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예방보다 ‘자유로울 권리’ 더 중요하다고?
감염병 예방보다 ‘자유로울 권리’ 더 중요하다고?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0.05.11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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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 인류학] '일상생활 재개'를 외치는 미국, 아직은 불안한 나

벌써 5월 중순인데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다. 북부 펜실베이니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라지만, 그래도 5월에 내리는 눈이라니 기분이 묘하다. 큰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이번 학기 모두 집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한 지 오래다. 미국 초등학교는 6월에 한 학기를 마친다. 우리 집에서는 홈 스쿨링의 탈을 쓴, 자의 반 타의 반 방임 교육이 이뤄진 지 이미 한 달 이상 된 것 같다. 

'집콕' 석 달. 5월에 눈 내리는 마을을 창밖으로 내다보며 사태가 하루빨리 안정적으로 끝나길 바라본다. ⓒ이은
'집콕' 석 달. 5월에 눈 내리는 마을을 창밖으로 내다보며 사태가 하루빨리 안정적으로 끝나길 바라본다. ⓒ이은

두 돌 하고도 반 살 더 먹은 작은아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개 찰흙이나 물감을 가지고 놀다가 TV나 스마트폰 동영상을 보는 일이 반복된다. 아주 가끔, 날씨가 좀 따뜻하고 밖에 오가는 사람이 없는 시간에는 자전거 타는 흉내를 내거나, 오빠 따라 킥보드를 끌고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작은아이의 발은 아직 자전거 페달에 닿지도 않는다. 또래보다 키가 좀 큰 아이니 괜찮겠거니 하고 너무 큰 자전거를 사준 엄마의 욕심 탓이다. 

◇ 미국에서 구하기 어려워진 것… 손 세정제, 휴지, 그리고 ‘방방(?)’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대부분 집에 머물며 구하기 어려워진 물건들이 많은데, 생각 외의 물건도 포함돼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자전거다. 많지 않은 선택지 중 어렵게 아이의 자전거를 구하다 보니 크기를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아이 자전거만이 아니다. 집에 있는 어른들도 운동이 필요하니 실내 운동기구는 물론 가성비 좋다고 입소문 난 자전거는 이미 귀한 몸이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미국에서 구하기 어려워진 품목을 이야기해 보자. 손 세정제, 화장지, 종이행주 등은 두말할 나위 없고, 요즘은 빵 만들기 주재료인 강력분과 이스트를 비롯해 제빵에 필요한 재료들을 전처럼 쉽게 구할 수 없다. 한국에서 ‘방방’이라 불리는 트램펄린과 아이용 농구대도 품절이다. 미국에는 마당 있는 주택에 사는 가정이 많으므로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 수 있는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아이들이 주택가 사이드 워크(Side walk)에 그림을 그리며 노는 데 쓰는 분필, 보드게임, 비디오게임기를 비롯해 집에서 쓰는 요가 매트나 라운지 웨어의 판매량도 급증했다. 가성비 좋은 컴퓨터 스크린은 온라인 몰에선 재고조차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육류 가공업 종사자들의 부재로 당장 미국 내 육류 유통이 줄어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마트에서 파는 고기도 많이 줄었다.

◇ 코로나19 장기화에 ‘자유’ 원한다는 극단적 갈망 미국 곳곳에

'일상생활 재개'를 갈망하는 극단적 표현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바라는 푯말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볼때 미국의 어두운 면을 자꾸 확인하는 기분이 든다. ⓒpexels
'일상생활 재개'를 갈망하는 극단적 표현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바라는 푯말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볼때 미국의 어두운 면을 자꾸 확인하는 기분이 든다. ⓒpexels

코로나19로 인한 셧다운(Shutdown: 미국에서는 주로 stay-home, quarantine, shutdown과 같은 표현을 더 자주 쓴다. 한국 언론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lockdown이라는 표현은 상대적으로 사용 빈도수가 적은 듯 보인다), 그리고 계속되는 ‘집콕’ 생활에 다들 답답함고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생필품을 사는 간단한 일뿐만 아니라 생계와 관련한 불만도 끊이지 않는다. 어린이 대상 학원을 운영하는 지인은 하루하루 한숨이 는다. 일용직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당장 생계가 곤란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보다 일할 수 없는 매일 매일이 더 큰 공포다.

하지만 이런 절실한 문제를 떠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와 왜곡된 음모이론을 신봉하는 사람들까지 시위 전면에 나서면서 일상생활 재개(Reopen)를 요구하는 미국 시위대의 모습은 그동안 감춰져 있던 미국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다. TV 뉴스에 송출된 ‘약자가 희생을 (Sacrifice the Weak)’이라는 푯말은 정말이지 충격적이었다.

이 외에도 ‘코비드19는 거짓이다(COVID-19 is a Lie)’, ‘우리는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We have the right to be free)’, ‘사회적 거리 두기=공산주의 (Social distancing=communism)’, 그리고 ‘나 머리 자르러 가고 싶다고(I want a haircut)' 같은 문구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기원하는 ’Trump 2020‘이라는 푯말들과 어우러져 시위 공간에 넘쳐난다. 

디트로이트 등의 지역에서는 장총을 메고 나온 시위자들도 많이 보인다. ‘자유’를 원한다는 극단적인 갈망이 보인다. 한편에서는 일상생활 재개를 반대하는 움직임도 물론 있다. 미국 사회에도 당연히 여러 목소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백악관에서 자꾸만 일상생활 재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큰아이 학교와 남편이 일하는 대학도 8월 말 새 학기부터는 정상 운영할 것 같은데, 미국의 코로나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는 줄어들 줄 모르니 착잡하다.

맛있는 것들은 줄어들고, 멋있는 것들은 찾아볼 수 없고, 새로울 것 없는 하루 속에 날짜도 요일도 잊은 것 같다. 미국의 그림자 속에서 몸서리치며 부르르 떨다가, 그 저력을 믿으며 애써 힘 내보려 한다. 집콕 석 달째. 몸은 웅크리고 있지만, 마음만은 넓게 퍼져가길 바라며 눈 오는 5월의 창밖을 내다본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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