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재택근무 하는 '고용자'라 미안합니다
이모! 재택근무 하는 '고용자'라 미안합니다
  • 칼럼니스트 김보민
  • 승인 2020.04.2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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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지구인으로 살아가기] 코로나19 때문에 시작된 '어색한 동거’

오늘이 며칠인가. 달력을 보며 날짜를 짚어본다. 4주를 꽉 채워 재택근무를 했고, 아이들이 홈 스쿨링을 한 지도 일주일 반이 흘렀다.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매일 최고치를 경신하던 2월 말, WHO에서 팬데믹을 선언했던 3월 초, 싱가포르는 오히려 상황이 나아지는 듯 보였다. 규모가 있는 글로벌 회사를 중심으로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그래도 여전히 학교에 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1주일간의 봄방학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갔을 때, 유치원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고, 갑자기 상황이 나빠지며 확진자 수가 대거 늘어났다. 결국, 싱가포르 정부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이동을 자제하고 집에만 머무르기를 요청했다. 

4월 3일 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를 발동해 주요 공공 부문 근무자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직장인을 집에서 일하게 했고, 유아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학생의 수업을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했다. 식품을 살 수 있는 슈퍼, 편의점, 빵집, 포장이 가능한 음식을 파는 식당, 약국, 병원, 안경점을 제외한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재택근무를 시행하지 않는 사업주, 슈퍼, 식당 등에서 1m 이상 거리를 유지하지 않거나,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에게는 벌금을 부과했다. 최근에는 건설 현장 등지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정부에서는 최대한으로 외출을 자제하고 함께 사는 사람 외에는 만나는 일이 없도록 하라며 주의를 시켰다. 

다들 집에 갇혀 살며 나날이 예민해지는 모양이다. 며칠 전까지는 그래도 콘도(아파트 형태의 주거 단지인데 여기서는 콘도라 부른다) 내에서 아이들이 킥보드를 잘 타고 놀았는데, 낮에 애들 노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와 결국 아이들은 킥보드도 못 타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여섯 식구 모두 집안에 갇혀 지내게 되었다. 우리 집에는 총 다섯 명의 인간과 한 마리의 햄스터가 살고 있다. 다섯 명의 인간은 나와 남편, 여섯 살 큰아이와 두 살 작은 아이 그리고 ‘이모’이다. 

◇ 싱가포르 서킷 브레이커 발동 후 가장 신경 쓰인 사람… 아이들 아닌 '헬퍼'

매일, 종일 고용자와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한다니. 얼마나 불편하고 답답할까?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를 시작하며 가장 마음에 걸린 것은 우리집 헬퍼, '이모'였다. ⓒ베이비뉴스
매일, 종일 고용자와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한다니. 얼마나 불편하고 답답할까?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를 시작하며 가장 마음에 걸린 것은 우리 집 헬퍼, '이모'였다. ⓒ베이비뉴스

이모는 나의 여자 형제가 아니다. 나와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해주는 헬퍼(helper)다. 나는 에이전시를 통해 그녀의 고용 계약서를 작성했고, 에이전시 수수료와 그녀의 노동 비자(Work Permit for foreign domestic worker, 가정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비자) 발급에 대한 세금을 싱가포르 정부에 납부하는 그녀의 고용주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가족들은 아이들도 헬퍼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던데 아이가 어른의 이름을 부른다는 게 우리 식구에겐 아직 어색하고 서툰 일이어서 아이들은 그녀를 ‘이모’라 부른다. 

싱가포르에서는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해주는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수 있다. 약 25만 명의 여성이 싱가포르에서 헬퍼로 일하며 돈을 벌고 고향의 가족을 부양하는데, 주로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지에서 왔다.

우리 이모는 인도네시아 롬복에서 왔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TOP 5에 든다는 곳, 몇 해 전 종영된 TV 프로그램인 ‘윤식당’(tvN)이 있었던 길리섬과 지상의 천국이라 불리는 발리 바로 옆에 있는 곳,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곳곳에 널려 있다는 그 섬이 바로 그녀의 고향이다.

서킷 브레이커 발동 소식에 가장 많이 신경이 쓰인 사람은 바로 우리 이모였다. 나와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면 집안일도 수월하게 하고, 밥도 맘 편히 먹고, 쉬는 시간에 커피도 여유 있게 한잔했을 텐데 코로나 때문에 고용주가 하나도 아닌 둘이 그녀의 일터에 버젓이 돌아다니니 얼마나 마음이 불편할까 싶어서.

회사에서도 상사가 휴가를 가거나 출장을 갔을 때의 마음가짐과 상사가 내 정수리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근무하는 날의 내 마음가짐은 뭐가 달라도 다른데, 이모라고 그렇지 않았을까.

강제 재택 첫째 날, 이모는 정오가 다가오자 점심은 뭘 먹겠냐고 물어봤고, 오후 3시가 되자 커피를 한잔하겠냐고 물어봤다. 이모와 함께 산 지, 이모를 고용해 집안일을 맡긴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나도 할 수 있는 일을 이모가 해준다고 하면 늘 뭔가 어색하고 불편하여 내가 차려 먹겠다며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고 대충 점심상을 준비해 이십 분만에 해치웠다. 

거기에 더해, 아이 둘의 학교가 문을 닫고 홈 스쿨링이 시작되면서 이모의 업무 강도는 세질 수밖에 없었다. 어른 둘은 하루 두 끼를 먹는다고 해도, 하루 세끼에 간식까지 꼬박꼬박 먹어대는 아이 둘의 밥상만 해도 일거리가 엄청나다. 거기다 집안 살림까지 모두 해야 하니 생각만 해도 내 어깨가 쑤셔온다.

집안일을 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해도 티가 안 나는 일이 대부분이고, 그렇다고 안 하면 안 한 티는 줄줄 흐르는 게 집안일이니 하는 사람 관점에서 늘 허무하기 마련인 일인 게다.

나는 이모와 번갈아서 장을 보러 가는데, 내가 장을 보러 갈 때마다 특별히 먹고 싶은 것이 있는지, 어떤 과일이나 채소를 좋아하는지 이모에게 종종 물어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이모는 “집에 있는 것 먹으면 되니 신경 안 써도 된다”라며 웃는 얼굴을 한다. 

그런데도 이모에게 자꾸 물어보게 된다. 이렇게 집에서만 지지고 볶으며 지내야 하는 동안 가장 신경 써서 챙겨야 하는 건 이 집에 같이 사는, 우리 모두의 '마음의 평안'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로 이모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며 나누는 대화도 많아졌다.

◇ 함께 있는 시간 길어지니 ‘이모의 삶’에도 귀 기울이게 됐다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요즘 이모와 나는 한국 음식을 하나씩 함께 해보는 중이다. 이모가 만든 첫 번째 김치. ⓒ김보민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요즘 이모와 나는 한국 음식을 하나씩 함께 해보는 중이다. 이모가 만든 첫 번째 김치. ⓒ김보민
내겐 너무 어려웠던 김밥말기. 두 번 도전하고 두 번 모두 실패해 그동안 포기했던 김밥말기를 이모는 단숨에 어여쁘게 잘도 말아냈다. ⓒ김보민
내겐 너무 어려웠던 김밥말기. 두 번 도전하고 두 번 모두 실패해 그동안 포기했던 김밥말기를 이모는 단숨에 어여쁘게 잘도 말아냈다. ⓒ김보민

롬복에서 온 우리 이모는 우리 가족이 싱가포르에서 만난 두 번째 헬퍼다. 첫 번째 이모는 필리핀 사람이었는데 마닐라에서 버스를 타고 열 시간을 가야 고향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작년 8월, 아버지가 매우 편찮으시다는 소리에 어서 가서 만나고 오라고 2주 휴가를 줬는데 그녀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싱가포르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이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걱정과 동시에, 당장 애 둘을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하게 새로운 이모를 찾아 나섰고, 지금 이모와 인연이 닿았다. 

이모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5년, 싱가포르에서 5년째 헬퍼로 일하고 있다. 남의 집 살림살이를 챙기는 일은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아맞힐 수 있는 눈치 백 단의 베테랑이다.

그런데 이모는 싱가포르에 온 지 5년 동안 한 번도 고향에 못 갔다고 했다. 헬퍼 고용 계약서의 계약 기간은 2년이다. 2년 후 재계약을 하게 되면 이모에게 2주간의 유급 휴가가 주어지고, 고용주는 헬퍼에게 고향에 다녀올 수 있는 항공권을 사줘야 한다. 

이 시점에서 고용주와 결별하는 이모들의 경우 고향을 다녀올 기회도 없이 다른 고용주를 찾아 나서게 된다. 당장 일을 하지 못하면 거주할 곳도 마땅치 않고 돈은 계속 벌어야 하니 자비를 들여 귀향을 결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모는 우리 집에 오기 직전에 중국계 싱가포르 가족의 집에서 할머니를 돌보았다. 이모는 그 집에서 중국 음식을 배웠고, 보이차를 깔끔하고 우려내는 법도 익혔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집에서 할 일이 없어지자 계약이 파기됐다. 헬퍼 계약이 파기되면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기간이 2주 주어지는데, 이모는 그사이에 우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올해 15살 된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 남동생 가족이 돌봐 준다고 했다. 5년 전 아이가 열 살일 때 한번 보고 지금까지 아이를 못 보고 살았다. 남편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아 대놓고 물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거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어 일부러 물어보진 않았다.

이모는 월급 일부를 인도네시아 롬복에 있는 식구들에게 보낸다. 몇 해 전 심한 폭우에 고향 집이 무너져 다시 집을 짓고 있단다. 이모의 월급은 그 집에 들어가기도 하고, 아이 학비로도 쓰인다고 했다. 

◇ 같은 ‘여성 외국인 노동자’로서, 나는 이모가 ‘진짜’ 행복했으면 좋겠다

각자의 삶은 달라도 '여성 외국인 노동자'라는 공통점으로 싱가포르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상, 우리 식구와 한솥밥을 먹는 이상, 나는 이모에게 '해피엔딩'의 조력자로 남고싶다. ​ⓒ김보민
각자의 삶은 달라도 '여성 외국인 노동자'라는 공통점으로 싱가포르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상, 우리 식구와 한솥밥을 먹는 이상, 나는 이모에게 '해피엔딩'의 조력자로 남고싶다. ​ⓒ김보민

지금까지 우리 이모에 대해 담담하게 그렸지만, ‘이모’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한 공간에서 같이 생활하는 건 너무나도 어렵고 어색하고 불편한 일이었다. 언어도 문화도 생김새도 다른 누군가가 우리 집에 살면서 아이들 밥을 지어주고, 빨래를 해주고, 청소해준다는 것이 왜 그토록 불편하고 어려운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수도 없이 많았다. 

우리 이모는 우리나라 돈으로 약 6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 구글로 찾아본 인도네시아 경찰관 평균 급여가 100만 원 정도라고 하니 그녀에게 이 돈은 크다면 큰돈이다.

아침 7시 30분 아이 등교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이모는 오전 6시가 직전에 일어나 아이들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상을 물리고 주방 뒷정리가 마무리되는 오후 9시 무렵에 하루 업무를 마무리한다. 그녀는 일평균 15시간의 노동을 하고 2만 원 남짓의 일당을 받는 셈이다.

거기다가 한국 사람들이 헬퍼를 '식모'라 부르는 것을 들으면 마음은 더 이상해진다. 60~70년대 시골에서 상경해 식모살이하는데, 임금도 못 받고 근근이 살았다는 숱한 여성들의 이야기도 떠오르기 때문이다.

세상이 좋아져서 매일 영상 통화를 하며 가족들의 안녕을 물어볼 수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몇 년 동안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고향에 있는 가족의 일상 영위를 위해 노동을 해야 하는 삶이란, 여행으로 남의 집에서 며칠 지내도 마음이 불편한데 남의 집 살림을 살아야 하고 남의 자식을 온종일 거두어야 하는 삶이란 얼마나 고단할까. 

어느 날 저녁 남편이 이모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해졌는지 나에게 물었다. 남편 역시 집안일을 덜할 수 있어 편하면서도 마음 한편은 늘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 육아휴직 기간 동안 독박육아를 하며 집안일도 했던 때를 떠올려보면, 지금 이모의 급여는 말도 안되는 수준이야. 그런데 급여의 기준을 한국이 아닌 인도네시아로 본다면 이모에게는 납득이 될 정도의 수준일 수도 있겠지.

지구 전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느낌이 들면 내가 이모의 상황을 가엾고 안쓰럽게만 봐서는 안 되는구나 싶어. 그녀도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는 여성 노동자라는 관점이 더 중요한 것 같아. 경제 활동을 해서 가족을 부양하고 ‘돈’이라는 수단으로 책임을 다 하는 한 사람인 거지."

나에게 이모는 나의 남편만큼 중요한 사람이다. 나의 생활과 양육의 조력자이기 때문이다. 이만큼 중요한 일을 하는 그녀는 지금 행복할까? 일하고 돈 버는 행위에서 우리는 행복감을 느껴야 그 일을 지속할 수 있다.

이모는 나의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이들의 밥을 지어 먹이면서 “I’m happy(나는 행복해요)”라는 말을 종종 한다. 그런데 그녀는 진심으로 행복할까? 그리고 이모의 꿈은 무엇일까? 그리고 언제쯤 우리 아이의 놀이방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생활을 끝내고 그녀와 가족들을 위한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이모의 '헬퍼'라는 직업의 끝은 ‘해피엔딩’일까? 

싱가포르와 타이완과 홍콩, 사우디아라비아 등 세계 각지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이모’들의 끝이 ‘해피엔딩’이기를 바란다. 어떤 땅에서든 ‘여성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는 삶은 녹록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나 가정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줄곧 누군가의 뒤를 치우고 닦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마음도 몸만큼이나 고단할 때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식구와 한솥밥을 먹는 이모에게 나는 해피엔딩의 조력자로 남고 싶다. 계약서에 서로의 사인을 남긴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이지만 타국에서 코로나의 위기를 함께 견뎌내어야 하는 ‘여성 외국인 노동자’라는 공통점으로 서로 의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칼럼니스트 김보민은 '한국땅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산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라는 호기심으로 2년째 싱가포르에 체류 중이다. 싱가포르에 올 때 4살이던 첫째와 생후 2개월이던 둘째는 어느덧 각각 6살, 26개월로 훌쩍 자랐다. 365일 여름이고, 아시아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주로 영어를 쓰고, 작은 나라이면서도 어마어마하게 큰 아시아를 가르쳐주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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