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온라인 수업, 엄마만 '담임 교사'가 아니라고!
아이들 온라인 수업, 엄마만 '담임 교사'가 아니라고!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0.05.2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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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홈 스쿨링'은 엄마, 아빠, 아이가 모두 함께하는 공부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주 정부의 자가격리 명령으로 미국에서 ‘집콕’ 석 달째. 초등학교에 다니던 첫째도 계속 집에 있다 보니 아이 교육에 슬슬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다른 주에서는 태블릿 PC 등을 이용해 매일 온라인 수업도 한다던데, 첫째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이메일로 1~3페이지가량의 워크북을 파일로 보내고, 부모가 함께 읽은 뒤 자율적으로 공부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분량이 많은 것은 전혀 아니었으나(오히려 적다고 느껴질 정도), 2주일가량 자율적으로 학습(이라기보다는 주로 놀았던)하던 아이에겐 새로운 숙제가 생긴 것이다. 아이는 이 새로운 숙제가 그리 달갑지 않은 눈치였다.

◇ "역시 엄마는 다르다"고?… 함께 하지 않으면서 이런 칭찬은 사양이다

거의 매일 나오는 큰아이의 수학숙제: 요즈음은 시계 읽기를 배우고 있다. ⓒ이은
거의 매일 나오는 큰아이의 수학숙제: 요즈음은 시계 읽기를 배우고 있다. ⓒ이은

한 달 쯤 지나자 일주일에 두 번, 저녁에 30분 정도 담임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을 단체 화상채팅으로 만나는 일정도 추가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게는 아이와 함께 워크북을 읽고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해주는, 간단하게나마 ‘수업’ 비슷한 일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는데 문제는 오빠를 너무나 사랑하는 동생이었다. 둘째는 오빠가 책만 펼치면 “오빠! 나도!” 하면서 오빠 책에 신나게 그림을 그리고 책장을 넘겼다. 

둘째는 엄마가 워크북을 출력해오면 더 신나게 반응했다. 덕분에 첫째는 필수 워크북 숙제를 느릿느릿 해 나갔다. 그러면 나는 적어도 우리 첫째가 학교 숙제만큼은 꼭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둘째를 달래가며 스케치북이나 오빠 책과 비슷해 보이는 책을 쥐여주곤 했다. 그리고 첫째에게 새로운 내용을 설명하는 동시에 둘째에게도 책을 읽어주거나 아이가 그린, 그림 비슷한 선을 보며 감탄을 해준다. 

사실 이럴 때 ‘아빠 찬스’가 절실한데, 아빠는 그냥 아들이 스스로 내용을 이해하고 알아낼 수 있으니 맡겨 두자는 주의이다. 숙제를 오늘 다 못하더라도 그냥 방황(?)하게 혼자 놔두자는 것이다. 그래도 때로는 방향 제시가 필요한지라, 큰아이는 옆에 앉히고 작은아이는 무릎에 앉히고 고군분투하자니 때로는 좀 벅찼다. 

그런 내 모습을 봤다면, 둘째를 번쩍 안아 데리고 가서 같이 놀아주든지, 아니면 큰아이와 같이 워크북을 읽어보든지 하면 좋으련만, 남편은 대개 흐뭇하게 한번 쳐다보고는 제 일을 하든가 “역시 당신은 엄마라서 달라!”라는 말만 하고 만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아니면, 그런 발언이 자신에게 면죄부를 준다고 생각해서 전략적으로 하는 것인지는 확인된 바가 없다. 

그런 그에게 나는 「어머니의 탄생(Mother Nature)」이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세라 블래퍼 허디(Sarah Blaffer Hrdy)가 15년에 걸쳐 현대 도시 사회, 남미와 아프리카의 부족 등 다양한 문화권의 집단들과 더불어 영장류, 포유류 등의 동물 사회를 분석한 연구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그녀는 이 저작을 통해 모성 담론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해체를 시도하는데, ‘어머니는 자기희생적이며 자식들에게 전적으로 헌신적이라는 관점 아래 자녀 양육의 책임을 오롯이 여성에게 전가하는 기존의 관념들이 사실 모종의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모성에 대한 일종의 신화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강조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 일상 속에서는 여전히 지속되는 신화라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 것 같다. 

예컨대 아이가 울 때 아빠가 달랠 때보다 엄마가 달랠 때 더 금방 울음을 멈추는 경우, 그러면 주변 사람들은 “역시 엄마야”, “모성의 힘” 같은 농담 섞인 말을 하는데 사실 이것은 모성의 힘이 아니라 주 양육자의 힘이다. 아이에 대한 경험과 절대적인 시간의 힘인 것이다.

◇ 앞으로 책 읽기는 엄마랑, 과학 실험 질문은 아빠랑!

큰아이가 학교 숙제로 그린 그림. 숙제를 빨리 하면 더 많이 놀 수 있다. 이것이 아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 ⓒ이은
큰아이가 학교 숙제로 그린 그림. 숙제를 빨리 하면 더 많이 놀 수 있다. 이것이 아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 ⓒ이은

교육에 있어서, 더 정확히 말하면 학교 관련 일, 학습에 있어서 남편은 대부분을 나에게 일임하는 경향이 있다. 본인보다 내 영어가 조금 더 나은 거 같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대긴 하는데, 우리가 한국에서 살고 있더라도 그의 태도가 달랐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그가 책임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우선 문과 중의 문과인 내 성향과 이과 중에서도 이과인 그의 성향에 따라 담당 분야를 바꿔 보려 한다. 나보다도 더 방임적인 그의 교육 성향을 살려 자전거 타기, 뛰어놀기, 괴상한 소리를 내며 뜀뛰기 놀이와 같은 제일 중요한 과목은 그에게 전담시켰다. 물론 나도 상황이 허락하면 기꺼이 참여한다. 

책을 읽고 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엄마랑 하는 것이 더 재미있고, 과학 실험 책을 읽고 질문하면 더 명쾌하게 답을 해주는 것이 아빠라는 것을 큰아이는 이미 알고 있다. 작은 아이는 더 폭신폭신 몰캉몰캉한 품을 보유한 데다 '찌찌'까지 있는 엄마가 동요도 더 재미있게 불러준다는 사실에 보통은 절대적으로 엄마를 지지하지만, 무등 태워 주기와 자전거 밀어주기, 그리고 종이접기(물론 ‘접기’를 흉내 내는 것이지만) 놀이는 아빠가 꽤 잘한다는 사실에 함께 하기를 허락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났고 남편은 석 달 넘게 재택근무 중이니, 아빠 담당 과목을 점점 더 늘려갈 생각이다. 홈 스쿨링은 엄마만의 몫이 아니고 부모와 아이 모두의 몫이니 오늘 하루도 네 식구 모두 재미있게, 그리고 나름대로 보람 있게 보내면 된 것이 아닐까. 힘들기는 해도 부모도 함께 배워가는 홈 스쿨링이기에 조금씩 힘을 내본다. 그리고 안전해진다면, 어서 빨리 개학해주오, 학교여! 세계 곳곳에 홈 스쿨링 중인 아이들, 부모들, 그리고 선생님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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