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 말고 ‘라라밸’… “모든 삶의 시간이 보장되길”
워라밸 말고 ‘라라밸’… “모든 삶의 시간이 보장되길”
  • 최규화 기자
  • 승인 2020.05.20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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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김성광 작가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김성광 작가.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김성광 작가.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부모’라는 이름과 ‘나’라는 이름을 나란히 놓고, 아무리 둘의 균형을 잘 유지하려 해도 (…) 어쩌면 이 둘의 균형점이란 한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상태를 일컫는 것 같다는 생각. 앞으로의 내 삶은 아이를 향해 기울어진 상태를 받아들이는 일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51쪽)

제목부터 확 와닿는 책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김성광, 푸른숲, 2020년)는 ‘균형’에 관한 에세이다. 부모라는 이름과 나라는 이름, 일과 삶, 또 다양하게 나눠지는 삶 속의 삶들. 이들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으며 살아갈 것인지, 김성광 작가는 일상에서 고민하고 탐구했다.

인터넷서점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는 김성광 작가. 다섯 살 아이를 키우는 아빠다. “늘 시간이 부족해 허덕이지만, 틈틈이 생기는 조각 시간을 쌓아 꾸준히,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는 사람. 그는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한 놀라운 순간들을 SNS에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 짧은 글은 웹진 연재와 책 출판으로 이어졌다.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흔히 공감할 만한 일상 이야기에, 단정한 문장으로 압축된 작가의 생각이 더해졌다. 여러 군데 밑줄을 치며 읽었지만, 특히 기자의 머릿속에 깊이 남은 ‘한 문장’은 이거다. 

“조용, 지금 아이가 말한다.”(121쪽)

부모 한 사람 한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로도, 아이의 말을 경청하려는 태도가 부족하니까. 어디서든 “조용, 지금 아이가 말한다.”라는 문장보다, “조용히 해, 지금 어른이 말하잖아.”라는 문장만 넘치니까.

그럼 김 작가가 스스로 뽑은 책 속의 ‘한 문장’은 무엇일까.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동 예스24 사옥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Q. 아이와 함께 자라는 아빠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점이 가장 성장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성장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성장했다면, 글쓰기가 많이 도움을 준 것 같아요. 아이와 보내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글을 쓰면서, 아이와 보내는 순간을 하나하나 더 깊게 생각하게 됐어요. 그 순간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계속 곱씹게 되니까, 그 점에서 저 스스로 큰다는 느낌을 받죠.”

Q. ‘워라밸(워크-라이프 밸런스, Work-Life Balance)’ 대신 ‘라라밸(라이프-라이프 밸런스, Life-Life Balance)’이라는 말을 만드셨어요. 어떤 뜻인가요?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라는 책 제목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으셨어요. 직장인으로서 일을 잘해야 하지만, 부모로서 아이도 잘 키워야 하고, 다른 가족에 대한 책임도 있죠. 또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가져야 하고. 그걸 하루 24시간 안에 다 넣으려고 하니까 다 만족스럽지 못한 거예요.

어느 하나에 편중하다 보면, 다른 것들은 만족스럽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소홀해지는 것도 생깁니다.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라라밸’이란 말을 만들어봤어요.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라이프는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예요. 인생을 구성하는 여러 삶들에 각각의 시간을 모두 보장해주자는 게 ‘라라밸’이죠.

워크와 라이프의 밸런스만 챙기면 다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데, 그럼 워크가 끝나서 퇴근하고 나면 나머지는 모두 하나의 라이프냐? 아니죠. 그 안에도 굉장히 많은 라이프가 있잖아요. 아이를 돌볼 시간, 아이 외의 다른 가족들을 위한 시간, 나 스스로를 위한 시간들을 골고루 챙기고 싶다는 마음이 담긴 말이에요.”

◇ “라이프는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 ‘워라밸’론 해결 안 돼”

김성광 작가는 “인생의 여러 삶들에 각각의 시간을 보장하는 게 ‘라라밸’”이라고 설명했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김성광 작가는 “인생의 여러 삶들에 각각의 시간을 보장하는 게 ‘라라밸’”이라고 설명했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Q. “관계가 괜찮으면 다 괜찮다. 육아는 긴 과정이니까, 혹 잘못된 길로 들어갔더라도 관계만 괜찮다면 우리는 손잡고 빠져나와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165~166쪽)라는 문장에서 참 울림이 컸습니다.

“제가 아이한테 이래라저래라 지도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더라고요. 아이도 저도 처음 맞는 상황이기 때문에 혼란스럽고, 때로는 아이한테 잘못된 영향을 줄 수도 있죠. 그걸 하나하나 신경 쓰면 행동이 너무 조심스러워지고, 관계 형성이 자연스럽지 않고 굉장히 인위적으로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하자고 생각했어요. 결국 아이와 관계가 괜찮게 쌓이면 오류나 착오들도 서로 바로잡을 기회가 생기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죠. 그렇게 생각하니 제 마음이 많이 안정되고 조금 더 편하게 육아를 할 수 있게 됐어요.”

Q. 후기에서 “세상은 우리에게 할 일은 많이 주고 시간은 조금 주었다. (…) 세상의 시간 구조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누고 싶다.”(202쪽)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는 건가요?

“노동시간 단축이죠.(웃음) 하루가 24시간인데 하루 8시간 근무가 기본이고 점심시간 포함하면 9시간이죠, 출퇴근하느라 1시간씩 또 빼버리면 11시간 넘어가잖아요. 회사에 묶여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요. 회사에 이렇게 묶어놓을 거면 세상이 회사 외의 일들을 요구하질 말든가!(웃음)

특히 부모들에게 요구하는 건 굉장히 많죠. 그게 다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란 말이에요. 노동시간이 줄지 않고는 우리한테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요. 지금보다 적게 일하고도 사회가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하는 게 정책을 고민하는 분들의 주요 관심사가 돼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Q. 굉장한 독서가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흔히 말하는 ‘육아서’는 잘 읽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아예 읽지 않는 것은 아니고요, 구체적인 팁이 있는 책들은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찾아 읽는 편이에요. 기본적으로는 아이를 키우는 데 특별한 방법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주 큰 원칙들만 지키겠다는 생각이고, 세세한 지침들을 익혀가며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아이를 키우는 분들의 에세이를 많이 보는 편이죠. 다른 사람들은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면서 많이 배워요. 지금은 책을 1년에 50권쯤 읽는 것 같아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1년에 100권에서 많게는 150권까지 읽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반토막이 나더라고요.(웃음)”

내 시선과 관심이 평소에 늘 아이를 향해야 아이의 마음이 윤곽을 드러낸다. (…) 어떤 비법을 궁리하며 아이의 요구를 손쉽게 해결하려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평소에 늘 너에게 마음을 쏟겠다고.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낸 후에야 네 차례가 오게 하지 않겠다고. 네가 잠든 후에도 너의 마음을 생각하겠다고.(57쪽)

◇ “제 나름의 페미니즘 에세이… 남성들의 응답 필요해”

김성광 작가가 직접 꼽은 ‘책 속 한 문장’ ©베이비뉴스
김성광 작가가 직접 꼽은 ‘책 속 한 문장’ ©베이비뉴스

Q. 책 제목처럼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은 부모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나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의 문장이 있어요. 「소설가의 일」(문학동네, 2014년) 속 문장을 제 책에도 인용해뒀어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가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해하려고, 가 닿으려고 노력할 때, 그때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영혼에 새로운 문장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그래서 우리는 뭐든지 충분히 할 수 없잖아요. 한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늘 부족하죠. 그렇지만 그 부족한 걸 하는 동안에도 우리 마음에는 무언가 쓰이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나아가게 할 거예요. 「소설가의 일」의 전체 맥락이 그런 건 아니지만, 그 책을 보시는 것도 좋겠어요.”

Q. 작가님의 책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 문장을 뽑아주세요.

“한 문장만 뽑긴 너무 어려운데요.(웃음) ‘육아라는 긴 여정에서, 아이의 현재와 아이가 다다라야 할 모습 사이의 거리를 계속 재기보다는,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85쪽) 이 문장을 육아하시는 분들과 많이 나누고 싶어요.”

Q. 끝으로 독자들에게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 책을 쓰면서, 제 나름의 페미니즘 에세이라고도 생각했어요. 페미니즘 에세이는 주로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죠. 저자도 대부분 여성이고요. 페미니즘이 여성과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것이라면 남성들의 응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여성의 삶과 남성의 삶에 대한 기존의 틀을 벗어나서 살아가는 남성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보는 거죠. 그런데 아직 남성들한테는 일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참고할 그림이 없는 것 같아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요즘엔 ‘아빠육아’ 에세이가 참 많아요, 보통 ‘우당탕탕 좀 허술하지만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라는 식의 얘기가 많아요. 사실 아빠라고 육아에 허술해도 되는 건 아니죠. 아이를 사랑하는 걸로 끝나서도 안 되고요. 육아 앞에 ‘아빠’가 자연스레 붙게 된 것만으로도 큰 변화지만, 이 정도로 흐뭇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에 있던 육아를 마주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저 역시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런 고민을 이어가는 남성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시간은 없’지만 ‘잘하고 싶’은 일에 육아 혹은 ‘남성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던 일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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