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엄마 되기'엔 남다른 각오가 필요하다
과학자의 '엄마 되기'엔 남다른 각오가 필요하다
  • 칼럼니스트 윤정인
  • 승인 2020.03.2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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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과학자 생존기] 책으로 출산을 배우면 생기는 일

뱃속에 땡그리가 무럭무럭 크고 있으나 나는 임신중독증에 걸려 위험하던 때, 지도 박사님의 강제 휴가가 시작됐다. 지도 박사님은 배부르고 중독증에 걸려 빵빵해진 내가 불편했을 거고, 날 보며 ‘제자를 잡겠다’고 싶었을 거다. 나는 나대로 지도 박사님한테 미안해서 꾸역꾸역 나오다가 결국 한 달 먼저 집에서 쉬게 된 것이다.

휴가가 시작되자, 나는 심심함에 몸부림쳤다. 휴가가 없기 전엔 ‘출산 전 휴가에 들어가면 쉬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일주일이 지나니 잠도 잘 만큼 잤고, 뒹굴뒹굴하는 것도 다 해서 그런가 심심했다.

심심함을 해결하기 위해 미드(미국드라마)를 봤다. ‘그림형제’, ‘크리미널 마인드’, ‘성범죄수사대 : SVU’, ‘NCIS’ 등 태교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 작품들을 주로 봤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시리즈를 매일매일 돌려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덧붙여 임신, 태교, 출산과 관련한 서적도 정독하기 시작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이과’. 모든 실전을 경험하기 전 이과에겐 ‘이론을 학습하는 일’은 필수! 출산까지는 한 달이 남은 시점에, 나는 출산을 준비하는 엄마와 아빠의 자세(?)를 책으로 공부해보기로 결정했다.

사실 한 달 동안 태교와 겸해 토익을 준비해보겠다고 거창한 결심을 했다. 임신 초기엔 졸려서 영어 공부를 못했고, 나중엔 배가 나와서 앉아 있지를 못했다. 그 몸으로 공부는 좀 힘들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토익은 실패했지만, 할 일은 필요하다 싶었다. 궁여지책으로 임신과 출산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이과'인 나는 임신과 출산을 이과적으로 접근했다. 책과 정보로 다 알았다고 생각했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이과'인 나는 임신과 출산을 이과적으로 접근했다. 책과 정보로 다 알았다고 생각했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 책은 ‘임신’을 다섯 가지로 설명했고 나는 '다 안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아빠의 자세를 알아보기 위해 다양한 육아 서적을 찾아 읽었다. 또 수많은 맘카페를 방문해 육아 지식과 출산 이야기를 다양하게 살펴보았다.

육아서적이 말하는 ‘임신’은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태교와 태담은 매우 중요하다’라는 것. 아이는 뱃속에서 모든 것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진통이 올 때 토할 수 있기 때문에 출산 직전 식사는 가볍게 해야 한다’는 것.

‘초산의 경우, 아이가 빨리 나오지 않으므로 진통 간격 5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세 번째.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를 비교한다면, 자연분만이 산모의 몸이 회복하기에는 더 좋다’고 했고, 마지막으로 ‘아이의 건강을 위해선 모유수유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

이렇게 요약한 내용을 역시 이과인 신랑과 함께 디스커션(discussion, 학문적 토론)하고, 내용을 숙지했다. 우리는 출산 이론을 모두 습득했다고 생각했다.

이는 명백한 오판이었다. 태교와 태담은 제대로 수행해본 적이 없었다. 어떤 책은 아이의 태교에는 외국어가 좋다고도 했다. 실제로 맘카페에서 검색해보면 ‘토익공부를 한다는 임산부’가 꽤 있었다. ‘아이와 나누는 태담이 중요하니까 아예 외국어 학원에 다니며 아이에게 영어를 자주 들려준다’는 엄마들이 있었다. 나는 모성이 부족한 건지, 나랑은 취향이 맞지 않았다. ‘왜 굳이...’라고 생각했다. 앞서 말한 대로 토익시험 보러 갔다가 숙면 취했다. 따라서 토익 공부는 패스.

뭐 굳이 변명하자면, 나는 ‘공부를 인생의 업으로 생각하고 사는 대학원생’. 태교책까지 섭렵할 시간은 없다고 생각했다. 또 아침에 출근해서 매일 영어로 적힌 논문을 읽어야 하니, 이걸 영어 태교로 쳐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속한 연구실은 외국인 연구자도 있다. 아는 영어를 다 동원해서 문법 무시하고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살고 있으니 이미 영어 듣기는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사실 문장 3개가 오가고 나면 그날 내 대화는 끝인데도.

태교를 위해 굳이 집에 와서 책을 읽는다는 게 힘들었다. 매일매일 논문을 보고, 일주일에 한 번 랩미팅(laboratory meeting, 연구실 내 회의)을 하고, 또 논문 세미나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태교책은 모두가 알다시피 대부분 동화다. 동화책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동화책은 읽고 싶지 않았다.

이러고 살다 보니 임신하면 누구나 쓰게 된다는 태교일기도 쓰지 못했다. 굳이 또 변명하자면, ‘집에 와서 태교 동화 읽을 힘도 없는데 일기 쓸 힘이 생길 리가 있나’라고 생각해주기 바란다.

태담의 경우, 신랑이 해줘야 한다. 신랑 역시 임신 기간 동안 야근 안 하고 일찍 퇴근하기 위해 노력했다. 실험을 몰아쳐서 하고 나를 데리러 오다 보니 집에 오면 피곤해서 쓰러지기 바빴다.

태담을 하려면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임신 기간 계속 아팠던 나 때문에 우리 신랑은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태담은 고려도 하지 않았다. 신랑은 아픈 나를 보면서 ‘홀아비가 될까 봐 무서워서 아이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태교를 하려면 ‘좋은 것만 봐야 한다’는 그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면 내가 사랑하는 미드들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태교 때문에 ‘NCIS’를 못 볼 바엔 태교를 안 하는 게 낫다. 태교와 태담은 그렇게 실패했다.

◇ 자연분만과 모유수유, 책 때문에 생긴 고집

이론과 실전이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진통’에서 두 번째로 느꼈다. 책은 진통이 ‘아프다’고만 기록했다. 얼마나 아픈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진통이 오면 산모 중에는 구토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굉장히 무미건조하게 적었다.

나는 평소에도 자주 체한다. 기침을 하다가도 토하는, 빈약한 식도와 위장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진통이 와서 몸을 비틀다가 토할 확률이 높으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조언을 가볍게 무시했다. 우아하게(?) 전복죽 두 그릇을 먹고 분만실로 갔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은 절대로 따라 하지 말길 바란다. 분만실에 들어가면 아이를 낳을 때까진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나는 진통을 24시간 꼬박했고, 날짜로는 이틀 정도를 분만실에 머물렀다. 그런데 들어가기 전에 먹은 것이 고작 죽. 나는 극한의 배고픔과 싸우며 진통을 하느라 죽을 뻔했다. 책대로 했다가 된통 당해버렸다.

3번 조항 역시 믿지 말자. 5분 간격으로 진통이 와 ‘분만 직전’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내 자궁 경부가 열리지 않아서 한참을 고생했다. 책은 “5분 간격이면 자궁경부가 열려 출산 임박”이라 했는데 임박은 무슨.

‘자연분만’ 얘기도 안 할 수 없다. 알게 모르게 나는 자연분만에 엄청나게 집착하고 있었다. 젊은 산모에게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엄청난 난산을 겪었다. 우리 신랑은 내가 죽을까 무서워 의사 선생님께 울며불며 수술 시켜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어쩐지 그 정신없는 와중에 의사 선생님은 두 번 정도 나에게 수술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방문했다.

나는 의사에게 ‘자연분만이 불가능한 상황인지’를 먼저 물었다. 의사가 ‘자연분만이 가능하다’고 하자, 나는 그냥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진통 온 와중에 그렇게 말한 나도 ‘참 가지가지 한다’ 싶었다.

엄마 과학자에게는 임신과 출산에 남다른 각오가 필요했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엄마 과학자에게는 임신과 출산에 남다른 각오가 필요했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어쩌면 나는 자연분만에 환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족들도 “자연분만을 해야 아이가 건강하다”고 계속 이야기를 했다. ‘누구나 자연분만이 당연한 거고, 또 아이를 위해서 해야 한다’라고 했기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당연히 자연분만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좀 더 솔직해지면 제왕절개가 ‘전신마취 없이 그대로 절개해야 하는 수술’이라 들었기에 무서워서 못했다. 제왕절개를 하면 회복 기간이 오래 걸린다고 들어서 더 도전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자연분만에 집착했다.

자연분만만 집착한 것은 아니었다. 책에서 모유수유의 중요성도 엄청나게 강조했다. 모유수유도 집착하게 됐다. 조리원에서 맞이한 첫 일주일은 두 시간에 한 번씩 정말 열심히 수유했다. 아이를 안고 아이를 바라보며 수유를 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경이롭고 마음이 따뜻했던지. 조리원에서 나오고 산후조리 기간 정말 열심히 모유수유를 해봤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나는 소인가, 엄마인가.’

모유수유는 쉬운 일이 아니다. 모유는 내 호르몬으로 생성되는 것이기에 마음이 늘 평화로워야 한다 했다. 영양성분을 맞추기 위해서는 내가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했다. 매운 것은 안 되고 건강식을 먹어야 하며 커피도, 맥주도 ‘불가’. 두 시간마다 아이에게 수유하려니 너무 졸리고 피곤하고 힘들었다. 아이를 늘 안고 수유를 해야 하니 어깨도 아프고 손목도 아파졌다. 몸이 망가지는 게 느껴졌다.

결국 수유 시작 한 달도 되지 않아 빠르게 결심했다. 분유와 혼합하기로! 혼유를 결심하고 가족들을 설득한 핑계는 다음과 같다.

“나는 실험실 종사자이므로 유해물질을 취급하고 있음.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하기엔 내 직업적 환경이 염려스러움. 또 어린이집도 다녀야 함. 따라서 출산휴가 기간에만 모유수유를 하고 서서히 분유로 변경하겠음.”

◇ 각오로 임한 출산과 육아… 그래도 둘째 갖기는 힘들어

사실 핑계는 아니다. 정말 저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임신 기간 기형아 검사에 많이 집착했다. 내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이미 많은 화학물질에 노출됐고, 누적된 양은 무시할 수 없으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신랑과 나는 임신 기간 할 수 있는 모든 기형아 검사를 했다. 검사의 목적은 ‘우리가 각오하기 위해서’였다. 그 각오란 ‘혹시라도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더라도 이 아이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었다.

실험실 종사자들이 처한 환경은 과거와는 다르다. 실험실 내 안전 의식이 높아졌다. 연구자들은 다들 실험복, 고글, 마스크, 글러브를 기본으로 착용하고 있다. 흄후드(유독가스·분진 등 배출시설)도 늘 작동하고 있어서 호흡 독성 위험도 낮다.

그러나 모든 독성 정보는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설계돼있다. 성인 여성을 기준으로 하는 정보가 최근 많이 나오고 있으나 아직 대부분의 MSDS(제품 안전 데이터 시트, 화학물질의 특성과 건강 자료 등을 제공하는 문서)는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한다. 임산부에게 끼치는 독성정보도 거의 없다. 안전교육 때 임신부 연구원에 대한 생식독성 이야기는 특별히 언급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 내가 두렵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검사를 했고 아이가 태어난 후 아이의 발달 과정을 세세히 살피려 노력했다. 그 덕분인지 아직 아이는 큰 문제 없이 크고 있다. 부당경량아(출생 당시 엄마 임신 주수에 비해 작게 태어난 아이)여서 일 년에 두 번 성장검사를 하고 있지만, 에너지도 넘치고 입은 살아서 ‘유치원 프로참견러’로 쑥쑥 크고 있다.

내가 둘째를 좀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는 첫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할 때 많은 생각을 했고, 많은 각오를 해야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아이를 갖는 게 좀 무섭다. 그래서 ‘둘째’를 운운하는 것이 참 불편하다. 이런 일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상대방의 사정은 모두 고려되지 않는다. 만약 상대방이 아이 갖기 어려운 사정인 경우 큰 실례를 범하는 셈이다. 또 상대방이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합의한 경우면, 아이를 가지라는 질문이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전자인 경우건 후자인 경우건 모두 무례한 일이다.

나는 ‘임신’으로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커서 피임을 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둘째는 당연히 낳아야 한다’는 말은 내 삶을 부정하는 무례가 된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각자의 사정이 있다. 지금 당신은 어떤 무례를 저지르고 있는가? 또는 어떤 무례를 저질렀다고 생각되는가? 그리고 어떠한 이유건, 아이를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정말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칼럼니스트 윤정인은 대학원생엄마, 취준생엄마, 백수엄마, 직장맘 등을 전전하며 엄마 과학자로 살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되었고,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서 젠더다양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프로불만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회사 다니는 유기화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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