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개의 N번방… '그 아이'는 아직 사과받지 못했다
n개의 N번방… '그 아이'는 아직 사과받지 못했다
  • 기고=김희진
  • 승인 2020.03.3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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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희진 국제아동인권센터 변호사
검거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베이비뉴스
검거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베이비뉴스

“사과는 저한테 해야지, 왜 판사한테 해요?”

아동 성착취 사건의 피고인이 재판부에 거듭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피해아동이 한 말이다.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 멈춰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주요 인물로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피의자가 취재진 앞에서 했다는 발언을 보며, 위 사건과 너무나도 유사한 범죄의 피해자였던 한 아이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는 누구에게 사죄하고 있단 말인가.

2019년 한 해, 대상아동·청소년 규정 삭제, 모든 성착취 피해아동 보호를 위한 통합지원체계 마련 등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청소년성보호법) 개정 필요성을 수없이 외쳤다.

사실상 성착취범죄 피해아동에게 책임을 묻는 현행 규정은 국제인권규범에 명백히 반하며, 아동인권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 문제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수차례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요지부동이었다.

청소년성보호법 관련 소관부처인 법무부는, 자발적으로 성을 팔았다고 분류된 대상아동·청소년에게 소년법상 보호처분을 적용하는 규정은 이들의 성매매 유입을 방지하기 위한 보호조치라며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에 반대하였다. 2019년 9월 19일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국가심의에서는 ‘재범 방지 목적을 위하여 시행 중인 보호처분제도’라 표현하였으니, 성매매 피해아동에 대한 시각을 여실히 드러내기도 하였다.

하물며 개정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한 내용이란 ▲일정 연령을 기준으로 그 이하인 아동·청소년만 대상아동·청소년 규정에서 제외하는 것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보호, 지원체계가 대상아동·청소년을 포괄할 수 있으므로 별도의 지원체계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국제사회가 합의하였으며 한국도 동의한 아동의 연령 정의에 대한 몰이해와 함께, 성적 착취 및 성적 학대에 관련된 아동 피해자의 행위를 문제삼는 왜곡된 시각을 찾아볼 수 있다.

국회도 다르지 않았다. 제19대 국회에서 2015년 8월 발의되었던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되었다.

제20대 국회에서 2016년 8월 8일(남인순 의원 대표발의), 2017년 2월 13일(김삼화 의원 대표발의) 발의된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은 2018년 2월 21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통과된 이후 2018년 2월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었으나, 법제사법위원회 제2소위에 회부된 후 현재까지 계류되어 있다.

법사위는 법무부 반대의견으로 정부안이 통합되지 않았음을 변명했을 뿐이다. 삼권분립의 견제장치는 국민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고자 마련된 것이며, 위와 같은 국회의 부작위는 명백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김희진 국제아동인권센터 변호사 ⓒ베이비뉴스
김희진 국제아동인권센터 변호사 ⓒ베이비뉴스

◇ 수많은 분노의 목소리 속에 아동인권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짚는다

그렇게 권력을 위임받은 그 어떤 국가권력도 아동에 대한 성착취범죄 문제에 귀 기울이지 않는 동안 수많은 아이들이 다양한 형태의 범죄에 노출되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N번방 사건의 피해자에도 다수의 아동이 포함되어 있다.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 이들의 피해회복을 적절히 지원하지 못하는 보호체계의 한계, 나아가 가정환경 부재 등 취약한 상황에 있는 아동이 더욱 많을 가능성을 고려할 때, 아동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하니, 행위에 걸맞은 처벌은 그 출발점이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성착취범죄에 대한 한국의 형량이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음을 수차례 지적하였다. 발달과정에 있는 아동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한 간접정범 이론도 검토될 수 있으며, 과정 전반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 또한 해당 범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공범이다.

급격한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발달과정에서 입체적인 기억으로 채워지는 아동기의 소중함에 동의한다면, 본 사건을 다루는 모든 사법부 관계자, 법 집행자는 공익에 대한 소명의식을 다하여 법적 논리를 구성해야 한다.

여성과 아동 대상 성착취에 대한 관련 법규 개정도 시급하다. 여타 범죄와 비교하여 현저히 낮은 법정형은 해당 범죄행위를 평가하는 사회의 인식을 나타낸다. 한국 사회가 성범죄, 특히 아동에 대한 성착취범죄에 특히 관대하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누적된 온갖 사회적 병폐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가장 취약한 사람의 인권보장이라는 법 본연의 목적에 적절하게 개정방향이 논의되어야 한다.

성착취범죄에 관련된 모든 아동을 피해자로 인지하고, 피해아동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이들의 회복과 사회복귀를 지원할 수 있는 전담지원체계를 마련하는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도 중대한 과제 중 하나이다.

무엇보다, N번방 사건을 바라보는 수많은 분노의 목소리 속에 아동인권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짚고 싶다. 여성의 존재를 성적 대상으로 취급해 온 문화, 특히 아동의 인격적 주체성을 경시한 문화, 그 폐습을 답습하는 긴 시간 수많은 아이들이 그들의 소중한 아동기를 박탈당했다. 아동 성착취는 아동의 보호받을 권리를 가장 심각하게 침해하는 요소 중 하나이며, 피해자에게 오랫동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 국제사회는 ‘아동 성매매’ 대신 ‘성매매 상황에 있는 아동성착취’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성매매 상황에서 착취된 아동’으로 표현하며, ‘아동 음란물’ 대신 ‘아동 성학대물’ 또는 ‘아동 성착취물’과 같은 용어로 대체하여 사용할 것을 권고하였는데, 이는 범죄의 중대함을 축소시키거나 아동에게 비난의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즉, 아동의 존재론적 삶의 가치를 인식하고,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아동의 권리를 알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아동에게 가해지는 부당하고 잔혹한 폭력에 맞서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아동권리에 기반한 접근은 인권의 존중과 실현을 위한 방향성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법률은 더불어 사는 사회의 안정을 위한 약속이며, 더불어 사는 사회는 가장 소외된 상황에 있는 사람의 존엄한 삶을 약속하는 사회이다. N번방 사건에 가담한 일체의 행위가 반인륜행위에 해당한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남기기를, 그래서 성착취범죄 가해자들이 자기연민과 핑계를 넘어 진정 피해자에 대한 사죄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금도 누군가의 컴퓨터에, 스마트폰 속에 가득 차 있을 n개의 N번방이 모두 사라질 날을 고대하며, 분노와 슬픔이 엉킨 마음만큼 정돈되지 않는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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