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제대로’ 놀아보려고, 엄마 아빠 회사 그만뒀다
아이와 ‘제대로’ 놀아보려고, 엄마 아빠 회사 그만뒀다
  • 칼럼니스트 윤정인
  • 승인 2020.06.1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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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과학자 생존기] 아이와 놀아보고 깨달은 사실이 있다

백수가 됐다. 심지어 남편하고 ‘세트’로…. 그래도, 그간 모은 적금도 있었고, 구직급여도 받을 수 있었으며, 퇴직금도 있으니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 계산을 끝낸 뒤 우리는 ‘앞으로 뭘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이력서를 뿌리면서 놀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노는 것’을 우리의 새로운 목표로 설정했다. 

우리는 그동안 아이와 같이 뭔가를 해본 일이 적었다. 연구직 특성상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왔다. 온전히 아이를 돌볼 수가 없어서 하원 도우미 이모님의 도움을 받았다. 연구자에겐 부모의 역할보다 ‘실험’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한 세계에 있다 보니 정시에 퇴근해 아이를 데려오는 일이란 사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 역할을 타인의 노동으로 대신했다. 버는 족족 ‘돌봄비용’으로 소진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 바빠서, 커리어가 중요해서…‘부모 노릇’엔 소홀했다

'과학자' 부부인 우리는 늘 바빴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 역할을 타인의 노동으로 대신해왔다. ⓒ베이비뉴스
'과학자' 부부인 우리는 늘 바빴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 역할을 타인의 노동으로 대신해왔다. ⓒ베이비뉴스

땡그리는 옹알이도, 뒤집기도, 걸음마 연습도 우리가 아닌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이모님을 통해 습득했다. 우리는 땡그리가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제일 좋아한다는 것, 그네는 너무 높게 밀어주면 싫어한다는 것 등 사소한 성향까지도 이모님과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알았다. 심지어, 애가 열이 나는데 부모는 병원에 데리고 갈 시간이 없어 이모님이나 어린이집 원장님이 대신 데려가 준 적도 있다. 우리는 정확히 말하자면,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부모였다.

회사를 ‘때려치우겠다’라는 결정을 내리자 우리는 그간 해보지 못한 엄마 아빠 노릇을 온전히 해보고 싶어졌다. 땡그리를 좀 더 깊게 알고 싶어졌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나 이모님은 우리 아이가 ‘잘 참는 아이’라 했다. 이분들의 말씀에 의하면 대부분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은 크게 두 가지의 행동을 보이는데, 부모의 관심을 받기 위해 돌출 행동을 자주 보이거나 땡그리처럼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잘 누르거나 둘 중 하나라고 했다.

당시 땡그리는 만 3세였다. 말은 곧잘 하는 아이였으나, 화가 나면 말보다는 입이 먼저 나가서 상대를 깨물던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과 굳이 다른 점을 꼽아본다면, 어린이집 등하원이 다른 아이들보다 순조로운 편이었다. 최소한 안 들어가겠다고 뒤집어지진 않았으니까. 그리고 엄마 아빠가 바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어서 말끝마다 “엄마 바빠? 아빠 바빠?”를 붙이곤 했다.

무엇보다 땡그리는 ‘조르지’ 않았다. 어른들의 감정을 민감하게 캐치해 목소리 톤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눈치를 살폈고, 고집부리는 일이 적었다. 남들은 이즈음의 아이들을 ‘미운 세 살’, ‘죽이고 싶은 네 살’이라고 표현하던데, 우리는 그만큼의 ‘살심’을 아이에게 품을 만큼 크게 싸우지 않았다. 

궁금했다. 땡그리는 원래 그런 성격을 가진 아이인 건지, 아니면 주양육자인 엄마와 아빠가 너무 바빠 응석 부릴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우리가 ‘과학자’, ‘연구자’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어쩌면 땡그리가 ‘아이다움’을 포기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그래서 놀기로 했다. 회사에 다니면서는 절대로 신청해보지 못할 육아휴직을 ‘셀프’로 써 보기로 했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가며 살아야겠지만, ‘돈 떨어지기 전에 취업은 되겠지…’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 네가 케첩 싫어하는 것도, 동물원보단 수족관을 좋아한다는 것도 이제 알았어 

알고 보니 땡그리는 케첩을 별로 안 좋아하는 아이였다. ⓒ베이비뉴스
알고 보니 땡그리는 케첩을 별로 안 좋아하는 아이였다. ⓒ베이비뉴스

엄마 아빠가 회사에 안 가니, 아이의 일상도 변했다. 아침 일찍 여덟 시까지 어린이집에 가야 했던 아이는 아홉 시 삼십 분까지 등원 시간을 늦출 수 있었다. 늦게까지 잘 수 있게 되자 땡그리는 아침에 무언가를 먹기 시작했다. 그전 바쁜 아침 시간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눈도 채 뜨지 못한 아이를 씻기고 옷을 입혀 안고 뛰던 시절과 비교하면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알고 보니 땡그리는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였다. 너무 짜거나 신 음식을 싫어했다. 케첩 싫어한다는 것도 이때 알았다(아, 지금은 좋아한다). 아침에는 시리얼보다는 빵이나 오믈렛을 선호하는 ‘꼬꼬마’였다. 다행히 밥은 안 찾았다. 시리얼도 오레오 오즈는 먹으면서 후르츠링과 첵스 초코는 싫어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초코맛’도 종류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네 시 반에 어린이집 하원을 하면서 땡그리가 어린이집 버스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카시트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카시트의 5점식 벨트보다 어린이 버스의 2점식 벨트를 더 선호했다. 버스에서도 맨 뒷자리를 선호한다는 아이의 기호도 새롭게 알아갔다.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아이는 수영장을 좋아했다. 백수인 덕에 평일에 워터파크를 갈 수 있었다. 사람도 없고 아이도 잘 놀아서 만족스러웠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가족여행을 계획할 때 숙소 선택의 기준은 ‘수영장’이 됐다. 

땡그리가 동물원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사실 동물원보단 수족관을 더 좋아했다. 땡그리는 수족관을 좋아하면서도 아마존 물고기의 사이즈를 보고 기절초풍하는 바람에, 큰 물고기가 나오는 구역에서는 아이를 안고 다녀야 했다. 알고 보니 땡그리는 겁이 많은 아이였던 거다. 물고기를 보고 ‘괴물’이라 하는 아이에게 물고기는 ‘먹는 것’이라 알려주니 지금은 아마존 물고기도 좋아한다. 역시 상위 포식자에겐 먹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비교해줘야 이해가 쉬워지는 모양이다. 

땡그리는 잠이 많은 아이였다. 그동안 아이가 금요일 밤에 잠을 안 자고 놀았던 이유는 다음 날 엄마 아빠가 자기와 함께 있을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 땡그리는 선생님 말씀처럼 ‘잘 참는’ 아이가 아니라 굉장한 까불이였다. 곧잘 깐죽거리기도 했으며, 건방지게 가출을 감행할 만큼 고집이 센 아이였다. 마냥 착한 것만이 아닌 영악함도 있는 아이였고, 생각보다 엄마와 아빠를 많이 어려워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우리에게 “내일은 회사에 가야 해?”라고 물었다.

정말 많은 생각이 든 시기였다. 주양육자로 아이를 직접 키우겠다고 했지만, 연구자라는 본업을 수행하느라 또 다른 본업인 ‘부모’ 역할엔 소홀했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의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제대로 못 보고 살았다. 저 조그만 머리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지, 과학자인 엄마 아빠를 얼마나 멋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엄마 아빠가 바쁘니까 매일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는 것 역시 땡그리는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죄책감이 엄청나게 몰아쳤다. 남편과 나는 아이와 시간을 보낸 후에야 우리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시간을 보냈는지 깨달았다. 우리는 우리의 커리어를 위해 아이의 유년기를 갈아 넣었다. 비참했다. 처음의 결심과 달리 우리는 기본적인 부모의 역할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돈만 벌었다.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박사를 달고, 취업했고, 또래보다 높은 직급에 많은 연봉을 받으며 아이와 쇼핑만 잔뜩 했지, 아이와 뭔갈 제대로 해 본적이 없었던 거다.

‘돈 많이 벌어서 아이 풍족하게 해주면 된다’는 생각은 우리 부모 세대 이야기 아니던가….

◇ 다음 직장은 ‘돈’보다 ‘아이와 시간’ 보장하는 회사 선택하기로 했다 

회사 그만두고 가족 모두 처음으로 평일에 가본 수목원 소풍. 일만하던 엄마 아빠의 꿈이었다. ⓒ윤정인
회사 그만두고 가족 모두 처음으로 평일에 가본 수목원 소풍. 일만하던 엄마 아빠의 꿈이었다. ⓒ윤정인

이런 경험이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자, 이력서 뿌리는 횟수부터 줄였다. 다음 직장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아이와 함께한 시간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이직하게 된다면 회사에 더 올인할 수 있도록 시부모님께 육아를 부탁하기 위해, 합가하겠노라 결심했던 나와 남편의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연구에 올인하는 삶은 잘못된 선택지였다. 일과 가정은 함께 가야 하지,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선배들이 그렇게 살았다고, 우리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셀프’ 육아휴직 초기, 우리는 아이를 맡기기 위해 시댁과 합가하기로 했다. 궁여지책이었다. 나는 커리어를 포기할 수 없었고, 우리는 둘 다 ‘합성’ 쪽을 연구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또 야근이 있을 테고, 그럴 때마다 나 혼자 희생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신랑은 자신의 부모를 손자 육아에 갈아 넣고, 와이프의 커리어를 지키고자 했다. 

그게 아니라면, 수능을 다시 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교대나 사대 아니면 약대를 지망했다. 그게 안 된다면 연구직이 아닌 연구기획쪽으로 가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못 했다. 현장연구를 포기하기엔 박사 졸업한 지 얼마 안 됐고, 실험에 손이 많이 익은 사람인 데다가 나는 여전히 해보고 싶은 게 많았다. 무엇보다, 육아와 연구를 병행하는 삶에 어려움을 겪다가 그만두는, 많은 이공계 경력단절 여성의 사례 중 하나로 남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엔 아이 분유 먹이며 논문 쓴 세월이 격하게 억울했다.

결국, 우리는 급여보다 워라밸을 택했다. 쉽게 말해 정시 퇴근이 가능한 곳을 찾아서 가기로 했다. 야근이 잦은 유기합성연구의 특수성을 고려해 늦어도 저녁 일곱 시엔 나올 수 있는 회사를 고르자고. 둘 중의 한 명은 꼭 그렇게 하자고 약속했다. 

돈은 아이의 유년기와 바꿀 수 없다. 연구자로서 커리어가 중요한 만큼 부모라는 정체성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 부모라는 커리어는 합성연구를 한 경력만큼 늘어간다. 그 귀한 커리어 역시 버릴 수 없다. 엄마 5년, 졸업 후 현장연구자 4년. 비등비등한 이 경력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돈을 포기했다. 신랑보다 적게 벌게 된 것이 너무 억울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에 이 길을 선택했다. 엄마를 포기하지 않은 대가라고 생각한다면 도리어 그 값을 적게 치른 셈이다(사실 이런 값을 치르게 하는 세상이 말도 안 되는 거지만).

나는, 나같이 ‘바둥거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부모라는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바둥거리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오래 살아남아 관리직까지 올라가길 꿈꾼다. 그리고 우리가 선례가 되길 희망한다. 부모의 삶은 연구자의 삶과 공존할 수 있는 가치임이, 그렇게 증명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그래야 훗날 땡그리에게도 연구자의 삶을 추천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이 원고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 쓴 글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윤정인은 대학원생엄마, 취준생엄마, 백수엄마, 직장맘 등을 전전하며 엄마 과학자로 살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되었고,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서 젠더다양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프로불만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회사 다니는 유기화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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