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있는 형제 부끄러운 아이 마음, 그럴 수 있죠
장애 있는 형제 부끄러운 아이 마음, 그럴 수 있죠
  • 칼럼니스트 박현주
  • 승인 2020.05.28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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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꿈을 꾸는 아이] "네가 그러면 안 되지!'란 말은 마세요

엄마는 한 살 터울의 형제를 놀이터에 보냈다. 제법 둘이 잘 놀았고, 놀이터도 집 근처라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형과 함께 나간 둘째가 혼자 돌아왔다. “형은 어쩌고 너만 왔어?”라고 엄마가 물으니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는 형이 부끄러워.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같은 말만 하잖아. 친구들이 너희 형 바보냐고 놀렸어. 내가 그만하라고 이야기했는데!”

◇ 가족이어도 부끄러울 수 있다는 마음, 공유하고 공감할 것 

"형이 부끄럽고 창피해!"라는 말에 "네가 그러면 안 되지!"라는 말 대신, "엄마 아빠도 가끔 그럴 때 있어"라고 공감해주세요. 아이의 마음이 한결 더 건강해질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형이 부끄럽고 창피해!"라는 말에 "네가 그러면 안 되지!"라는 말 대신, "엄마 아빠도 가끔 그럴 때 있어"라고 공감해주세요. 아이의 마음이 한결 더 건강해질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발달장애아이가 있는 다둥이 가정에선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엄마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너 지금 뭐라고 그랬니? 세상 사람들이 다 형보고 바보라고 해도, 너는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우리는 가족이잖아.”

엄마는 다그치듯 화를 냈다. 작은 아이는 곧 시무룩해졌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단다. 며칠 뒤 둘째는 어린이집에서 얼굴을 조금씩 찡그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운동 틱인 것 같아 부모님 상담을 요청했다. 위의 이야기는 이 상담 중 듣게 된 일화다.

“선생님, 혹시 그때 그 사건이 둘째에게 스트레스가 됐을까요?”

엄마가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럼, 아이가 그렇게 말할 때 저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요.”

“어머니는 큰애의 행동이 부끄러울 때가 없었나요?”

“…있었어요. 제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애가 자꾸 같은 질문을 하는 거예요. 대답해도 계속 똑같은 말을 하니까. 그때 친구들의 자녀들이 ‘쟤는 왜 저러지?’라는 눈빛으로 보는 것 같아서…. 그때 좀 부끄럽고 민망했어요.”

“그 마음을 둘째와 단둘이 있는 시간에 나누어 보는 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둘째 아이도 어머님과 같은 마음이었을 텐데. 우리는 어른이라, 이 말을 하면 되겠다 안 되겠다 하는 판단을 하지만 고작, 일곱 살이잖아요. 마음속에 있는 말을 그냥 꺼냈을 뿐이에요. 크게 잘못한 게 아니라….”

“그렇죠. 저는 입 밖으로 내면 첫째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지니까 말할 수가 없었어요. 저는 엄마니까요.”

“맞아요. 아이가 있을 때 말하면 애가 ‘내가 좀 이상하구나’라고 느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큰애 학교 가고 없을 때 둘째랑 따로 데이트하면서 이야기 나눠보세요. ‘그때 엄마도 좀 부끄러웠어. 형이 전부 부끄러운 건 아닌데, 형이 계속 질문하는 걸 다른 사람들이 이해 못 해주니까, 안 그랬으면 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아. 너도 엄마랑 똑같은 마음이 들었니? 그래서 속상했어?’라고.

이 정도만 공감해줘도 아이는 ‘엄마도 나랑 똑같이 느끼는구나. 내가 나쁜 생각을 한 건 아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만 ‘이건 우리 둘의 비밀로 할까? 형이 알면 속상할 수도 있으니까’ 정도로 형의 감정도 같이 이야기해주면 더 좋겠고요.”

장애아이의 행동에 엄마도 가끔 부끄럽고 민망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겉으로 드러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의연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장애를 이해시켜야 할 책무가 있다. 아이가 지금보다 더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아이를 ‘이상한’ 눈빛으로 본다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 자격지심일지도 모른다. 

대부분 사람들은 처음 장애아이를 마주했을 때 ‘낯선’ 눈빛으로 본다. 자주 접하지 못해서 신기한. 옛날 어른들이 머리가 노랗고 눈이 파란 외국인을 봤을 때 시선을 떼지 못하거나 힐끔힐끔 쳐다보았던 경험을 떠올린다면 그 ‘눈빛’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시선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처지에서 속상하고 아플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많이 보여줘야 하고, 좀 더 많이 설명해야 하고, 좀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 쫓아다니면서 내 아이를 설명하고 장애를 가르치란 말이 아니라, 아이를 세상에 많이 노출 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아이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동과 말들. 그리고 그 행동과 말을 처음 보는 세상 사람들의 행동에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 마음을 단단히 하고, ‘장애’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는 우리와 같지만 다른, 다양한 사람이 함께 살고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 “나중에 부모님 돌아가시면…” 장애아동의 형제도 행복한 미래 꿈꿀 수 있어야 한다 

장애 있는 형제를 둔 아이들도 미래를 행복하게 꿈꿀 수 있도록. 어른들이 할 일이 아직 많다. ⓒ베이비뉴스
장애 있는 형제를 둔 아이들도 미래를 행복하게 꿈꿀 수 있도록. 어른들이 할 일이 아직 많다. ⓒ베이비뉴스

아이들이 발달장애가 있는 형제자매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걱정할 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아이의 정서적 건강함을 확인할 수 있다. 아이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아이 혼자 속에 담아두거나 혼자 울지 않고 자기의 속상함을 말할 수 있는 믿음직한 어른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멋진 어른이 바로 ‘나’라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형제자매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데, 정작 부모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다 보니 위의 예처럼 말로 구체적으로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일보다 혼자 속앓이하는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비장애 형제와 장애 아이들의 관계에서 눈에 띄는 문제행동이 없으면 부모들은 “우리 00이는 안 그래요. 오히려 얼마나 예뻐하는데요”, “우리 집 아이들은 문제가 없어요. 집에서는 엄청 잘 놀아줘요”라고 이야기한다.

안타깝게도 이 시기의 부모님들은 아이의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버겁고, 아이와 치료와 교육을 병행하느라 생활이 벅차다. 그러다 보니, 비장애 형제자매 아이들의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지 못한다. 비장애 형제자매들은 유아기임에도 부모와 함께 보조양육자의 임무를 수행한다. 왜 내 아이는 장애가 있는 형제자매들을 잘 도와주는 역할을 할까?

유아기는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행동하는 나이가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지는 상과 벌로 행동의 옳고 그름을 배우는 단계이다. 아마 아이는 자기가 형제자매들을 돕는 일을 할 때 부모의 칭찬과 관심을 받았던 경험이 몸에 배어있을 것이다. 사랑받기 위해 형제자매를 돕는 것을 하나의 즐거움으로 여길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도 사이가 아주 좋았던, 다섯 살 뇌병변장애 여동생을 둔 여덟 살 오빠와 미술치료 중에 있었던 일이었다. 아이가 1학년 교실에서 많은 여자 친구들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으쓱해 하며 자랑을 했다. 자연스레 여자 친구와 결혼 이야기로 주제가 옮겨갔고, 하얀 도화지에 나의 결혼식 장면을 그려보는 것으로 주제를 정했다. 자신만만하게 재잘대던 아이의 낯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연필을 손에 쥐고서도 쉽게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왜 그러냐 물으니 아이는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제 동생은 못 걸어요. 의사 선생님이 평생 못 걸을 거라고 했대요. 밥도 떠먹여 줘야 하고요. 엄마 아빠가 먼저 돌아가시고 나면 나는 동생을 키워야 해요. 그런데 어떤 여자가 나랑 결혼하고 싶어 하겠어요?”

이런 말을 스무 살, 서른 살 청년이 아니라 고작 여덟 살 아이가 나에게 해주었다. 미술치료 시간이 끝나고 엄마와 상담을 하는데,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자, 깜짝 놀라셨다. 부모는 단 한 번도, 동생을 네가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단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부모의 행동, 사람들의 태도에서 느끼는 무언가가 있나 보다. 아이는 작은 머리로, 작은 가슴으로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앓았을까? 부모의 죽음부터 남겨질 우리들의 생활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지 마음이 짠하게 아려왔다.

우리가 할 일은,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과 더불어, 내 아이가 함께 살 세상을 향해 ‘장애’는 별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독특하고 조금 다르지만, 틀린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닌, 우리와 똑같이 행복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모든 이들은 능력의 여부를 떠나, 가족의 책임이 아닌 우리의 책임, 즉 사회의 책임이라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장애가 있는 내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장애가 없는 내 아이도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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