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남들보다 더 하지는 못해도 남들만큼은 시켜야지. 나중에 애가, 친구들은 다 하는 거 자기는 왜 안 시켰냐고 원망하면 어떡할래? 사교육 너무 안 하는 것도 좋은 거 아냐. 어떻게 보면 그거 방임이라니까.”
어느 모임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모두 초등학생 이하 고만고만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었다. 공립 유치원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은 학원이나 학습지 등 아무 사교육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 교육이 대화 주제가 되면 늘 할 말이 별로 없다. 게다가 이런 말까지 들었으니 기분이 더 착잡할 수밖에.
‘언제까지 이대로 아무 사교육도 안 시켜도 괜찮을까?’ ‘정말 나중에 아이한테 원망을 듣진 않을까?’ ‘그럼 언제 무엇부터 가르쳐야 할까?’ 고민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노워리 상담넷’이 펴낸 책 「불안을 주세요 안심을 드립니다」(우리학교, 2020년)를 처음 봤을 때도, 그 고민에 관련된 내용이 있는지부터 살폈다.
하자니 끝도 없고, 안 하자니 불안한 것이 사교육. 「불안을 주세요 안심을 드립니다」는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운영하는 부설 온라인 상담소인 노워리 상담넷의 상담 사례를 모은 책이다.
노워리 상담넷은 2011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noworry.kr)에서 자녀교육에 관한 학부모들의 고민을 상담하고 있다. 그중 지난 3년 동안 들어온 상담 사례 가운데 일부를 선정해 이 책에 담았다.
Q&A 형식의 50여 개 상담 사례를 ▲부모의 교육관 ▲학습 태도 및 공부 습관 ▲수학 학습 ▲영어 학습 ▲국어 학습 및 독서 습관 ▲생활 습관 ▲사회생활 및 친구 관계 ▲미디어 생활 여덟 가지 분야로 구성했다.
“아이가 삶에서 실패자가 될까 봐, 더 많은 것을 주고 더 많은 스펙을 준비시키려”는 부모,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져야만 더 높이, 더 앞서 나갈 수 있다고 믿”는 부모, “부모가 못 해주면 아이가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될까 봐, 불행해질까 봐 전전긍긍”(6~7쪽)하는 부모들의 고민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책이 강조하는 것은 “아이가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채워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인정”(8쪽)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각각의 상담 사례들은 그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비교와 경쟁에 치인 아이들에게 성장하는 힘을 키워”(8쪽)줘야 한다는 근본적인 지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 “아이가 삶에서 실패자가 될까 봐” 걱정 많은 부모를 위한 책
아이의 삶 자체를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공부에만 촉각을 세우고 끌려가다 보니 입시가 끝나면 부모 노릇도 허망하게 끝나는 서글픈 현실 속에 있으니까요. 집안일, 양육, 회사 일 어느 하나 쉽지 않겠지만 아이의 삶 자체에 중심을 두고, 사랑하며 존중해주기를 부탁드립니다.(30~31쪽)
입시는 끝나도 부모 노릇은 계속돼야 한다. 공부는 끝나도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오직 성적을 위해 모든 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방식의 소통은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왜곡한다. 사교육을 통해 아이의 성적을 올리는 것이 부모의 ‘능력’으로 평가받는 사회에서는 그런 왜곡이 상식을 가장한다.
노워리 상담넷이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1년. 올해로 10년째다. 그 시간 동안 쌓여온 상담 사례들을 통해 저자들은 지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이 무엇인지 찾았다.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읽어도 좋고, 지금 내가 당장 궁금한 질문부터 찾아 읽어도 좋겠다.
또 하나 이 책의 장점은 현실에 바탕을 둔 ‘눈높이’ 조언을 한다는 것이다. 노워리 상담넷 상담위원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시민교육 프로그램인 ‘등대지기학교’를 졸업한 ‘이웃 엄마’들이다. 그래서 현실은 알지도 못하면서 뜬구름만 잡거나, 무조건 하지 마라 또는 덮어놓고 하라는 식의 극단적인 조언을 하지 않는다.
구성에서도 세심함이 엿보인다. 여덟 개의 주제로 묶인 부(部)는 Q&A 상담 사례와 함께 ‘노워리 상담넷 제안’을 전하고 있다. 각각의 사례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중요한 관점이나 가치를 한 편의 글로 정리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노워리 상담넷 추천’ 코너를 통해서는 독자들에게 권하는 책이나 영화를 소개한다.
부모 스스로 그리고 아이들을 속이는 말들이 있습니다. ‘과정이 중요해’, ‘좋아하는 것을 해야지’, ‘너의 존재가 더 소중해’라는 생각이 시험 점수와 등수 앞에 무너진 적이 있나요? (…) 부모는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결과보다 과정을 지켜보라는 교훈을 <4등>을 통해 배웁니다.(52쪽, 영화 ‘4등’ 소개 글 중에서)
책은 “오늘도 잠 못 드는 부모를 위한 자녀교육 솔루션”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자녀교육에 관한 불안으로 잠 못 이루고 힘들어하는 부모들을 위한 책. 요즘 ‘핫’한 사교육 프로그램은 뭔지 유튜브를 뒤지는 부모라면, TV 육아예능 방송에 나온 교구를 우리도 사야 하나 고민하는 부모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그나저나, 나는 이 책에서 내 고민에 대한 해법을 찾았을까. 책에서 찾은 아래 구절로 대답을 대신한다.
모든 아이에게는 고유한 미래가 있습니다. 남을 따라가는 교육이 아니라 내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찾아야 합니다. (…) 요즘 시대의 학습 방임이란, 자녀의 소질과 적성 관찰에 무관심하거나 알면서도 무시하고 부모 뜻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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