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을 떠나겠다는 후배, '낭만닥터 김사부'가 떠오른 까닭
팀을 떠나겠다는 후배, '낭만닥터 김사부'가 떠오른 까닭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0.06.0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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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우리 팀' 나가겠다는 후배를 응원하며

아이들은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SBS )의 '찐팬'이었다. 나도 그랬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들이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내 일이 보였다. 그들의 마음이 내 마음처럼 읽혔다. 기사를 편집하는 편집기자의 일을 어찌 감히 생명을 다루는 의사와 비교할 수 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어떡하나. 나는 그랬는걸. 김사부가 생각하는 의사란 일이 내가 하는 편집 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종종, 아니 자주 들었다. 매주 본방을 놓치지 않은 이유다.   

인사이동의 계절, 문득 아이들과 즐겨보던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가 떠올랐다. ⓒSBS
인사이동의 계절, 문득 아이들과 즐겨보던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가 떠올랐다. ⓒSBS

어느 날, 회사 내 인사이동을 앞두고 후배 1호가 매우 중요한 용건이라면서 말을 걸었다. 

"이번 인사 때 기회가 된다면 이 부서를 나가면 어떨까 고민하고 있어요. 선배, 저는 지금 하는 업무에 전혀 불만은 없고 만족해요. 하지만 이 일이 재밌기도 하지만 편해진 것도 있어서, 무엇보다 경성 뉴스(사회·정치·경제 분야를 다루는 뉴스-편집자 주)에 대한 감각도 떨어지는 것 같아서 제게 변화를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취재에 다시 나가야 할까 하는 고민은 한 1년 정도 했는데 선뜻 결정은 못 했어요. 기회와 여건이 되면, 연차가 쌓이기 전에 좀 더 경성 뉴스에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사실 그래서, 경성 뉴스 파트로 가고 싶다고 회사에 말해두었어요."

1호가 취재부에서 편집부로 왔을 때 "편집부에 뼈를 묻겠다"라고 한 말, 안 믿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놀랍고 아쉬운 마음보다는 내가 언젠가 했던 고민을 결국 1호도 하는구나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잡고 싶은 마음도, 말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그러고 보니 퇴사하겠다는 후배도 말리지 않았다). 어떻게 되겠지, 순리에 맡기고 싶었다. 어차피 인사권이 나한테 있는 것도 아니니. 누군가 "팀을 나가겠다고 한 1호에게 서운하냐?"라고 물었을 때도 "이해한다"라고 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것처럼 오히려 이런 말을 들을 때도 되었지 싶었다.

그런데도 "취재에 가겠다고 강력하게 말할까, 도전해볼까, 하다가도 '애 엄마'인 내가 할 수 있을까, 나까지 나가면 에디터 직군은 어쩌나 싶었다"는 1호의 말을 듣고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마디 한 건 순도 100%의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이 장면, '김사부와 차은재'의 이 대화가 떠올랐다. 이 말을 1호에게 그대로 해주고 싶었다.

◇ "뭐가 더 나은 인생인지 내게 묻진 마, 다만 넌 어디서든 잘 해낼 거야"

수술 울렁증으로 돌담병원에 내쳐졌던 차은재는 우여곡절 끝에 자신감을 찾고 수술실에 들어가도 끄떡없는 진짜 의사로 성장해. 그때 마침 본원으로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은 차은재는 고민에 빠지지. 돌담병원에 남을 것인가, 본원으로 갈 것인가. 차은재는 고민 끝에 김사부를 찾아가서 말해.

"저 본원으로 오라는데요?"

"너 본원 복귀하고 싶어 했잖아? 잘 된 거 아닌가?"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던 걸까? 그런 김사부에게 차은재는 조금 서운한 티를 내면서 물어.

"선생님은 제가 필요 없으십니까? 그래도 저 여기서 좀 잘 해낸 것 같은데."

김사부는 그런 뜻이 아니라는 표정으로 차은재를 안심시키면서도 분명히 의견을 말하지.

"혹시 내가 너 붙잡아주기를 바라는 거라면. 아니, 나 그러지 않을 거다. 너 의사 인생 걸린 결정에 내 의견이 개입되면 안 된다는 그런 뜻이야."

차은재는 뭔가 듣고 싶은 대답을 듣지 못했다는 투로 다시 물어.

"조언 정도는 해주실 수 있잖아요?"

"여기 남으면 계속 희생해야 해. 환자들 홍수 속에서 마모되고 지쳐갈 거야.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고. 그 최전선에서 느끼는 책임의 무게 때문에 고통스러울 수 있겠지만, 매일 살려낸 환자만큼 의사로서 자부심은 지킬 수 있을 거야. 물론 본원으로 돌아가면 좋은 조건으로 경력 쌓을 거고. 또 네가 쌓은 실력과 경험만큼 물질적 보상도 받을 거고.

어느 쪽이 더 의사다운가. 어느 쪽이 더 나은 인생인가. 가치 있는 인생인가. 여기에 대해서 나에게 묻는 거라면 나는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 인생이라는 거. 그건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내 선택의 문제거든. 분명한 건, 너 어디서든 잘 해낼 거라는 거야. 어떤 길, 선택을 하든 네 자신을 의심하지 마. 차은재."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취재기자였던 1호가 편집 일을 하게 된 것도 100% 본인의 의지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 역시 1호에게 여기 계속 남아 시민기자들의 글을 편집하고 기획하고 조직하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기자로서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나보다 1호가 당연히 더 클 거다. 아직 한창 젊으니까. 그런 1호에게 김사부의 말을 빌려 내 마음을 이야기하면 이런 거였다. 

"여기 남으면 계속 희생해야 해. 시민기자들 기사 홍수 속에서 마모되고 지쳐갈 거야.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고. 그 최전선에서 느끼는 책임의 무게 때문에 고통스러울 수 있겠지만, 매일 검토하고 살려낸 기사만큼 편집기자로서의 자부심은 지킬 수 있을 거야.

물론 취재 쪽으로 돌아가면 좋은 조건은 아니더라도 취재 기자로서의 경력을 또 쌓을 거고. 또 네가 쌓은 실력과 경험만큼 물질적 보상도 받을 거고(그러길 바라). 어느 쪽이 더 기자다운가. 어느 쪽이 더 나은 인생인가. 가치 있는 인생인가. 여기에 대해서 나에게 묻는 거라면 나는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 인생이라는 거. 그건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내 선택의 문제거든. 분명한 건, 너 어디서든 잘 해낼 거라는 거야. 어떤 길, 선택을 하든 너 자신을 의심하지 마."

◇ 17년 동안 해온 일이지만, 엄마는 여기서 '도전'해 보려고 해

17년을 매일같이 해온 일, 주변과 함께 빛나는 일, 이 일을 위해, 그리고 앞으로 함께 할 동료를 위해 좋은 경험을 만들어내고 싶다. ⓒ베이비뉴스
17년을 매일같이 해온 일, 주변과 함께 빛나는 일, 이 일을 위해, 그리고 앞으로 함께 할 동료를 위해 좋은 경험을 만들어내고 싶다. ⓒ베이비뉴스

지금부터는 다시 내 이야기. 요즘의 나는 지금 하는 일을 좀 더 잘해보고 싶다. 대체 17년 넘게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전과 달리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지, 그게 가능한 건지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은 잠시 뒤로 하자. 그보다는 환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 시민기자에게도 편집기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우선이다.

기자라면 한 번쯤 꿈꾸는 '특종상'을 받을 수도 없고, 기사에 '단독'을 붙일 수도 없는 나의 일. 내가 빛나기보다 주변과 함께 빛나는 일이다(그렇다고 성과가 전혀 없는 일도 아니다). 어디에서도 경험해 볼 수 없는 이 일에 매력을 느끼고, 뭔가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동료들과 같이 걸음을 맞춰가고 싶다.

그런 동료들이 더 많아지게 좋은 경험을 함께 만들어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당분간은. 결론적으로 1호와 나는 인사 이동의 계절에 둘 다 '도전'이라는 길을 선택한 셈이라고 생각한다. 1호는 좀 더 다른 분야의 도전을, 나는 그어놓은 선에서 한 발 더 들어가는 도전을. 

직군이 달라 함께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1호랑 3년을 함께 일했다. 가지 말라고 말리진 않았어도 막상 보내려니 아쉽긴 하다.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 마음이 매일 조금씩 더 자라는 것 같다. 이미 마지막 회의도 끝냈는데.

돌아보면 1호 덕분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모두를 놓치지 않고 할 수 있었다. 후배지만 파트너처럼 대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나는 직장 상사(말이 좋아 선배)일 때가 있었을 테고, 1호 역시 그래도 후배일 때가 있었을 거다. 그렇지만 내가 견지하려고 노력했던 건 있었다.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일이 안 되기보다 되는 방향으로 끌어주는 것. 가능성을 먼저 열어주는 것. 뭐라도 시도하고 보는 것.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실패에서 배웠고, 성과도 있었다.

취재기자 출신인 1호와 함께 일 하면서 오래 일했지만 관성에 젖어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보지 못했던 일들을 다시 배우고 익히는 기분이었다. 매뉴얼을 만들어나가는 기분으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일했다. 뭐든 아랑곳하지 않는 1호에게 '따로 또 같이' 일하는 법을 조금 알게 됐다. 좋은 자극을 주는 후배였다. 2호를 맞이하는 데 자신감도 생겼다(아자아자!).

6월 1일. 주사위는 던져졌다. 6월 8일이면 80년대생 1호가 가고, 90년대생 2호가 온다. 새 일을 앞둔 사람처럼 조금 설렌다. 1호와 2호도 그렇겠지? 1호와 2호 그들의 앞날을 응원하고 싶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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