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준영이, 어릴 적 나였다
'부부의 세계' 준영이, 어릴 적 나였다
  • 정가영 기자
  • 승인 2020.05.25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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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영의 MOM대로 육아] 이혼 부부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건...

【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종영한 지 일주일이 넘어 가고 있지만 여전히 뜨겁게 뒷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선 “이제 금요일, 토요일을 어떻게 버티냐”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인간과 인간의 다양한 모습, 혹은 충격적인 현실까지. 모든 것을 보여줘 온 ‘부부의 세계’에 대한 여운은 클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가 인기였던 비결은 뭐였을까? 상상을 벗어나는 전개로 충격과 혼란의 전개가 한몫했겠지만, 그냥 ‘드라마일 뿐’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배우자의 바람으로 고통 받은 사람들은, 그로 인해 이혼을 한 사람들은 특히 더 공감하고 드라마에 빠져 들었다. 나 또한 공감하는 마음으로 매주 금요일을 기다렸다.

나는 지선우도, 한소희도, 천하의 찌질이라고 평가받는 이태오의 입장도 아니다. 나는 이혼한 부모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준영이었다. 준영이의 마음으로 드라마를 보았고 준영이의 입장에서 함께 눈물 흘렸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 속 준영이와 지선우. ⓒJTBC '부부의 세계'
드라마 '부부의 세계' 속 준영이와 지선우. ⓒJTBC '부부의 세계'

‘불행히도 부모의 이혼과 그의 사춘기가 맞물려버렸다. ……… 괜찮은 척했지만 내면의 한구석은 부러져버렸다. 혼란을 혼자 감당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 엄마는 여전히 불안정했고, 아빠는 멀리 있었다. 세상에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자신을 두고 다투는 부모의 모습에서 발견한 것은 자식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증오에 찬 악다구니였다.’(‘부부의 세계’ 준영이 소개)

나도 준영이와 같았다. 부모님은 내가 중학교 1학년인 14살 당시 서류상 이혼했다. 내 사춘기와 딱 맞물렸다. 어릴 적 내가 바라본 부모의 이혼 이유는 너무나 다양했다. 자식인 내 입장에선 누구 한명의 잘못이 아니었다. 설령 한 명만의 잘못이었더라도 자식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한 건 부모 모두였다.

부모의 숱한 다툼을 보고 자랐기에, 부모의 이혼에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나도 모르게 준영이처럼 방황하고 있었다. 괜찮은 척했지만 내 마음 속 한구석엔 부모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가득했다. 곧잘 했던 공부에도 손을 뗐고 전교 석차는 100등 넘게 떨어졌다.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고 학교에서 사고를 쳐 학생과에 불려갈 때도 있었다. 선생님들은 “안 그러던 애가 왜 그러냐. 집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시기도 했다. 드라마 속 준영이는 그냥 내 모습이었다. 사춘기를 겪은 뒤엔 안정을 찾아갔지만 늘 마음이 허전하고 외로웠다.  

부모의 이혼 후 가장 화가 났던 건, 자식들을 이유로 연락하는 부모의 모습이었다. 준영이가 그랬던 것처럼 그게 그렇게 싫었다. “엄마는 잘 지낸대?” “아빠 사업은 잘 돼?”라고 소식을 묻는 모습은 진절머리 나게 싫었다. 준영이가 엄마, 아빠를 향해 “또 내 핑계야?!”라고 말하는, 딱 그 마음이었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어른들 마음대로 이혼해놓고 왜 다시 서로를 궁금해 하는지, 무슨 미련이 남은 건지, 어린 나로서는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 앞에서 엄마, 아빠 이야기 묻지도, 꺼내지도 말아줘. 이혼했으면 그걸로 끝이잖아. 전해줄 소식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아무것도 묻지마.”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말하고자 한 건 '부모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준영이가 안쓰럽다. ⓒJTBC '부부의 세계'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말하고자 한 건 '부모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준영이가 안쓰럽다. ⓒJTBC '부부의 세계'

자식에게 부모가 필요한 시기는 어린 시절만이 아니었다. 나이를 먹으니 다시 부모가 필요한 시간이 돌아왔다. 결혼과 육아라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손꼽히는 이 시기에 나는 정말 부모가 필요했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 아빠 각각이 아니라 완전체의 부모가 간절했다. 상견례, 결혼식, 돌잔치, 육아 등등. 부모의 이혼이 정말 현실적으로 실감되기 시작했다. 나를 낳아준 부모 모두와 함께 하고 싶은 순간들이 자꾸 생겨났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된 순간순간마다 엄마, 아빠의 이혼이 가시처럼 나를 찔러댔다. 자식의 중요한 순간만이라도 부모의 이해와 배려가 있었으면 했지만, 엄마, 아빠 각각의 얽혀 있는 관계들을 이유로 또 다시 상처받는 건 자식이었다. 자식인 내 잘못도, 내 선택 때문도 아니다. 부모의 선택은 내 인생 전체에 자꾸 영향을 미쳤다. ‘온전한 친정이 있으면 좋겠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의 간절한 소망으로 남았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일까? 종종 부모님은 자신들의 선택으로 자식들을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말씀하신다. 지선우가 그랬던 것처럼 그 당시 부부로선 이혼이 최선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로선 어떨까? 부모로선 이혼이 자식을 위한 최고의,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나이를 먹고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14살이던 그때, 부모의 이혼을 적극적으로 말렸다면 어땠을까.’

난 부모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던 그 나이만큼 나이를 먹었다. 다행스럽게도 남편과 두 아이와 잘 살고 있다. 어쩌면 내 부모와 같은 결과를 맞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사랑하고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부부의 세계를 보며 더욱 강하게 드는 생각은 내 아이들에게 준영이와 같은 아픔을 안겨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이가 없는 부모라면 모르겠다. 그건 둘이 알아서 할 문제니까. 하지만 부모가 된 이상은 다르다. 부모에겐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의무, 행복한 부부 역할을 해낼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면 아이를 낳지 않는 게 낫다. 이태오가 자신의 행동이 이혼과 재혼, 결국엔 준영이의 고통으로 이어질 것이란 걸 알았더라면 그런 결말을 낫진 않았을 것이다.

슬픈 결말처럼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보여주고자 한 건 부부의 세계보다 강력한 건 부모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 아니었을까? 준영이를 보며 나는 나를 다독이고 치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드라마 속 준영이가 아프지 않고 잘 자랐으면 좋겠다. 곳곳에 있을 준영이들도 행복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본 많은 부부와 부모들이 어른의 선택이 야기하는 아이들의 아픔이 어떨지, 상처받은 준영이의 모습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정가영은 베이비뉴스 기자로 아들, 딸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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