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
1. 당사국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나이에 맞는 놀이와 오락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생활과 예술 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인정한다.
집에서 영이와 놀이를 할 때면 항상 마지막에 드는 생각이 있다.
‘누굴 위한 놀이였는가?’
한동안 영이는 약병 짜는 놀이에 푹 빠져있었다. 약병을 누를 때마다 소리가 나며 물이 나오면 영이는 까르르 넘어가곤 했다. 나는 그래서 다음 단계로 스포이트를 이용한 놀이를 '짠!'하고 준비했다. 영이 손에 스포이트를 쥐여주고, 스포이트에 물을 담고 짜는 방법을 알려줬다. 하지만 영이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엄마, 이거 꼭 해야 해...?"
스포이트를 내려놓으려는 영이의 손을 잡고 나 혼자 흥에 겨운 듯 스포이트 사용법을 알려줬지만, 영이는 스포이트 사용법을 터득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스포이트는 금새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번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누굴 위한 놀이인가, 이건 놀이인가, 학습인가?'
생각이 그렇게 들자 스포이트 놀이를 위해 준비해 둔 물에 재빨리 손을 담가봤다. 영이는 물을 손으로 찍어서 종이에 터는 놀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물은 맹물이었다. 정말, 정말 다행이었다. 물은 종이를 넘어 식탁과 바닥에까지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영이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그래, 이제 23개월인 아이에게 스포이트가 웬 말이냐. 물은 마르니까 실컷 하자!’
스포이트를 잡게 해보겠다고 조바심 내던 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아이가 신나는 모습을 보니 결국 모든 과정이 엄마의 욕심이었구나 싶다. 아동권리협약 제31조 제1항에는 '자신의 나이에 맞는 놀이와 오락 활동, 문화생활과 예술 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아동의 권리를 인정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돌아보니 스포이트 놀이는 영이의 나이에 맞는 놀이도, 오락 활동도, 예술 활동도 아니었다. 아이와 함께하면서 아이의 행복을 위해 준비한 여러 환경이 아이가 생각하는 행복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을 때가 있다. 결국 스포이트 ‘놀이’는 놀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엄마의 학습에 대한 욕심이었던 것처럼.
모든 상황에서 아이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아이가 원하는 놀이만 하게 할 수도 없겠지만 결국 영이와 나, 우리의 공동 목표는 영이의 행복과 더 나아가 우리의 ‘행복한 삶’이기에(그리고 아직은(?) 영이가 행복할 때 엄마도 행복하기에) 행복의 기준은 권리 주체자인 영이에게 맞춰져야 한다는 것을 오늘도 마음에 새겨본다.
영이야, 내일은 뭐할까??
*칼럼니스트 이미연은 아동인권옹호활동을 하는 국제아동인권센터의 연구원으로, 가장 작은 자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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