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마친 아이가 웬일로 마스크를 쓰고 뛰어나왔다. 선생님께서 종례 후에 마스크를 쓰고 신발장까지 내려가라고 했다더니, 아이가 잘 따라준 모양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등교 시간과 쉬는 시간, 하교 시간에도 마스크를 곧잘 쓰는 아이가 놀랍고 기특하다.
◇ 다들 등교 개학 기다릴 때, 개학 연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아이가 등교수업을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한 달 전, 등교 전만 해도 아이가 5분, 10분씩 마스크를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못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몸에 닿는 어떤 장신구라면 무조건 거부했다. 모자도, 장갑도, 장화도. 심지어 우산도 자기 손으로는 들지 않는 아이였다. 크면 나아질 줄 알았지만, 갈수록 더 까다로워졌다. 겨우 옷과 신발만 허용하는 예민함의 극치.
이런 아이에게 코로나19라는 상상치도 못한 현실이 닥쳤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어디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는 시대. 나와 타인의 안전을 위해 마스크 쓰기가 생명줄처럼 중요한 일이 되어버린 세상이 온 것이다.
그런 아이가 얼굴에 딱 붙는, 그것도 코와 입을 다 가려서 숨쉬기도 불편한 마스크를 학교에서 내내 쓸 수 있을까? 학교에서는 지침에 따라 아이들을 관리해야 할 것이고, 아이는 새 학년 새 교실에 적응하기도 전에 마스크로 폭발할 것이다. 선생님은 또 얼마나 힘이 드실까. 그 실랑이를 하는 모습을 그려보자니, 등교수업이 여러 차례 연기되는 상황이 엄마로서는 다행스럽기까지 했다.
‘올해 최대 30일까지 쓸 수 있는 체험학습을 모두 신청하고 집에 데리고 있을까? 원반에는 가지 않고 도움반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게 요청을 할까? 그냥 이참에 홈스쿨링을 할까?’
별별 생각을, 고민을 해봐도 해답은 없고, 등교일은 점점 다가왔다. 남들은 학교에 안 가서 힘들다던데 우리 집은 마스크를 안 쓰는 아이 때문에 등교하고 싶지 않은, 아이러니한 상황.
코로나가 발달장애아라고 피해가겠는가. 코로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니까. 아이의 안전과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마스크를 쓰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게 너무나 힘든 사람들이 있다. 연습을 시키려 해도 남들보다 백배 천배 더 큰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코로나 시대에 이런 개인의 어려움은 어떻게 이해받아야 할까?
그동안 마스크 쓰기 연습을 안 한 것도 아니다. 마트에서 ‘마스크 없이는 과자를 살 수 없다’라고 얘기해도 마스크만 씌우면 그 귀한 마스크를 바닥에 던져 버리기 여러 번. 강요할수록 거부만 늘어가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 “네가 마스크를 못 쓰니, 우리가 더 열심히 마스크를 쓸게!”
드디어 6월 3일. 3학년 등교일이 다가왔다. 마스크만 씌우면 1초 안에 벗어 던지는 아이를 위해 땅에 떨어지지 않는 마스크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어주었다. 다음은 학교의 몫이다. 아이는 오늘 하루 학교에서 얼마나 “마스크 써”라는 말을 들어야 했을까. 아이는 마스크 쓰기를 견뎠을까? 혹은 견디지 못하고 폭발했을까?
노심초사하며 하교 시간만 기다렸다. 수업 마치고 학교 밖으로 뛰어나오는 아이 얼굴이 환하다. 울먹이며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다.
“어머니, 주원이가 마스크를 오래 쓰기 힘들어해서, 우리 반 친구들이 더 열심히 마스크를 쓰기로 했어요!”
주원이를 배웅하러 온 선생님의 말씀에 눈물이 핑 논다. 생각지도 못한 감사한 배려였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아이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같은 반 친구와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이 문제를 풀어준 것이 이들이라니!
따뜻한 배려를 받으며 등교 개학을 한 아이는 즐겁게 새 학년에 적응하는 중이다. 친구들과 접촉할 수밖에 없는 쉬는 시간. 선생님의 지도로 아이는 마스크를 꼭 쓰고 화장실에 다녀온다. 단 1초도 쓰기 힘들었던 마스크 쓰기도 학교에서 조금씩 연습 중이다.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 아이도 마스크를 피부처럼 자연스럽게 여기고 거부감없이 사용할 날이 올 것이다.
코로나 시대. 모두가 처음 경험하는 새로운 세상이니 잘 참고 견디라고 한다. 하지만 그 참고 견딤도 사람에 따라 정도가 다르다.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마스크 쓰기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의 선생님과 친구들이 보여준 이해와 배려야말로 코로나 시대를 현명하게 이길 수 있는 더 중요한 방법이 아닐까?
*칼럼니스트 김덕화는 제주에서 열 살 발달장애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2년 전 제주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 덜컥 제주도로 가족이 이주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주원이를 더 잘 이해하고, 세상에 주원이를 더 잘 이해시키고 싶어서 관심을 가지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읽기선생님, 장애이해교육강사, 발달장애이해 그림책 「우리 아이를 소개합니다」 공동저자가 돼 있네요. 다양한 매체에서 잡지를 만든 경험이 있고,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며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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