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박의 즐거운 변신 “콕콕콕, 개나리꽃이 피었어요”
단호박의 즐거운 변신 “콕콕콕, 개나리꽃이 피었어요”
  • 칼럼니스트 신혜원
  • 승인 2020.03.3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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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원의 열두 가지 채소 이야기] 코로나 사태로 지친 부모와 아이를 위한 '단호박 수프' 만들기
코로나19로 약해진 면역력 회복을 위해 단호박 수프를 만들어보자. ⓒ베이비뉴스
코로나19로 약해진 면역력 회복을 위해 단호박 수프를 만들어보자. ⓒ베이비뉴스

아이가 어릴 때 부르던 동요 ‘사과 같은 내 얼굴’은 사과, 오이, 호박이 차례로 나와 예쁜 얼굴, 길쭉한 얼굴, 우스운 얼굴이 된다.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할 때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척을 하다가, 3절 호박이 등장하자마자 세상 비호감으로 돌변하는 아이.

얼굴은 잔뜩 찌푸려 미간에 주름을 만들고, 턱은 아래로 당겨 입은 삐죽거리고, 목소리까지 변조해 가며 부르던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예쁜 사과를 부를 때나 우습기만 한 호박을 부를 때나 똑같이 사랑스러웠던 그 시절의 아이가 문득 그리워진다.

우스운 모습의 호박은 꽃과 씨로 사람의 겉모습과 속마음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 세상에 예쁘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며, 귀하지 않은 씨앗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호박이 꽃과 씨와 만나면 그 뜻은 왜곡된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나’라는 말은 그야말로 호박의 최대 굴욕이다. 아니, 영양적인 면을 보아도 호박이 수박을 부러워할 이유는 없는데, 호박 입장에서 보면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세상은 호박에게 모질지만, 호박은 끄떡없다. 시골의 버려진 땅에서도 넝쿨넝쿨 뻗어가며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든다.

손바닥보다 큰 호박잎 사이 노란 수꽃이 활짝

엄마한테 매달린 아기마냥 연둣빛 호박이 대롱

“안녕, 나는 암꽃이야”

꿀벌이 날아와 톡 톡 톡

“안녕, 꽃가루를 가지고 왔어”

“꿀벌아, 고마워! 그런데 왜 이렇게 졸립지...”

시들시들 암꽃은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툭 떨어진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호박은 더 단단하게, 호박의 길을 간다.

한해살이인 호박이 어찌 호박꽃의 마음을 알 수 있으랴. ‘호박’이면서 ‘호박꽃’이기도 한 나는 호박꽃에 엄마 얼굴이 겹쳐져 가슴 한편이 시리다. 반대로 사춘기 아들을 닮은 호박. 매끈하게 잘 자란 모양이 대견하면서도, 혼자만 야물게 자란 모습이 서운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괜찮다. 나도 호박처럼 '쿨하게' 나의 길을 가리라.

◇ 스마트폰으로 피곤해진 눈에도 좋은 '호박'

어릴 때 외할머니집 거실, 해가 들지 않는 한쪽 구석에는 늙은 호박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동생이랑 의자처럼 앉아서 놀 만큼 컸던 호박은 신데렐라 마차로 변신하는 대신 겨울에 달콤한 호박죽이 돼 꽁꽁 언 몸을 녹여주었다. 요즘은 늙은 호박보다 단맛이 강하고, 무엇보다 손질이 쉬운 단호박이 더 인기가 좋다.

단호박과 함께 사시사철 마트에서 볼 수 있는 인큐베이터 애호박,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나란히 누워있다. 꼭 맞는 비닐을 벗길 때면 스키니 바지를 벗듯 영 불편하다. 특수 제작된 비닐이 병충해로부터 호박을 보호하고, 육질을 단단하고 맛있게 만든다고 하니, 이 정도 불편함쯤이야. 하지만 우리도 아이를 인큐베이터 애호박처럼 어른의 구미에 맞게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괜스레 씁쓸해진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부모와 아이 모두 힘든 요즘, 호박으로 떨어진 면역력을 회복시키자. 호박에는 항산화 성분인 베타카로틴이 들어있어 산화스트레스를 낮춰준다. 베타카로틴은 체내에서 비타민 A로 전환되는데, 스마트폰으로 피곤한 눈에도 좋다. 혹시 활동량이 급격히 줄어 ‘확찐자’가 됐다면, 식이섬유가 풍부한 단호박 요리가 도움이 된다.

며칠 동안 집안에만 갇혀 지낸 인큐베이터 호박이 돼 버린 아이와 부모, 오늘만은 버려진 땅의 호박으로 살아보자. 선뜻 내키지 않는다면, 마음부터 준비운동 시켜보자. 머릿속 상상과 내 마음과의 대화로 말이다.

"손이고 바닥이고, 온통 가을 은행잎처럼 노랗게 물이 들 거야"

“물론이지. 그래도 괜찮아”

"단호박은 질퍽거려서 안 먹을 것 같은데... 지난번에 호박죽도 안 먹었잖아"

“당연하지. 처음이니까 먹지 않아도 괜찮아”

◇ 아이와 함께 만드는 초간단 단호박 수프 레시피

첫 번째, 단호박 한 개를 미리 전자레인지에 익힌다. 지름 15cm 정도 크기의 단호박은 8분 정도 익히면 반으로 자르기도 수월해지고, 너무 무르지 않아 씨를 파내기 좋다. 미리 식혀놓으면 아이가 생 단호박을 관찰하고, 기다리지 않고 바로 활동할 수 있다.(재료=단호박 2개(관찰용과 요리용), 생크림(또는 우유) 300mL)

두 번째, 생 단호박을 아이와 함께 관찰한다. 단호박을 손으로 들어보면 얼마나 무거운지, 겉껍질은 무슨 색인지, 만지면 어떤 느낌이 나는지, 속은 어떻게 생겼을지, 무슨 색일지 아이와 이야기 나눈다.

“단호박 꼭지에는 원래 노란 호박꽃이 붙어 있었단다"

"꽃이 떨어지고 나서 호박이 이렇게 크고 단단해졌대"

"단호박 속은 무슨 색일까? 껍질처럼 초록색일까? 호박꽃처럼 노란색일까?"

단호박 한 개를 미리 전자레인지에 익힌다. ⓒ신혜원
씨 주위 노란 실처럼 식이섬유가 얼키설키, 재미있는 놀잇감이 된다. ⓒ신혜원

세 번째는 미리 익혀 식힌 단호박을 반으로 잘라 씨를 파낸다. 아이 연령이 우리 나이로 4세 이하라면 손으로, 5세 이상이라면 도구를 사용해서 손의 협응력을 기른다. 씨는 단호박 살과 얼키설키 붙어 있으므로 어른용 포크처럼 단단해야 잘 떨어진다. 단, 아이가 뾰족한 포크에 다치지 않도록 주의 시킨다.

파낸 씨는 식이섬유가 엉킨 노란 실처럼 붙어 있어 재미있는 놀잇감이 된다. 움켜쥐면 손가락 사이로 미끄덩 빠지는 씨 뭉치, 빈 종이에 손바닥 도장 찍기나 손가락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 위에 씨를 콕콕 찍으면 아이만의 그림 완성.

“손가락 끝에 씨는 뭐니?” “손톱이에요”

“콕콕콕, 개나리꽃이 피었어요.”

콕콕콕, 개나리꽃이 피었어요. ⓒ신혜원
"손가락 끝에 씨는 뭐니?" "손톱이에요." ⓒ신혜원

스텐볼에 씨를 옮겨 물을 부으면, 노랗게 물든 아이 손도 씻을 수 있고, 새로운 놀잇감이 된다. 누가 더 씨를 많이 잡나, 여름 냇가에서 송사리를 잡듯 씨 아래 두 손을 모은다. 잡은 씨는 다시 물속으로 다이빙한다. 풍덩!

“무슨 소리지?”

“톡톡톡, 빗방울이 떨어져요”

“쉿, 아기 사자 발걸음 소리예요”

아이의 해맑게 웃는 모습과 조잘거리는 소리, 며칠째 답답했던 집안이 다시 활기를 찾는다. 실컷 놀고 난 뒤에는 씨를 햇빛에 말려보자. 말린 씨를 빈 통에 담으면 신나는 마라카스 악기로, 프라이팬에 볶으면 고소한 간식으로 변신한다.

네 번째, 겉껍질은 부모가 칼로 벗기고, 믹서기에 생크림(또는 우유)과 같이 간다. 마지막으로 냄비에 끓여 완성한다. 수프를 빨리 완성하고 싶다면 아이와 활동 후 단호박을 더 익히면 된다. 농도는 기호에 맞게 생크림(또는 우유)을 더 하거나 뺄 수 있다. 완성된 수프는 가족이 함께 맛있게 먹으며 이야기 나눈다.

늙은호박, 단호박, 애호박, 돼지호박. 이름도 생김새도 제각각, 맛이나 식감도 조금씩 다르지만,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채소임에는 틀림없다. 그나마 단호박은 맛이 달아 잘 먹는 아이도 있지만, 질척거리는 식감이나 진한 노란색으로 아이들의 호불호가 갈린다.

찌개류의 단골 재료인 애호박이나 돼지 호박 역시 물컹거리는 식감으로 나 역시 어릴 때 절대 먹지 않는 채소였다. 식감이 싫어서 먹지 않는 아이라면, 달걀옷을 입혀 바삭한 호박전은 어떨까? 맛있는 소리와 온 집안을 가득 메운 부침개 냄새에 아이가 먼저 말을 걸지도 모른다. “엄마, 맛있는 냄새가 나요. 배고파요”라고 말이다.

*칼럼니스트 신혜원은 다양한 현장에서 20여 년간 영양사로 일했으며, 현재는 수원여자대학교 식품영양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영양 전문가로 편식하는 아이와 부모를 만나면 나름의 고충이 보인다. 먹는 것보다 스마트폰이 재미있는 아이, 스마트폰을 보여주면서라도 먹이고 싶은 부모, 밥 먹는 것이 그야말로 전쟁이다. 당장 한 입 먹이기 위한 노력보다는 먹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자. ‘열두 가지 채소 이야기’와 함께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서서히, 그리고 즐겁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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