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일에 파묻혀 있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때 마주친 아이의 미소는 언제나 사랑스럽고 볼 때마다 힘이 난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이면 나와 아이는 함께 잠자리에 눕는다. 아이는 내 얼굴을 가까이 보며, 얼굴에 손가락 대보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의 작은 손가락이 내 얼굴을 스칠 때면, 일상의 힘듦을 달래는 것만 같은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아이의 손가락이 나의 눈꺼풀에 닿았을 때, 나는 이렇게 반응한다.
“이건 엄마 눈~, 예준이 눈은 어디 있을까?”
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 얼굴 곳곳을 만지작거린다. ‘눈코입 찾기 놀이’는 엄마와의 애착 형성에 도움을 준다. 아이도 자신의 신체에 대해 알아간다. 배 속에서 힘차게 발길질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이렇게 훌쩍 커서 엄마 얼굴을 만지작거리다니….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문득, 산부인과에서 처음 입체 초음파 사진을 봤을 때 양수 안에서 퉁퉁 불어있던 얼굴 생김새가 신기했고, 누굴 닮았을까 하고 남편과 재잘거렸던 시간도 떠올랐다.
“엄마 입~”이어서 나의 콧등을 스치는 예준이의 손가락. 다시 대답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예준이의 손가락은 바빠졌다. 그러다 문득 내 귓불에 예준이의 손가락이 닿았을 때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자유로울 줄 알았다. ‘장애’에서. 그러나 아이는 나와 다른 언어와 소리를 배워가는 과정에 있다.
‘장애’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마음도 움츠러들었다. 그 마음을 회복하는 데 걸린 시간도, ‘장애’를 받아들인 시간만큼이나 길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자격지심’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 마음이 아이에게 닿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아이 손가락이 내 귓불에 유난히 자주 닿을 때마다 ‘자격지심’이란 단어가 맴돌았다. 그럴 때마다 아이의 등을 어루만지며 “그래~ 엄마 귀는 여기 있지~”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 예준이가 엄마의 장애를 통해 ‘이해’를 배우길…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예준이는 엄마의 검지를 붙든 채 잠들었다. 나는 예준이의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나는 엄마로 살기 전까지 ‘청각장애’를 이유로 많은 차별을 받아왔다. 나에 대한 차별을 알아차릴 때마다 이 사회에서 내가 견뎌야 할 일이 늘어나고 있음을 함께 깨달았다.
나는 나의 장애를 인정하고 수용했던 시간보다, 비장애인이 사용하는 음성언어와 다른, ‘보는 언어’인 수어를 받아들이며 사는 시간이 더 행복했다. 그래서 장애를 수용하고 사는 엄마를 아이가 이해해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욕심이 나는 만큼 나의 ‘자격지심’을 접어야 했다. 늘 미안한 마음으로, 내 아이에게만큼은 최선을 다하려는 모든 엄마의 마음이 그렇듯.
사회에서 ‘장애’를 배울 때 ‘차별’과 ‘다름’을 먼저 익힌다. 하지만 나를 의지하며 지금 꿈을 꾸고 있는 예준이가 ‘장애’란 또 다른 ‘이해’임을 배우길 바란다. 장애는 차별의 대상이 아닌 그저 조금 다를 뿐이라는 것을….
예준이가 엄마를 통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하길 바라며. 아이는 단지 궁금해서 엄마의 ‘장애’를 톡-건드렸을 뿐인데, 왜 엄마는 움찔거리며 자격지심을 가지게 됐을까? 사회에서 오랫동안 받아온 차별이 엄마의 양육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이샛별은 경기도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에서 농인(=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이는 뉴스를 제작하며, 틈날 때마다 글을 쓴다. 유튜브 ‘달콤살벌 농인부부’ 채널 운영, 다수 매체 인터뷰 출연 등 농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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