 크게 다른지 않았을 것 같다. 언젠가 불쑥 엄마에게 왜 나를 낳았냐고 물었었다. 밥 숟갈로 밥 먹는 것 마냥 대수롭지 않게 던진 내 질문에 엄마는 혼란스러워졌고 대답을 했다기 보다 계속 본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왜를 물어보는거가? 왜? 그건 왜 묻는데?” 

궁금했다. 나는 왜 태어났고, 왜 이런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고, 왜 나의 엄마와 아빠는 당신들이고, 왜 나는 한국 그것도 대구에서 태어났는 지 어릴 때부터 궁금했다. 내 탄생에서 나의 의지는 하나도 없이, 선택권이 단 하나도 없이 태어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없어 답답했다. 

“왜?”

이 질문이 나에게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이유를 모르거나 납득이 안되면 손끝하나 움직이는 것도 곤혹스러워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이유가 없는 일이 있을 수 있나, 시작이 없이 중간과 끝이 존재하는 일이 있을 수 있나, 이유도 모르고 사람들이(부모가, 선생님이, 어른들이) 하라고 한다고 하는 게 가능한가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왜?”

이 질문 만큼 사람을 오해하기 쉽게 만드는 질문도 없다는 사실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 한 동료가 조심스레 나에게 다가왔다. “보민씨, ‘왜요’라고 질문 안 하면 좋겠어요. ‘왜요’는 너무 공격적인 것 같아서 들을 때마다 심장이 내려 앉는 느낌이에요.” 무엇이든 하지마라고 하면 더 하고 싶지만 회사에서 미운 털 박히는 건 싫어서 질문의 형태를 바꿨다. “제가 몰라서 궁금해서 여쭤보는데 그건 왜 그런가요?” 정도로 설명을 추가해 순화시킨 이 질문 형태는 사람들이 공격적으로 듣지 않는 듯했다. 사실 ‘왜’는 아주 명쾌하게 이유를 묻는 의문사이고, 입말로 사용하기에 꽤나 경제적인 언어라 생각했었는데, 먹고 사는 문제와 연결되니 바꿔야지 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 문장을 내 입술에 장착시켰고 ‘왜요?’를 대체해 지금까지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다시 나의 생일 이야기로 돌아가본다. ‘왜 이 날, 이 시간에 태어났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못 들었으므로 나에게 생일은 큰 의미가 없었다. 딱 하나 의미가 있다면 스물넷 어리디 어린 엄마가 죽을 고생을 해서 나를 낳았다는 것. 그 아픔을 다 참고 나를 낳아주었다는 것. 이 의미만 고스란히 남았고, 생일날이 되면 눈뜨자마자 가장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고생해서 낳아줘서 고맙다고, 엄마 고생한만큼 더 알뜰히 살아내겠다고, 그저 나를 낳은 것 하나만으로 사랑받을 사람이 당신이라고 내 마음 꾹꾹 눌러 담은 말들을 전한다. 

2018년 1월이었다. 둘째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싱가포르로 가야하는 짐꾸러미는 이미 배에 올랐고, 집도 절도 없이 두 아이와 함께 시댁과 친정을 유목민처럼 이동하며 살던 때였다. 남편과 싱가포르로 이사하는 날짜를 정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먼저 싱가포르에 가 있던 남편이 물었다.

“언제 오고 싶어?”

“내생일에.”

“왜?”

“싱가포르에서 살기 시작한 날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어서. 내가 태어나면서 인생이 시작된 것처럼 싱가포르에 가는 건 인생이 달라지는 순간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서른 여덟의 나는 우리가 살던 동네의 작은 트램플린이 있는 키즈 카페와 동네 어귀에 늘 계셨던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빨대를 꽂아 건네주는 요구르트를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와 이제 막 배꼽이 떨어져 통 목욕이 가능하고 먹고 자고 싸기만 반복하는 2개월 아이와 적도 인근에 있는 위치하고 영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사용하고 활발한 중개무역을 통해 아시아의 용이라 불린 싱가포르에 날아왔다. 새로운 일이 생기면 기분 좋을 서른 여덟 내 생일날이었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 외할머니집에서. ⓒ김보민
한국을 떠나기 직전 외할머니집에서. ⓒ김보민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때가 언제인것 같냐고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그 순간’. 김춘수 시인도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줬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됐다’고 말했듯이 말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내 탄생일을 굳이 택해 싱가포르로 날아오며 지금부터의 나의 삶은 내가 적극적으로 ‘선택’한 삶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아무도 나의 등을 떠밀어 이 곳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기에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 잘 살고 못 사는 것도 모두 내 몫이기에 어느 시절의 나보다 더 진지하고 정성껏 살아가게 됐다. 마치 ‘선택’은 ‘동기’의 다른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싱가포르 생활 2년차에 접어들며 아이들도 훌쩍 자랐다. 아이들도 ‘선택’을 하기 시작했고, ‘선택’에는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고, 가끔 나를 설득하기 위해 말이 되는 듯하지만 말이 안 되는 이유를 거듭 강조하기도 한다. 최근들어 큰 아이는 이유를 설명하기 보다 짜증이 섞인 말을 자주 내뱉는다. 처음엔 짜증투로 말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대했는데 가만히 아이의 말과 행동을 들여다보다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아이가 이제껏 배우고 내뱉은 말들로는 설명이 안되는 감정이 마음 속에서 파도치듯 넘실거리는데 설명할 재간이 없어 힘들어 하는 건 아닐까. 지금까지 한번도 겪어본 적 없는 상황을 직면하고 이 경험을 어떻게 표현할 지 몰라 힘들어 하는 건 아닐까. 결국 아이가 성장하면서 마주하는 새로운 경험과 생각과 감정 속에서 이유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건 아닐까. 

흔히 말하는 ‘미운 네 살’, ‘욕구 불만’과 같은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없이 울고 떼쓰고 반항하는 아이는 없다고 늘 생각했다. 어른들의 눈에 보이지 않거나 아이들이 배운 말로 표현하기가 힘든 이유들이 도처에 깔려있다는 생각을 줄곧 했다. 돌아보니 최근 2주 동안 아이들이 잠든 시간을 훌쩍 넘겨 퇴근해서는 자는 아이들 발가락만 만져주는 일상을 보냈다. 아이가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엄마라는 존재와 소소하게 나누고 싶은 생각과 마음이 있었는데 그걸 내가 헤아려주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고 보니 아차 싶었다. 짜증내지 마라고 다그치기 전에 서로 눈을 바라보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 지금이 아닌가 싶다. 아이에게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고 그걸 들어줄 사람으로 나를 선택한 것 뿐이니 말이다.

아이들은 물 한바가지에도 쑥쑥 잘 자라는 콩나물처럼 잘도 자란다. ⓒ김보민
아이들은 물 한바가지에도 쑥쑥 잘 자라는 콩나물처럼 잘도 자란다. ⓒ김보민

아이가 나에게 “왜 나를 낳았어?”라던가 “우리는 왜 싱가포르에 왔어?”와 같은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까. 갑자기 앞이 캄캄해진다. 나의 마흔 생일을 맞이해 새로운 ‘왜’에 납득할만한 대답을 서둘러 찾아봐야겠다. 적어도 내 대답을 들은 아이가 백퍼센트 공감하지는 못하더라도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슬기롭게 즐길 수 있도록 나에게 돌아올 ‘왜’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부터 해야겠다.  

*칼럼니스트 김보민은 '한국땅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산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라는 호기심으로 2년째 싱가포르에 체류 중이다. 싱가포르에 올 때 4살이던 첫째와 생후 2개월이던 둘째는 어느덧 각각 6살, 26개월로 훌쩍 자랐다. 365일 여름이고, 아시아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주로 영어를 쓰고, 작은 나라이면서도 어마어마하게 큰 아시아를 가르쳐주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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