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엄마에게 육아란 '졸업 없는 대학원' 같았다
과학자 엄마에게 육아란 '졸업 없는 대학원' 같았다
  • 칼럼니스트 윤정인
  • 승인 2020.04.2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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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과학자 생존기] 연구와 육아의 공통점. 그리고 단 하나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출산휴가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매일 집에만 갇혀 쪽잠 자며 아이를 돌봤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에 대한 사랑도 커졌지만 그만큼 짜증이 솟구치던 시기. 아이를 사랑하긴 하지만 아이가 울 때 모른 척 귀 틀어막고 잠자고 싶다는 인간 본연의 욕구가 단전에서 올라오던 시기. 

하지만 결국 한 손엔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 아이 먹을 분유를 타던 그 시기. 엄마, 아빠, 동생들이 도와주던 그 ‘꿈 같던’ 산후조리 시기가 끝나고 나 홀로 육아 전쟁에 참전해 고군분투하던 그 시기. 정말 힘들었다. 육아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말이 안 통하는 아이를 돌보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산모교실에서 배운 베이비 랭귀지. 땡그리에게 써 먹으려고 했는데 결국 안 됐다. ⓒ윤정인
산모교실에서 배운 베이비 랭귀지. 땡그리에게 써 먹으려고 했는데 결국 안 됐다. ⓒ윤정인

나는 뭐든 글로 배우는 사람이다. 그래서 말이 안 통하는 아이의 언어를 가르쳐 준다는 태교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 있었다. ‘베이비 랭귀지(Baby language)’라고 불리는 것인데,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각각의 요구사항을 분석해 통계를 낸 자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강의를 들은 나와 신랑은 ‘획기적’이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고, 땡그리를 돌보며 이 데이터를 십분 활용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 우리는 저 자료에 나온 베이비 랭귀지를 땡그리에게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런 경험을 켜켜이 쌓아가며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생각보다 육아는 실험과 비슷한 점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 나 혼자 아이를 돌보는 낮 시간 “나는 지금 실험 중이다”라고 자기 최면을 걸며 고독한 육아를 버틸 수 있었다. 사실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육아 중이다. 그렇다면 육아와 유기화학 실험의 유사점을 찾아보자. 

◇ 세상에 ‘같은 실험’ 없듯이 아기 울음도 다 이유가 달랐다 

유기화학 실험에는 ‘동일한 실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나의 세부 전공인 의약품 합성화학에서는 모든 구조가 같지 않다. 아주 미세하게 다른 부분들을 만들고 실험을 하는데, 앞에 비슷한 구조로 실험에 성공했다면, 뒤에서도 성공할 확률이 높으리라 추측한 뒤 실험한다. 육아와 비교하면 더 설명이 쉽겠다.

어제 한 실험, 오늘 한 실험. 모습은 비슷해도 내용이 다르다. 어제 애가 울고, 오늘도 애가 울었다. 우는 모습은 같으나 운 이유가 다르다. 어제는 배가 아파 울었고, 오늘은 배가 고파 울었다. 대충 이런 느낌이다. 그래서 육아로 힘든 순간이 오면 실험이 안 될 때 마음을 비우고 실험에 임했던 석사 절을 되새기며 “그래, 그래도 지금이 그때보단 덜 힘들지…”라고 마음의 위안 삼으며 아이의 울음소리를 버텼다.  

비슷한 실험을 하려면 누군가 선행한 연구자료가 필요하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레퍼런스(Reference)’라고 부른다. 모든 연구는 누군가 선행한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런 선행연구와 비교하기 위한 대조군도 존재한다. 대조군은 나와 비교 가능한 모든 것에 해당한다. 이걸 육아에 반영해보자.

육아는 말할 것도 없이 엄청난 양의 레퍼런스가 존재한다. 우리 자신이 바로 그 레퍼런스고, 우리의 부모님이자 아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바로 그 레퍼런스를 탄생시킨 선행 연구자다. 지금 우리는 이 ‘연구의 산물’인 셈이다. 

그러나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봤을 때 내가 썩 좋은 레퍼런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럴 땐 육아서적을 뒤져 전문가의 경험을 레퍼런스 삼아 나의 육아에 투영하면 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전문가 서적을 레퍼런스로 추천하지 않는다. 나의 상황과 딱 맞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부터 전문가의 자녀가 아니므로. 내가 안 되는데, 내 유전자를 받아 태어난 아이에게 그 레퍼런스가 부합할 리 없다.
 
한편 육아에는 어떤 대조군이 있는가? 옆집 아이, 윗집 아이, 키즈카페에서 만난 아이, 어린이집에서 만난 아이 등등 여기저기서 만난 내가 아는 남의 아이가 곧 내 아이 육아 연구의 대조군이 될 수 있다. 연구로 치면 타 실험실 연구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너무 귀담아듣지 않는 것이 좋다. 연구자들은 이미 겪어봤을 것이고, 또 연구자가 아니라도 우리 모두 학창 시절을 거치며 경험해봤겠지만 남의 반(남의 실험실)은 늘 우리 반(우리 실험실)보다 좋아 보이는 법.

◇ 이슈와 해결의 반복…끝이 안 보이긴 실험이나 육아나 매한가지 

내가 생각한 실험의 굴레를 그려봤다. ⓒ윤정인
내가 생각한 실험의 굴레를 그려봤다. ⓒ윤정인

내가 하는 연구와 육아의 가장 큰 공통점은 매일 다른 이슈가 발생하고, 이슈를 해결하는 일이 나의 업(業)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미션이 해결되면 다시 새로운 미션이 생기고, 내가 도출한 가설은 맞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이 작업은 무한히 반복하며 매일 새로운 데이터를 쌓아간다. 결론.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질문. 학위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해서? 내가 실험을 다 마쳐서? 혹은 문제라고 생각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서? 아니다. 학위는 일종의 자격증과 같다. ‘너는 너의 답을 찾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노력했다’는 증서다. 그리고 ‘이만큼 연구해 본 경험이 있으니 또 다른 새로운 질문에 대한 답도 찾으러 갈 수 있다’는 자격증. 

그러니까 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노력했다’는 뜻이지 답을 찾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끝이 아닌 시작. 계속해서 질문은 이어지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노력도 끊이지 않는다. 매일매일 되풀이되는 도돌이표. 

내게 육아가 그랬다. 말 못 하는 아이의 표정과 울음의 높낮이를 살피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질문에 대한 답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작업-분유를 타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안아주고, 재워주고-를 반복한다. 실험을 수행하고 아이가 잠든 틈을 타 그 데이터를 육아일기에 업데이트한다.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고, 가족들에게 아이의 상태를 보고한다. 잠시 커피를 마시고 나면 다시 아이가 운다. 그리고 난 또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고, 다시 ‘육아 실험’을 시작한다. 

내게 육아란 ‘끝나지 않는 대학원’을 다니는 느낌이었다. 아니, 차라리 대학원에 다니면 사람하고 대화라도 하지. 육아는 마치 언어가 통하지 않는 다른 나라 지도교수(아기)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 연구와 비교했을 때 아기는 내게 말 안 통하는 지도교수이자, 실험 데이터였다. 

◇ 그런데, 왜 연구자의 커피는 괜찮고 육아인의 커피는 ‘사치’인가?

하루 한 번. 아이 데리고 카페에 나가 커피 마시는 그 시간이 내가 유일하게 사람답게 사는 시간이었는데, '맘충'소리 들을까봐 눈치보였다. 왜 엄마의 '1일 1커피'는 사치처럼 여겨질까. ⓒ베이비뉴스
하루 한 번. 아이 데리고 카페에 나가 커피 마시는 그 시간이 내가 유일하게 사람답게 사는 시간이었는데, '맘충'소리 들을까봐 눈치보였다. 왜 엄마의 '1일 1커피'는 사치처럼 여겨질까. ⓒ베이비뉴스

아기가 울 때 귀가 너무 따가웠다. 이러다 정말 귀에서 피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기 우는 소리 시끄럽다고 옆집 사람 쫓아오기 전에 아이를 달래고 재우고 먹이는 일상이 반복됐다. 그래서 빨리 연구실로 복귀하길 희망했다. 집에서 육아해보니 결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못 됐다. 진짜 미치는 줄 알았다.

미치기 전에, 사람다운 삶을 누리고 싶어 아기를 데리고 하루에 한 번은 무조건 나갔다. 동네 한 바퀴 돌고,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책을 들고 가서 카페모카를 마시며 아이가 잠든 사이 빠르게 책을 읽고 나왔다. 짧으면 30분, 길어야 한 시간 남짓한 그 시간이 하루 중 유일하게 내가 사람답게 숨 쉬는 시간이었다.

하루 한 잔 커피 사 마시는 나를 보고 누군가 ‘맘충’이라 하지 않을까 하는, 괜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기띠 혹은 유아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은 보통 나처럼 그냥 사람이 그리워서, 사람 좀 보고 싶어서 집 밖으로 나온 사람이다. 이것 역시 실험실에 비유해서 설명할 수 있겠다. 

실험실 생활에 찌들어서 커피 한 잔 시키고 ‘멍 때리며’ 앉아있는 대학원생을 보고 누가 ‘사치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냥 ‘안쓰럽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대학원생뿐만 아니라 학생이나, 직장인이나 피곤함에 찌든 모습으로 커피숍에서 매일 커피를 마신다면 누가 그 소비를 사치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런데 이상하게 ‘집에서 애 보는’ 육아인이 나와서 그러고 있으면 ‘사치’가 된다. 사람 좀 보고 싶어서, 어른들과 사람다운 대화 좀 하고 싶어서, 그냥 사람 말소리가 듣고 싶어서 그래서 카페에 나와 이들이 마시는 커피 한 잔을 사치라고 말한다면 연구자들이 마시는 커피 역시 사치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위에서 말한 대로 육아와 실험은 딱히 다르지 않았으니까. 육아인들도 연구자들만큼 매일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되게 살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커피 마시러 나온 육아인이 문제가 아니라, 남 커피 마시는 것 쳐다보며 욕 하는 사람이 문제일 수 있다. 굳이 쳐다보고 싶다면 측은지심을 갖고 바라봐 주길. 육아는 정말, 생각보다 힘들다.

*칼럼니스트 윤정인은 대학원생엄마, 취준생엄마, 백수엄마, 직장맘 등을 전전하며 엄마 과학자로 살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되었고,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서 젠더다양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프로불만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회사 다니는 유기화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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