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장에서 보낸 '보통의 하루'… 말 위에선 장애 잊었다
승마장에서 보낸 '보통의 하루'… 말 위에선 장애 잊었다
  • 김재희 기자
  • 승인 2020.07.21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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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러 제주 왔수다②] 발달장애 유아 대상 재활승마 체험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바람도 돌도 많은 섬, 제주도. 제주 땅의 척박함만큼, 한국에서 발달장애 아동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또한 척박하다. 자녀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고자 옥답을 가꾸듯 투쟁하는 부모들이 제주에 있다. 발달장애·발달지연아동 부모모임 ‘제주아이 특별한아이’를 만나 조금 느릴 뿐인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우리 사회는 어느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지 모색했다. - 기자 말

지난 5일 제주시 아라일동에 위치한 제주대학교 말산업전문인력양성센터에서 열린 ‘재활 힐링 승마체험’에서 자신감을 보이는 다섯 살 다원이.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5일 제주시 아라일동에 위치한 제주대학교 말산업전문인력양성센터에서 열린 ‘재활 힐링 승마체험’에서 자신감을 보이는 다섯 살 다원이.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말 타고 싶어요?”

“말 탈 거예요!”

소리를 지르며 말타기를 거부하는 아이. 코치의 물음에, 지희는 고함을 섞었지만 분명하게 대답했다.

여섯 살 지희는 자폐가 있다. 엄마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다가도 얼마 안 가 엄마를 밀치고 소리를 지르며 멀리 달아난다. 말과 마음이 잘 이어지지 않아 답답한 것은 지희나 엄마나 마찬가지.

덤덤하게 말 근처까지 가는 데 성공한 지희는 정작 말이 기승을 위해 준비해둔 발판 앞으로 다가오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선원주 코치가 말에 태우기 위해 지희를 안아올렸을 때 강하게 발버둥쳤다. 아이는 더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희가 어렵게 말에 올랐다. 아이를 태운 말이 걷기 시작했다. 주변도 술렁였다. 부모들은 몸에 매달린 아이들을 돌보며 지희를 우려스럽게 지켜봤다. 그리고 이내 감탄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선 코치는 “자폐 아동은 자신의 의지와 관련 없이 반응할 때가 있다”며 “강습을 진행할 때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말 타기 전 보호장구를 착용하는 여섯 살 지희.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말 타기 전 보호장구를 착용하는 여섯 살 지희.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5일 제주시 아라1동에 위치한 제주대학교 말산업전문인력양성센터에서 ‘재활 힐링 승마체험’이 열렸다. 이날 체험은 발달장애·발달지연 아동 부모 모임 ‘제주아이 특별한아이’에서 신청한 열 가족이 함께했다. 

부모들은 아이가 얼마나 말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제주대 측은 재활승마 프로그램에 관심 있는 가정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이번 기회를 마련했다.

지난 5일 재활승마 체험이 열린 제주대학교 말산업전문인력양성센터 마장 전경.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5일 재활승마 체험이 열린 제주대학교 말산업전문인력양성센터 마장 전경.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말 매개로 안정 도모하는 재활승마… 지자체‧교육청 등에서도 지원

재활승마는 말을 쓰다듬고 씻겨주는 활동과 마상체조 등과 같이 말과 인간이 함께하는 모든 행동을 포함한다. 한국에서 재활승마는 2001년 삼성전자승마단이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정부는 2011년 말산업육성법을 제정하면서 2012년 재활승마지도사 자격증을 국가공인으로 신설했다.

재활승마가 장애인에게 치료적 성과가 있다는 점은 많은 연구결과가 증명한다. 대근육 운동능력과 균형감각 등의 신체적 능력을 향상하고 판단력과 자신감, 성취감 등도 느낄 수 있게 한다. 

특히 2012년 한국마사회가 송동호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와 공동으로 발달장애 아동 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승마 강습 후 장애아동들의 우울, 불안 등의 부정적인 정서가 뚜렷한 호전을 보였다’는 결과를 내놨다.

한국마사회는 2012년 6월 승마힐링센터 개장 브리핑에서 연구결과를 두고 “강습승마가 정서장애를 겪고 있는 청소년들이 말과의 교감을 통해 신체적·정신적인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효과적 치료방법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다원이가 기승 체험 후 자신이 탔던 말을 쓰다듬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다원이가 기승 체험 후 자신이 탔던 말을 쓰다듬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현재 경북 안동시, 서울 강동구, 세종시교육청 등에서 발달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재활승마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마사회 또한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재활승마를 운영하고 있다. 직영 두 곳에서만 운영하던 재활승마 강습을 올해부터는 전국으로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선 코치는 재활승마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말이라는 동물을 매개로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안녕을 도모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재활 힐링 승마체험’ 또한 재활승마 프로그램 소개와 기승 및 하마, 말 먹이주기 등으로 구성됐다. 

재활승마는 강습에 많은 인력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일반승마와 차이가 있다. 승마 수업을 담당하는 지도사가 있으며, 자원봉사자가 말을 다루는 리더와 아이를 양 옆에서 지탱하며 보살피는 사이드워커(sidewalk)로 말을 탄 아동과 함께 움직인다.

재활승마 강습은 부모의 개입 없이 진행된다. 선 코치는 “아이가 말을 타고 있다가 불안을 느낄 때 부모에게 의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체험은 친밀도를 높이려는 목적이 더 큰 만큼, 부모가 사이드워커 역할을 했다. 선 코치는 그 이유를 “말을 무서워하는 아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친밀도를 높이는 작업을 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모든 과정은 안전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체험에 앞서 선원주 코치는 프로그램 소개를 하며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체험에 앞서 선원주 코치는 프로그램 소개를 하며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기쁨 앞에 솔직한 아이들… 말 위에서 찾은 행복

체험 안내와 재활승마 소개가 끝나고 선 코치가 가족들에게 마장 앞에서 대기해달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말을 만난다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교실 밖을 나가 보호장구를 먼저 챙기거나,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다니거나, 모처럼 만난 친구를 얼싸안거나, 함께 온 가족에게 달려가 말을 타고 싶다고 조르는 등 아이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한껏 들뜬 기분을 표현했다. 

준비를 마친 아이들은 마장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말과 한 차례 인사를 나눈 뒤 지도사의 도움을 받아 말에 올라탔다. 실제 말을 가까이 한 아이들은 두려움을 느끼지만, 말 위에서 고삐까지 잡으면 이내 진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자못 진지하게 승마에 임했다. 

아이들은 리더, 보호자와 함께 마장 한 바퀴를 돌았다. 그 후 말을 제어해 멈추는 법을 배웠다. 아이들은 말에 올라타는 것부터 어려움을 느끼다가도, 마장을 한 바퀴 돌고나면 한껏 자신감이 올라왔다. 말을 쓰다듬어주라는 코치의 지시에 제법 근엄한 얼굴을 짓는 아이도 있었다.

“권이 오늘 완전 신났구나.” 

다섯 살 명권이는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모래를 하늘로 뿌리며 여기저기로 뛰어다녔다. 기승을 하고 마장을 한 바퀴 돈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명권이의 엄마 정지현 씨는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그러면서 “권이는 에너지가 많은 아이라 수영도 하며 에너지를 써야 한다”고 귀띔했다. 정 씨는 “말을 태워보니 아이가 말을 좋아한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며 재활승마 프로그램이 제주대에서 열리면 꼭 시켜야겠다는 의지를 표시했다.

승마 체험 중인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며 다원이가 밝은 얼굴로 말을 타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승마 체험 중인 다원이가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며 밝은 얼굴로 말을 타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어머, 다원이 잘한다.”

자녀의 순서를 기다리던 다른 부모들도 자신의 아이가 말에 탄 것 마냥, 말 위에서 의젓해진 다른 아이를 뿌듯하게 바라봤다. 

아이들이 말에 오르고 고삐를 쥐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많은 이들의 도움도 필요했다. 말에 탄 아이들은 그 순간만큼은 장애를 잊은 듯했다. 정작 고삐를 쥐고 말과 함께 걷는 동안은 오히려 의젓하기까지 했다.

30분으로 예정하고 오후 4시부터 시작한 아동 열 명의 기승‧하마 체험은 오후 5시가 돼서야 마무리가 됐다. 아이들은 땀과 흥분에 흠뻑 젖어 있었다. 표정도 시작 전과 비교해 긴장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밝아졌다. 

◇ “자신 외 세상과 교감 알려줘” “제주 특성 살린 프로그램 돼야”

“말은 앞발로 차기 때문에 옆에 서서 (당근을) 줘야 합니다. 당근 끝부분을 주먹 쥐듯 잡고 주거나 손바닥 위에 당근을 올려놓고 말에게 주세요.”

한껏 신난 아이들은 말에게 먹이를 주러 간다고 하자 너도나도 말에게 줄 당근스틱을 받아갔다. 말을 타지 않겠다고 했던 모습은 잊은 듯했다.

아이들은 지도에 따라 부모님과 함께 당근스틱을 하나씩 건넸다. 여기저기서 ‘꺄아’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기승체험 전보다 적극적으로 말과 눈을 맞추고 말에게 다가갔다.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말의 콧잔등을 쓰다듬어주며 말의 행동에 반응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승마 체험을 마치고 땀에 흠뻑 젖은 명권이가 엄마와 함께 말에게 당근을 주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승마 체험을 마치고 땀에 흠뻑 젖은 명권이가 엄마와 함께 말에게 당근을 주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선 코치 또한 재활승마 효과가 ‘자신 외의 세상과 교감할 수 있게 하는 것’에 있다고 봤다. “강습 과정에서 말에게 먹이를 주고 감사를 표현하게 하면서 ‘본인보다 말이 먼저’라는 점을 알려준다”고 강조했다. 

선 코치는 “말을 타는 아이들은 지도사와 자원봉사자와 의사소통으로 강습이 이뤄지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사회성을 학습한다”며 재활승마 강습으로 사회 적응 능력이 향상된다고 설명했다.

강호진 군의 어머니 현희선 씨는 “주기적으로 승마를 해야 아이가 말을 인식하는 거 같다”며 “네 살 때는 괜찮았는데 오늘 반응은 조금 달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재활승마 프로그램이 마련되면 지속적으로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 학부모들은 체험이 마무리된 이후 프로그램 개설을 문의하기도 하며 재활승마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였다.

체험 종료 후 제주아이 특별한아이 측은 제주도에 발달장애 아동들을 위한 재활승마 강습이 활성화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박정경 제주아이 특별한아이 대표는 “재활승마 체험을 다녀온 부모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며 “제주는 승마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만큼 프로그램이 개설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주도의 특성을 살린 재활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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