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이 이래서' 더욱 뜻깊었던 돌잔치를 치렀다 
'시국이 이래서' 더욱 뜻깊었던 돌잔치를 치렀다 
  • 칼럼니스트 노미정
  • 승인 2020.06.2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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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과 함께하는 마을육아] 우리 삶에 작은도서관이 있어, 참 다행이다

요즘은 결혼식이나, 장례식, 돌잔치에 가는 게 참 고민이다. 함께 경사는 축하하고, 조사는 위로하는 자리인데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 가기가 꺼려진다. 

지난 2월 중순에 남편의 사촌 동생 결혼식이 있어서 대구에 다녀왔다. 그리고 며칠 뒤 대구에서 31번 확진자가 나왔고, 집단감염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날 비슷한 시간대에 근처 예식장을 우리가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마음졸였는지…. 열이나 기침 증상이 나타날까 봐 한동안 불안했다.

3월 말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온통 정신없는 시국이어서 어린아이가 있는 나와 여동생은 장례식장에 못 갔다. 어른들의 배려였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아마 장례식장에 갔어도 불편했을 것이다. 엄마는 지인들에게 장례 소식을 알리지 않고, 형제자매끼리 모여 조촐히 외할머니 장례를 치르셨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고들 한다. 포스트 코로나는 코로나19가 진정된 이후의 세상을 의미한다. 이런 말이 나올 만큼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많이 바꿔놨다. 경조사 자리에 가는 것이 꺼려지는 요즘, 이제는 내 손님인지 남 손님인지도 모를 많은 사람들이 돈만 내고, 밥만 먹고 가는 게 아니라, 진심을 담아 축하하고 위로할 수 있는 주체만 모이는 것으로 경조사 모임의 양상이 바뀌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뷔페에서 했던 첫째 돌잔치와 마을도서관에서 치렀던 우리 막내의 돌잔치를 비교해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첫째 돌잔치 땐 돌잔치 전날까지 입구에 장식할 성장일기에 사진을 붙이고, 문구를 적으며 밤을 새웠다. 돌상 직접 차린다며 돌상 물품 대여 카페를 샅샅이 살펴보며 고민하고, 어렵게 선택하고. 돌잔치를 준비하는 과정만 힘들었나? 당일은 화장에 손님 접대에 우왕좌왕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첫 아이였고, 그땐 다들 뷔페에서 돌잔치를 했다. 그런데 그때의 돌잔치는 아이와 함께했던 1년의 소중한 시간을 기억하는 자리라기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다 ‘일’이었다.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던 일련의 과정들을 돌아보며, 그 자리를 즐길 여유조차 없었던 내 모습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 아이 함께 키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든 돌잔치…그야말로 '진짜 잔치'였다

돌잔치 준비가 한창이다. 우리 막내 돌잔치. 작은도서관의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우리들의 축제다. ⓒ노미정
돌잔치 준비가 한창이다. 우리 막내 돌잔치. 작은도서관의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우리들의 축제다. ⓒ노미정

우리 작은도서관은 독서모임, 저자초청 강연회 등을 하며 평소엔 도서관 본연의 역할을 한다. 오전 동아리 모임이 끝난 점심시간 때는 밥 먹는 마을식당이 되고, 오후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의 방과 후 마을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이런 도서관에서 열린 셋째의 돌잔치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작은도서관에서 만난 엄마들이 아이들과 함께 숲놀이 모임을 했다. 울산의 자연을 맘껏 즐기며, 놀며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고, 그 사이 우리 집에는 막내가 태어났다. 형, 누나들이 노는데 아기를 데리고 다녔다. 아이가 자라는 시간에 함께 했던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러다 언젠가 공동육아모임에서 음식 한가지씩 가지고 와서 나눠 먹으며 우리끼리 조촐하게 우리 막내의 첫돌을 축하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나는 케이크를 준비하기로 했는데, 케이크만 하기 좀 섭섭해서 떡도 한 되 맞췄다.

누나와 형들은 풍선을 불어주며 공간을 예쁘게 꾸몄다. 한 이모는 돌상을 세팅하고 축하 문구를 만들어 붙였다. 한 이모는 미역국을 끓이고 불고기를 볶았고, 다른 이모는 사진을 찍어주는 등 모두 신나게 축제 같은 돌잔치를 만들었다. 호박에서 수박으로 변신하는 중이라며 딸이 엄마 입술에 립스틱도 발라주고, 이모들은 여자아이들에게 예쁘게 화장도 해줬다.

숲놀이공동육아모임의 형과 누나들이 풍선을 열심히 불어서 돌잔치 공간을 꾸몄다. ⓒ노미정
숲놀이공동육아모임의 형과 누나들이 풍선을 열심히 불어서 돌잔치 공간을 꾸몄다. ⓒ노미정

돌잔치의 하이라이트. 우리들의 ‘드레스 코드’는 뭐로 할까 고민하다가, 묵혀놓았던 한복을 결혼 15년 만에 꺼내 입었다. 붉은 치마에 노란 저고리 새색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우리. 몸매는 변했지만 매 순간이 너무 재밌고 즐거웠다. 엄마랑 아기랑 둘이서, 가족사진도 찍고,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모여 단체 인증샷도 남겼다.

돌잔치에 빠질 수 없는 돌잡이 용품도 막내를 키우며 만났던 자연육아모임 지인에게서 얻었다. 도서관에서 돌잔치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흔쾌히 빌려줬다. 이모들이 막내를 위한 즉석 축하송도 불러줬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이벤트라 어리둥절하고, 가슴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사진을 다 찍고 엄마들이 정성 들여 준비한 음식으로 맛있는 뷔페가 차려졌다.

음식 한가지씩 준비해서 간단히 먹자고 얘기했는데, 미역국, 불고기, 진달래 화전, 과일까지 다들 함께 만들고 준비해온 걸 보고 너무 고마웠다. 사람이 주는 감동만큼 큰 게 있을까?

숲놀이 모임을 하며 만난 한 엄마는 아이들 사진 찍는 걸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엄마는 그날에도 열심히 베테랑 사진작가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덕분에 행복했던 표정의 사진들이 주옥같이 남았다. 오랜만에 한복을 입은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아이들 사진도 열심히 찍어줬다.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은 드디어 한복을 벗어 던지고 도서관에서 신나게 놀았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만든 작지만 의미 있는 돌잔치였다. 공동육아모임을 하며 비 올 때, 더울 때, 추울 때 우리가 함께했던 아지트 같은 공간 작은도서관이 있어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다. 그런 마음을 담아 돌잔치 공간사용료를 겸해서, 아이 이름으로 약소한 기부금을 전달했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작은도서관'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작은도서관에서 만나 친구가 된 동갑내기 엄마의 늦둥이가 100일을 맞았다. 이 아이의 백일잔치도 작은도서관에서 함께 했다(위). 작은도서관을 드나들던 아이들이 졸업시즌을 맞으면 함께 조촐한 축하파티를 연다(아래). ⓒ노미정
작은도서관에서 만나 친구가 된 동갑내기 엄마의 늦둥이가 100일을 맞았다. 이 아이의 백일잔치도 작은도서관에서 함께 했다(위). 작은도서관을 드나들던 아이들이 졸업시즌을 맞으면 함께 조촐한 축하파티를 연다(아래). ⓒ노미정

그동안 졸업 때가 되면 작은도서관을 이용하는 유치원, 초, 중, 고, 아이들과 함께 조촐한 축하파티를 열었다. 축하받고 싶은 사람, 축하해주고 싶은 사람 누구나 와서 함께 만들어가는 자리다. 아이들을 축하해주고 싶다고 손수 떡볶이와 샐러드를 준비해오시는 분도 계셨다. 어른과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음식도 나누고 축하도 하는 이 자리가 참 정겹다.

작은도서관에서 만나 친구가 된 동갑내기 엄마의 늦둥이 둘째 100일 잔치도 도서관에서 열렸다. 도서관 손글씨 동아리 이모가 예쁘게 써준 돌잔치 문구는 너무 따뜻했다. 그는 아기의 언니에게 ‘100일 동안 동생을 잘 돌봐줘서 고마워’ 라고 적어주었다.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작은도서관에서 프러포즈를 하셨다는 커플도 계신다. 또, 어느 날부터인지 도서관에 다산의 기운이 솟아나 이용자분들이 기쁜 소식을 많이 전해주셨다. 임신과 출산으로 독서모임에 못 나와 아쉬운 맘도 있지만, 조만간 아기를 데리고 놀러 오겠다는 반가운 연락도 받았다.

울산에, 대한민국에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맘 편하게 갈 수 있는 ‘더불어숲’ 같은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곳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 돈을 주고 사는 게 익숙해진 시대지만, 돈 주고 잠시 빌리는 공간보다 아이와 드나들던 공간에서 100일, 돌잔치, 생일, 졸업 축하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다. 이 공간은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들의 삶을 함께 나누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코로나 19가 진정된 이후의 삶은, 빨리빨리 보다 천천히, 작은 것이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칼럼니스트 노미정은 중학생 둘에 늦둥이 다섯 살까지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울산 동구의 더불어숲작은도서관에서 친구들과 공동육아·마을공동체를 고민하며, 함께 읽고, 쓰고, 밥도 먹는다.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마을, 우리가 오래도록 살고 싶은 마을을 위해 지금 나부터 ‘꿈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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