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했던 모유수유 적응기, 그리고 깨달은 것
험난했던 모유수유 적응기, 그리고 깨달은 것
  • 칼럼니스트 이미연
  • 승인 2020.05.20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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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맘Says] 육아의 답, 전문가 아닌 '아이'에게 있었다

영이가 세상에 나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와 남편은 당연히 자연분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영이는 예정일이 지나도 나올 생각이 없는지 배 속에서 활발히 태동할 뿐이었다. 예정일이 열흘이나 지났을까, 양수가 터지고 진통이 시작됐다. 그러던 중 갑자기 태아의 심박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자연분만을 기대했던 우리는 결국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결정했다. 영이는 탯줄을 제 몸에 세 번이나 감고 있었다. 다행히 응급으로 수술을 진행한 덕에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당연히, 자연분만을 준비하고 있던 우리 부부는 이때 느꼈다.

‘우리 뜻대로 되는 건 없는 걸까?’

급작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건강하게 우리 곁에 와준 영이. 하지만 영이와의 관계에서 내 뜻대로 되는 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영이가 태어난 지 며칠도 채 되지 않아 확실히 알게 됐다. 

◇ 모유수유에 적응한 방법… 젖 안 먹겠다는 아기의 뜻 받아들이기

10ml, 또 10ml. 귀했던 초유. 참 어려웠던 모유수유. ⓒ이미연
10ml, 또 10ml. 귀했던 초유. 참 어려웠던 모유수유. ⓒ이미연

퇴원 후 산후조리원에 도착해 모유수유를 하려는데, 영이는 젖병을 내놓으라고 꺼이꺼이 울어댔다. 모유수유를 하려고 할 때마다 얼굴이 터질 것처럼 자지러지는 아이를 보며 나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아이가 젖병에 적응하기 전에 모유수유를 해야 젖을 잘 먹을 수 있다고 산전교육에서 들었는데…얘는 벌써 젖병에 적응한 걸까? 왜 병원에선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분유를 먹였을까…내가 수술을 해서 모유를 바로 먹일 수 없어서? 그렇다면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는 어떻게 모유에 적응하는 걸까?…WHO와 유니세프도 모유수유를 권장하는데…모유를 못 먹어서 우리 영이가 건강하지 않으면 어쩌지….’

게다가 산부인과, 모유수유센터, 산후조리원이 모유수유에 대해 조금씩 분위기가 달랐고, 나는 이들 중 누구의 말을 따르는 것이 좋을지 판단할 여력이 없었다. 자지러지는 아이를 보며 “그냥 분유 먹이자”는 신랑의 한 마디에, 모든 것을 다 내 탓으로 여기는 것 같아 서운함을 가득 느끼고 엉엉 울기도 했었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할 여력 따윈 없었다.

유리처럼 연약한 멘탈과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책도 읽어보고 블로그도 찾아보고, 전문가들의 조언과 더불어 맘카페에 가입해 선배맘들의 경험도 찾아 읽어보았지만 어떤 것이 모유수유의 정답인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모유수유 전문가들은 내게 “아이가 모유를 거부하는 이유는 자세가 맞지 않아서”라며 자세를 교정하러 오기도 하셨다. 하지만 아이는 어떤 자세도 격렬히 거부했다. 전문가들은 “애가 고집이 세네”라며 결국 포기하고 돌아갔다.  

'내가 지금 아이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전문가들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30분 넘게 애한테 모유 한 번 먹이겠다고 씨름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내가 지금 이 아이에게 무엇을 강요하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엄마의 욕구와 아이의 욕구가 서로 다른 지금, 두 사람의 욕구를 절충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생각했다. 

그리고 더 시도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 되자 나와 영이가 서로를 믿고, 서로에게 맞는 방법을 찾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적응해야 하는데, 나는 아이가 아닌 다른 대상들에게서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끝까지 모유수유를 거부한다면, 그 또한 존중해야 한다고 마음먹으며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 기필코 모유수유에 성공하겠다는 마음이 아닌, 모유수유가 나와 영이에게 맞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나는 영이에게 모유를 우선으로 먹이되, 영이가 거부의사를 표현할 땐 “너무 배가 고픈데 지금은 젖을 먹을 기운이 없구나? 그래, 지금은 분유를 먹자. 분유 먹고 힘내서 다음에는 엄마 젖 먹어보자!”라고 말했다. 아이의 거부 의사도 존중하고, 나 스스로를 이해시키기도 하며 신생아실에 분유를 부탁드렸다. 그런 나를 보며 신생아실 선생님들은 이렇게 얘기하곤 하셨다.

“아이고, 애가 엄마를 이겨 먹네.”

◇ 엄마 ‘이겨 먹는’ 것 아닌, 우리는 지금 서로 ‘존중’하는 중

어떤 아이의 전문가는 바로 그 아이 자신이다. 우리는 그 전문가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며 함께하는 조력자다. ⓒ이미연
어떤 아이의 전문가는 바로 그 아이 자신이다. 우리는 그 전문가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며 함께하는 조력자다. ⓒ이미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이가 엄마를 ‘이겨 먹는 것’아닌, 아이와 엄마인 내가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서로에게 적응하기 위한 연습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루 이틀 그런 시간이 늘어나자 아이에게는 젖을 충분히 빨 힘이 생겼고, 서로의 자세와 속도를 맞춰가며 마침내, 모유수유에 적응했다.

우리는 험난했던 모유수유에 함께 적응하며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됐다. 나는 문제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다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엄마였고, 아이는 자신의 의사를 격렬하게 표현하는 기질을 가졌다.

이렇게 나는 나와 영이가 참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후로도 주변에서 “애가 엄마를 이겨 먹네”, “애가 고집이 세다”같은 이야기를 종종 들었지만, 그 이야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어려운 상황들을 해결하는 우리만의 방법을 아주 조금씩 터득해 나갈 뿐이다.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아동 관련해선 아동 스스로가 전문가다’라는 말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전문가로 여길 수 있다면 아이들의 울음과 표현에 귀 기울이는 것이 당연하다. 세상엔 전문가들이 많고, 그들은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다. 

나 역시 부족하지만 아동인권을 공부했고, 이를 실천하는 기관에서 일했다. 그래서 아동인권 전문가로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런데 영이와 함께 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어떤 아이의 전문가는 바로 그 아이 자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단지 우리는 그 ‘전문가’가 표현하는 것을 경청하고, 공감하며 적절한 비중을 두고 함께 하는 조력자라는 것을.

*칼럼니스트 이미연은 아동인권옹호활동을 하는 국제아동인권센터의 연구원으로, 가장 작은 자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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