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으로 불리며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명 ‘박사’(텔레그램 아이디) 조주빈이 체포되면서 베일에 가려져 있던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박사’에 이어 실제 운영자로 지목되던 ‘갓갓’ 문형욱도 구속되며 생각보다 많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음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성인은 물론 미성년자의 성을 착취하는 것도 모자라 영상물로 제작하고 유포, 이를 이용해 수익을 벌어들인 이들의 방식은 정말 잔인하고도 치밀하다.
검찰의 추적을 피해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 화폐로 해당 영상물이 거래되었다고 하니, 나로서는 그 방법이 무엇인지 들어도 알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렇게 좋은 머리로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이제 젊은 세대들의 지능적 범죄가 과거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은 것 같다.
그런데 이보다 큰 사건이 또 하나 터지고 말았다. 2015년부터 3년 가까이 ‘웰컴 투 비디오’라는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 영상 사이트를 운영한 24살의 청년, 손정우 사건이다. 이런 분야에 세계 최대라는 말을 붙여야 하다니 정말 수치스럽지만 이미 그는 많은 국가에서 수배 중인 범죄자였다고 한다.
현재 손정우는 미국에서 아동 음란물 배포를 비롯한 9개 혐의로 기소 중이며, 미국은 한국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한 상태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성 착취물을, 그것도 아동을 대상으로 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으니 이제 그에 해당하는 벌을 받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던 순간 또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손정우의 친부가 아들의 미국 송환을 막기 위해 ‘자금 세탁’ 혐의를 앞세워 아들을 고소한 것이다.
손정우 아버지의 이 같은 행동은 ‘범죄인 인도법’에 따라 손정우가 한국 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확정될 경우 미국으로의 송환이 거절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어서였다. 성 착취물 유통에 가벼운 형을 내린 우리나라 법원과 달리, 손정우가 미국에 갈 경우 최대 20년까지 징역을 받을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잘못된 부정(父情)이라며 다시 한번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나 또한 아이를 둔 부모로서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수많은 아이, 그리고 부모들에 대해 생각해 봤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옛말에 ‘자기 자식 귀한 줄 알면,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하던데, 어찌 된 일인지 손정우의 아버지는 당장 눈 앞에 펼쳐질 아들의 형벌을 줄이기에만 급급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나는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막막해진다.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도 되지 않게 하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자세일까? 개인 휴대폰, PC 하나 없는 아이들이 없고 그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리 부모라 해도 다 알 수도 없고 제지하기도 힘드니 말이다. 심지어 아동 성범죄 관련 사건을 다루고 있는 온라인 기사들마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문구의 광고들이 따라붙는다. 무분별한 온라인 세상과, 그걸 따라잡지 못하는 제도,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디지털 성범죄가 더 확장할 기회를 가져버린 것은 아닐까.
지금이라도 디지털 성범죄와 아동 성 착취 문제에 관한 법규가 잘 정비된 나라들을 본보기 삼아 고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야 손정우 사건처럼 형량을 낮추기 위해 차라리 본국에서 벌을 받겠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해당 범죄가 우리나라에 국한되지 않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이에 마땅한 벌을 해당하는 국가의 법에 따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그나마라도 피해자가 덜 억울한 세상이지 않겠는가.
재판부는 다음 달 그의 범죄인 인도 허가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고 한다. 결과가 어떻든 아직 어린아이들이 성을 미끼로 한 범죄에 이용되었다는 사실이 부모로서 너무 가슴 아프고,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함께 부끄러울 따름이다. 다시는 이런 일로 피해를 보는 아동들이 생기지 않도록 이전보다 더 강력한 법, 그리고 갈수록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새로운 규제가 조속히 마련되길 바란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