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뭐였을까…’ 나도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부부는 뭐였을까…’ 나도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 칼럼니스트 차은아
  • 승인 2020.04.1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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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아의 아이 엠 싱글마마] 행복하게 살고 싶은 바람
드라마 「부부의 세계」.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JTBC

요즘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난리라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봤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드라마광인 우리 큰언니가 ‘아주 신명 나게 암을 유발하는 최고의 드라마’라면서 ‘끊을 수 없는 마력의 소유자 같은 드라마’라며 극찬을 했다.

나는 언니에게 “그 드라마 안 봐도 알 거 같아. 김희애의 마음을… 내가 다 겪어 봐서 안 봐도 어떤 마음일지 다 알겠는데?”라고 하자, 언니는 “그래, 너는 안 봐도 더 잘 알 거 같아”라고 대답했다. 과거 내 경험을 떠올리면서 둘 다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남편은 바람이 났다. 상대 여자는 임신을 했고, 남편은 상대를 지키겠다며 떠났다. 그를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

‘부부는 뭐였을까?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는 지선우(김희애 분)의 독백 속에서, 현실에서 오는 피곤함과 나에 대한 실망,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연민, 무시 등 모든 감정이 섞여 있음을 느꼈다. 극 중 지선우 자신도 지금 어떻게 부부 사이를 정리할 수 없기에 그저 감정을 억누른 채, 이성으로 꾹꾹 눌러 부부의 정의를 내리기를 잠시 망설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 또한 전 남편이 ‘그 여자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는 너와 후회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며 ‘너는 더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아’라고 말했다. 그때 나 또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보고 다른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라고? 그리고 지금부터 너는 그 여자와 행복하게 살겠다고?’

내가 사람이 아니고 동물이었다면,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감정적인 사람이었다면 그 말을 하는 저 입술을 무엇으로 갚아줬을까? 무책임을 떠나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것’이라는 상황 파악을 뒤로 미뤄둔 채 가증한 입술로 ‘나는 그녀와 이제 행복하게 살 테니 너도 행복하게 살면서 좋은 남자를 만나서 잘 먹고 잘살라’는 그 남자의 말에 나는 더 대꾸하지 않았다.

◇ 이제는 옅어진 복수심… 그래도 그가 마음 편히 웃지 못할 거란 걸 안다

나이를 먹어가며, 많은 사람이 혈기를 부리지 않고 참고 이해하면서 넘어가는 이유를 깨닫는다.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 내가 들어가 봤자 내가 더 아프고 내가 더 피곤하고 다 부질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귀찮다’라는 마음에서 참는 것임을. 그래서 화를 내며 혈기를 부리며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감정을 끄집어내 ‘상대방을 부숴버리겠다’는 고집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약간의 먹먹함과 짜증 그리고 황당함과 어이없음에 ‘그래?’라고 말하고 돌아섰다. ‘최고의 복수가 무엇인지’를 내 무의식은 알고 있었나 보다. 

‘너를 위해 쓰는 나의 시간과 감정과 눈물도 아깝다. 이 에너지를 너에게 쓰느니, 나와 나의 딸에게 쓰는 것이 지금은 더 현명하다. 너는 지금 그녀와 앞으로 생길 네 아이에게 새로운 희망과 행복을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 행복도 그 기쁨도 단물이 빠지면 네 가슴 속에 ‘딸을 버린 아버지’라는 꼬리표가 평생 너의 인생을 목조를 것이다.‘

아무도 모른다고 하더라도, 겉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행복해 보일지 몰라도,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더라도 전 남편 스스로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에게 용서를 구하고 책임지지 않은 이상, 전 남편은 절대로 마음 편히 웃을 수 없을 거라는 걸 안다. 그게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매번 죄책감을 느낄 수 없더라도 ‘자식을 버린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평생 전 남편의 삶을 따라다니며 어둡게 하고 슬프게 하며 울게 할 거다. 전 남편이 나에게 질문한 그 짧은 시간의 찰나에 나는 많은 것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전 남편의 미래가 축복이듯 기쁨일지 몰라 혼자 방방 뜨고 있을지라도, 아이를 버린 그 책임에 대한 대가는 어떻게든 돌고 돌아 전 남편에게 돌아갈 것이며, 그게 인과응보라는 것을.

그 시간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지만, 내가 흘린 눈물만큼, 우리 딸이 아빠의 부재로 느낄 모든 슬픔이 차곡차곡 쌓여서 전 남편에게 돌아갈 것임을 나는 안다. 가정과 아이를 지키는 것이 사람으로서 도리이기에, 그 책임을 저버린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차곡차곡 쌓여 전 남편에게 돌아가리라 생각했다.

◇ 지선우에게서 과거의 나를 봤다… 들을 귀가 없는 그에게 할 말은 없다

부부로 시작해 남편의 불륜 고백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던 「부부의 세계」 속 지선우. 그의 눈물에서 나는 나의 눈물을 봤다. 원망과 분노, 증오, 억울함 등 모든 감정을 끄집어내어 울고 난 후에 더 이상의 눈물도 나오지 않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는 독백에서는 과거 내 모습을 봤다. 미련도 쓸쓸함도 원망도 없이 그저 그 속 안에서 견디는 것이 유일했던 내 모습을.

나는 지금 그 어떤 감정에서도 빠져나와 있다. 이성적으로 괜찮은 척도 멀쩡한 척도 하지 않는다. 또 혈기로 복수하겠다는 오기도 다 부질없다는 것을 안다. 그 이후 시간 사이에 남아있는 잔재들을 바라보며, 불쑥불쑥 올라오는 후유증과 현실적인 상황에서 그저 나 자신 속에서 고요하게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지선우를 보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 자존감을 채우며 그저 조용히 버티는 것이 최선임을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건 아닐지 생각해봤다. 나 또한 나의 과거의 상황에 빗대어 과거의 나를 바라봤다. “부부는 뭐였을까?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는 무심한 듯 툭 뱉은 말이, 떠나간 상대방에 대한 배려 섞인 감정도 함축돼 있다는 것이 내 눈에는 보였다. 그 감정을 읽은 건 과연 나뿐일까.
 
인간의 도리를 어긴 것에 모든 것을 감당하며 책임지는 자의 삶으로 살았다면 그의 삶은 지금보다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도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고 노력했다면 그 대가로 지금은 행복한 재혼 생활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이혼 몇 년 뒤, 전 남편과 다시 연락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행복하냐”고 물었다. 전 남편은 예전의 내게 했던 것처럼 지금의 그녀에게 책임을 돌리며 “똑같다”고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서 ‘후회와 괴로움만 남았지만, 해결한 방법도 돌아갈 방법도 없다’는 그의 감정을 느꼈다.

“다른 남자를 만나 행복하라”고 말했던 그에게 ‘더 이상 지금처럼 살지 말고 그 대가를 겸허히 받아드리며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살아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들을 수 있는 귀가 그에게 없음을 알기에, 나는 그가 했던 말 그대로를 다시 되돌려줬다. “그래, 이제 당신도 행복하게 살아. 당신이 원하는 대로.”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8년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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