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뭐하고 놀아요?”라고 묻지 않는 놀이터
“오늘은 뭐하고 놀아요?”라고 묻지 않는 놀이터
  • 기고=임지연
  • 승인 2020.06.1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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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놀아요?⑥] 임지연 중랑행복교육 운영위원

놀이를 빼앗긴 대한민국 아이들. 놀이라는 ‘권리’를 되찾아주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서울시 아동 놀이권 조례 제정을 위한 시민연대’의 연속 특별기고로 놀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 편집자 말

매주 수요일 아이들을 만나러 놀이터로 갔다 ©임지연
매주 수요일 아이들을 만나러 놀이터로 갔다 ©임지연

2019년 봄, 지역에서 아동인권활동을 위한 교육이 시작됐다. 건강과 환경교육을 하면서 마을에서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한 지 9년이 됐지만, 아동인권활동이라는 단어는 나에게도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아동인권활동을 위한 교육이라니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로는 아동인권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아이가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훈육과 체벌을 하고 있는 부모들도 있었다. 아동인권활동가 양성과정 속에서 아동인권의 개념과 역사는 물론, 차별 없는 교육을 받을 권리와 함께 아동에게 놀권리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그럼 과연 아이들은 자신에게 놀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궁금했다. 10주간의 양성과정을 마친 아동인권활동가들은 어떤 방법으로 아이들을 만날지 고민했다. 결론은 놀이터에서 함께 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9월부터는 매주 수요일 아이들을 만나러 놀이터로 갔다. 비는 왜 이리 자주 오는지. ‘비 오는 날에는 쉬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날씨와 관계없이 아이들은 활동가들이 놀이터에 오는 수요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 스스로 선택한 놀이를 할 때 ‘진짜 놀이터’가 됐다

놀이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영유아에서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어울리는 공간이다.

아장아장 걸음마 연습을 하는 아기들, 걸음마 연습을 하는 아기를 피해서 노는 10대들, 자전거 타는 아이들, 뛰어노는 아이들. 수다 떠는 아이들, 몸이 불편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아이, 아이들을 지켜보는 엄마, 쉬어가시는 할머니, 그곳에서는 아주 다양한 모습들이 보인다.

와글와글 행복한 놀이터지만, 갈등도 일어난다. 걸음마 하는 아이와 자전거 타는 아이의 가벼운 충돌이 일어났다. 작은 아이도 놀라고, 큰 아이도 놀란다. 그런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이를 혼내는 어른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인권놀이터 활동가들은 무조건 뛰어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놀이를 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는 아이,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과는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고민을 알게 되기도 하고, 때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를 알게 되기도 한다.

많은 아이들을 만났고, 우리는 인권을 이야기하고, 인권이 존중되는 놀이터 활동을 이어나갔다.

꽤 오래 만나서 놀았는데도 아이들은 “오늘은 뭐하고 놀아요?”라고 묻는다. 하고 싶은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가 교육프로그램이 돼버린 지금, 어쩌면 아이들의 그런 반응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이들의 자발성과 자유를 빼앗아간 사회가 안타까웠다.

“뭐하고 싶은데? 너희가 하고 싶은 놀이 하자”라는 대답을 몇 주 동안 반복하고 나니, 드디어 아이들은 원하는 놀이를 이야기한다.

“오늘은 얼음땡 해요! 제가 술래 할게요!”

“오늘은 작명루 만들고 싶어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분필을 들고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아무 말 없이 활동가 옆에 앉아 있기도 하고, 각자의 속도에 맞게 스스로 선택한 놀이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 놀이터가 돼가고 있었다.

◇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놀이터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놀이터 축제의 주인은 아이들이었다 ©임지연
놀이터 축제의 주인은 아이들이었다 ©임지연

11월 초에는 ‘열매놀이터축제’를 열었다. 놀이터 축제의 주인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직접 하고 싶은 것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사회도 본다.

어른들은 의자에 앉아 관객이 된다.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시원한 음료를 준비해서 한쪽에서 나눠주시는 동네 어른들, 엄마 손을 잡고 구경하는 아이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함께 구경하며 박수를 친다.

부스를 챙기는 아이들, 손수 쓰레기를 줍는 아이들, 심지어 아동인권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책자를 나눠주면서 아이들은 아동인권 캠페인 활동까지 직접 한다. 이제 놀이터는 아이들이 주인공이 돼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아이들의 삶의 공간이 돼가고 있었다.

한쪽에서 공연이 시작됐다. 동네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주인공이 되는 공연이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함께 흥겨워하며 박수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참 따뜻하다. 작은 놀이터에서 열린 소박하고 작은 축제지만,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함께 어울리는 모두를 위한 놀이터가 되는 순간이었다.

아동인권활동가들의 활동은 아이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활동가들은 놀이터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생각을 알게 됐고, 내가 사는 곳에서 하는 활동에 자긍심이 생겼다. 또 놀이를 통해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을 알게 됐고, 아동인권의 필요성을 더 많이 느끼게 됐다고 한다.

추운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진행된 놀이터 축제를 끝으로 2019년의 놀이터 활동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날 아이들이 했던 말이 내내 귀에 맴돈다.

“내년에도 꼭 다시 오세요~.”

꼭 다시 온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준비한다. 놀이 활동가들의 역할은 새로운 놀이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놀도록 도와주고, 또한 놀이를 통해 소통하는 법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지켜봐주기도 한다.

아이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학습을 하면서, 코로나19로 멈춰져 있는 현실이 빨리 정상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웃고 떠들고 맘껏 뛰어노는 놀이터, 세대 간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놀이터, 그리고 동네 사랑방의 역할을 하는 안전한 놀이터,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놀이터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미끄럼틀, 그네, 시소 같은 놀이기구가 주인이 되는 놀이터가 아니라,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주인이 되는 놀이터가 되기를 바란다. 궁극적으로는 놀이활동가가 필요하지 않는 놀이터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도 아이들을 만날 준비를 한다.

☞ 서울시 아동 놀이권 조례 제정 함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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