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와 행복하게 잘 살아요” 이것이 '전처의 내공' 
“그 남자와 행복하게 잘 살아요” 이것이 '전처의 내공' 
  • 칼럼니스트 차은아
  • 승인 2020.05.0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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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아의 아이 엠 싱글마마] 지선우에 이입하면서도, 여다경을 이해한다

요즘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보면 너무 내 얘기 같다. 특히 남편의 불륜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데 정작 본처인 지선우(김희애 분)만 몰랐다는 부분에서 크게 이입했다. 내가 그랬다. 전 남편은 집을 나간 후 새 가정을 이뤘다. 그 사실은 주변의 가족 모두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나만 몰랐다. 그땐 그게 얼마나 억울했던지. 전 남편의 두 집 살림을 이혼 소송 중에 알았다면, 간통죄가 폐지되지 않았더라면 전 남편과 그녀를 함께 법정에 세웠을 텐데. 

‘부부의 세계’ 홈페이지에는 이른바 ‘상간녀’, 여다경(한소희 분)을 이렇게 소개한다.

‘끊어내지 못하는 전처와의 연결고리가 못내 짜증스럽다. 파탄 난 관계를 부여잡고 질척대는 지선우를 미쳤다고 생각했다. 같은 처지가 되고 난 후에야 지선우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인물소개 글 중 ‘질척대는’에서 시선이 멈췄다. 나도 그 말을 전 남편의 ‘그녀’에게서 들어본 적 있다. 

◇ "질척대지 마"라는 그녀의 악다구니에서 슬픔과 불안을 느꼈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보면서 지선우에 이입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여다경을 이해한다. ⓒJTBC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보면서 지선우에 이입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여다경을 이해한다. ⓒJTBC

어느 날 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벌써 아이가 둘이랬다. 나는 그에게 “행복하게 잘 살아”라는 말을 했다. 그의 행복을 빌기까지 내겐 긴 시간이 필요했다. 오래 아팠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의 새로운 삶과 그 아이들의 축복을 바랐다. 내가 신앙이 없었다면, 부모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성숙한 지인들의 조언이 없었다면 그를 용서하고 그의 새로운 가정을 축복할 수 있는 지혜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 남편의 그녀는 나의 축복에 불안을 느꼈던 모양이다. 갑자기 내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내게 “이미 끝난 사이에 추잡스럽게 질척거리지 말라”고 퍼부었다. 나는 “그 남자와 행복하게 잘 사세요. 하지만 아이 양육비는 받아야겠어요. 그쪽도 아이 엄마로서, 이해할 수 있지 않아요?” 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먹고 죽을 돈도 없다”라며 소리를 질렀다.

‘질척대지 말라’는 말에 불쾌할법했지만, 내가 똑같이 흥분하지 않았던 이유는 ‘질척’이라는 단어에서 그녀의 두려움과 불안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불안을 내게 악을 쓰며 토해낸다고 생각했다. 그녀 말마따나 이제 끝난 사이에 뭐가 그녀를 그렇게 불안하게 만들었는진 모르지만, 그것은 그녀만이 가진 두려움과 슬픔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그렇게 불안해서 나한테 이러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것을 ‘전처의 내공’이라고 자평한다면, 누가 나를 교만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무심하듯 여유로웠고, 그때의 그녀는 불안했다. 드라마를 보는데 갑자기 여다경을 보면서 그때의 그녀가 떠올랐고, 그땐 잘 헤아리기 어려웠던 그녀의 불안 또한 조금 더 알 수 있게 됐다.

그녀는 나와 남편이 살던 동네에서 그 남자의 새로운 와이프로 살아갔다. 나는 그 동네를 떠났지만, 알게 모르게 전처인 나와 비교당하고, 주변의 시선을 홀로 감당했을 것이다. 잘하려고 애도 많이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노력이 스스로 애잔하게 느껴졌을 것이고, 남편에게서, 동네에서 순간순간 전처의 흔적이 느껴져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독이 되고, 그 독기 가득한 마음을 결국 내게 터트린 것이리라.

◇ 전 부인은 잊어도, 아빠 그리워 하는 아이는 좀 기억해주면 안 될까

“나 그 여자 전화 받았잖아.”

“뭐? 걔 미친 거 아니니? 감히 어디에 전화를 걸어?”

그녀와 통화 소식을 전하자 주변 언니들은 나 대신 욕을 퍼부어줬다. 그들 덕에 잠시 괜히 이긴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녀와 나 사이.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긴장감이 대치하는 상황 속에서 그 속내를 먼저 표현한 사람이 지는 게임. 그녀는 먼저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내게 ‘질척거리지 마’란 말로 드러냈다. 나는 이미 끝난 관계에 목매지 않았고, 질척거리지도 않았다. 법으로도 그들에게 복수하려 들지 않았다.

다만 "행복하라"는 말은 한때 남편이었던 사람에 대한 마지막 노력이자 진심, 용기였다.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가기로 약속했지만, 그와 나는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고, 앞으로 ‘이혼’이란 타이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할 서로의 삶에 대한 배려였다. 그 마음이 어떻게 복수인가. 아니, 나와 그녀와 그. 이 세 사람 사이에 승자와 패자가 있는 게임이 가당키나 한가. 

‘부부의 세계’는 드라마이니, 어쨌든 누가 이기든 지든 결론이 날 것이다. 하지만 진짜 인생은 드라마와 좀 다르다. 남들이 다 졌다고 말하는 게임에서 당사자가 “나는 이겼어”라고 하면 그건 그 사람이 이긴 게임이 맞다. 반대로 모두 “네가 이겼어”라는 게임에서 스스로 패배감을 느낀다면, 그건 명백히 진 게임이다. 결국 인생에서 모든 과정과 결정은 내가 중심이다. 

진심으로 그가 새로 꾸린 그 가정이 행복하길 바란다. 특히 둘 사이에 태어난 두 아이도 부모의 사랑을 한없이 받으며 잘 크길 바란다. 다만,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서 본인이 버린 딸에 대한 마음을 좀 표현해주면 좋으련만. 나는 몰라도 내 딸은 아빠의 부재에 대한 보상을 좀 받았으면 좋겠는데.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8년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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