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죽어야 기사 쓸 겁니까?”
“우리가 죽어야 기사 쓸 겁니까?”
  • 최규화 기자
  • 승인 2020.07.10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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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언론은 아동들의 목숨을 지키는 길을 보여주고 있는가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신문에 대서특필 되는 아이는 죽은 아이뿐이다 ⓒ베이비뉴스
신문에 대서특필 되는 아이는 죽은 아이뿐이다 ⓒ베이비뉴스

10년쯤 전으로 기억한다. 다른 매체에서 기자로 일하던 시절, 제보 전화를 받았다. 회사의 부당한 해고 결정에 맞서서 파업을 시작한 노동자였다. 해고를 막을 수 있도록 자기네 이야기를 기사로 써달라고 했다.

기자는 늘 ‘거절’하는 직업이다. 저마다 절박한 사정으로 제보를 하지만, 그중 많은 것들은 실제 취재로 이어지지 못하고 ‘거절’당할 수밖에 없다. 그때도, 취재할 수 없다는 말을 에둘러 하고 있었다. 그러자 제보자가 물었다.

“그럼 우리가 죽어야 기사 쓸 겁니까?”

지금도 그때의 부끄러움이 생생하다.

그의 말이 모두 옳았다. 노동자들의 투쟁 소식이 신문에 나려면, 그냥 투쟁만 해서는 안 된다. 몇 주씩 밥을 굶거나, 철탑에 올라가거나, 한여름 한겨울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거나, 아니면 정말 누가 목숨을 잃어야 한다. 정중한 목소리였지만 피를 토하듯 뱉었을 제보자의 한마디가, 지금까지도 나를 죄스럽게 한다.  

우리 사회에는 그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아동 역시 그렇다. 신문에 대서특필 되는 아이는 죽은 아이뿐이다. 지난달 아동학대 사건이 연달아 알려졌다. 충남 천안에서는 어린이가 여행가방에 갇히는 등 가정 내 학대를 당한 끝에 숨졌고, 경남 창녕에서는 어린이가 폭력에 시달리다 가정을 탈출했다.

아이는 죽었고, 언론은 수많은 기사를 쏟아냈다. 뉴스 빅데이터 서비스 ‘빅카인즈’에서 ‘아동학대’를 키워드로 기사를 검색해봤다. 6월 20일 기준 최근 1년간 54개 매체가 쓴 ‘아동학대’ 기사는 5260건. 천안과 창녕의 아동학대 사건이 알려진 2020년 6월에 나온 기사가 1185건으로, 22.5%가 이달에 집중돼 있었다.

반면 최근 1년 동안 ‘아동인권’이라는 키워드로 검색되는 기사는 325건이었다. 같은 기간 ‘아동학대’로 검색된 기사의 수와 비교하면 6.2%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2020년 6월에 나온 기사가 63건으로, 최근 1년 동안 나온 기사 중 19.3%를 차지했다. 학대 사건이 없었다면 인권에 대한 관심 또한 없었을 거라는 얘기다.

그렇게 나오는 기사마저도 이 기사를 쓴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 의심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언론이 죽음을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당했는지, 가해자는 얼마나 악랄한 사람인지, 사건의 비극성과 잔인함만을 강조해 ‘클릭’을 유도하는 자극적인 제목과 서술이 넘친다.

물론 가해자의 행위는 절대 용납돼선 안 되는 범죄다. 하지만 가해자를 ‘악마’로 만드는 보도로는 아동학대 범죄를 막을 수 없다. 아동학대 사건은 가해자가 ‘악마’라서 일어나는 걸까. 가해자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신상을 털듯 이뤄지는 보도는 가해자에 대한 분노만 키운다. 하지만 대개는 거기서 끝날 뿐이다.

◇ 신문에 대서특필 되는 아이는 죽은 아이뿐이다

‘계모/계부 아동학대 사건’이라는 식의 명명 또한 같은 맥락이다. 가해자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마치 ‘정상’적이지 못한 가족의 형태가 아동학대의 원인인 것처럼 여기게 한다. 특정한 가족의 형태에 대한 혐오로 당사자들에게 상처만 줄 뿐, 아동학대의 본질에 접근하는 길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

2016년 아동학대 행위자 중 76.3%가 친부모였다.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매니저는 “(가해자가 계모/계부임을 강조하는 보도는) 친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많은 부모로 하여금 아동학대를 '비정상 가족'에서 벌어지는 '남의 일'로 바라보게 할 위험이 있다”(6월 17일 베이비뉴스 인터뷰)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18년을 기준으로 최근 5년간 134명의 아동이 학대로 사망했다. 사건의 잔인함만 강조하고 반복하는 동안, 가해자를 향한 들끓는 분노만 쏟아내는 동안, 해마다 30명에 가까운 아이들은 목숨을 빼앗겨왔다. 과연 언론은 이들의 목숨을 지키는 길을 보여주고 있는가.

언론이 던져야 할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 사회는 아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아동관’을 묻는 것. 아동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으로서 모든 권리를 가진 주체다. 생존과 보호의 권리를 포함한 권리의 주체로서,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는 무엇을 했는지 질문하고 평가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민법상 ‘징계권’ 조항을 살펴보자. ‘친권자는 그 자(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민법 제915조. 6월 10일 법무부는 “징계권 관련 법제 개선 및 체벌금지 법제화를 내용으로 한 민법 개정을 추진 중에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동안 시민사회에서는 민법 915조 징계권 조항 철폐를 꾸준히 주장해왔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도 한국 정부에 ‘징계적 처벌을 포함한 모든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그동안 움직이지 않던 정부는, 결국 또 한 명의 아이가 죽고 나서야 법을 고치겠다고 선언했다.

빅카인즈에서 ‘징계권’으로 검색되는 기사는 최근 1년 동안 207건이다. 그중 132건은 2020년 6월에 나온 것. 잇따른 아동학대 사건으로 징계권이 이슈가 되기 전에 나온 기사는 11개월 동안 75건밖에 없었다.

10년 전 내게 “그럼 우리가 죽어야 기사 쓸 겁니까?”라고 묻던 노동자가 있었다. 그리고 2020년 우리 사회의 아동들도 언론을 향해 소리 없이 묻고 있다. 나는, 우리 언론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최규화 베이비뉴스 기자는 국제아동인권센터 자문위원입니다. 이 글은 국제아동인권센터 칼럼(http://incrc.org/column/?uid=112&mod=document&pageid=1)으로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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