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이제 아는 것 같다, 엄마아빠가 ‘농인’이란 걸
아이는 이제 아는 것 같다, 엄마아빠가 ‘농인’이란 걸
  • 칼럼니스트 이샛별
  • 승인 2020.07.22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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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기] 요즘 예준이 '손가락'이 바쁜 이유

어느 금요일 저녁이었다. 저녁 식사로 뭘 준비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모처럼 남편이 일찍 퇴근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금요일엔 역시 배달 음식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머리를 맞대고 신중히 배달 음식 메뉴를 고른 뒤 주문했다. 예준이는 아직 배달 음식을 먹기에 이른 나이이므로, 먼저 저녁밥을 먹였다. 

초인종 소리를 바로 인식하는 것이 어려운 우리는 늘 배달 기사에게 ‘도착하시면 문자 먼저 보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따로 남긴다. 도착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확인해야 비로소 기다리고 기다리던 배달 음식을 손에 쥘 수 있다. 

그런데 그날따라 예준이와 노는 데에 열중한 나머지, 문자 메시지 확인을 못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예준이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외친다. 

“저거~ 저거~”

남편이 갸우뚱하는 사이, 낌새를 알아차린 나는 바로 인터폰 화면을 확인했다. 그리고 서둘러 문 열림 버튼을 누르고 나가 따끈따끈한 치킨을 받았다. 배달이 밀려 마음이 급했을 배달 기사님께 고개 숙여 죄송하다는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 인사도.

“예준이 잘했어. 엄마 아빠에게 알려줘서 고마워.” 

이 일은 아마 예준이가 우리에게 한 최초의 ‘효도’ 비슷한 일일 것이다. 

◇ 예준이가 우리에게 한 최초의 '효도'

예준아,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치킨 못 먹을 뻔했어. 그리고, 또 고마워. 우리에게 네게 들리는 소리를 알려줘서. ⓒ베이비뉴스
예준아,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치킨 못 먹을 뻔했어. 그리고, 또 고마워. 우리에게 네게 들리는 소리를 알려줘서. ⓒ베이비뉴스

예준이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빨리 알게 된 것 같다. 엄마 아빠가 자신과 다르게 소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예준이가 마냥 어릴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예준이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아이로 자라나고 있었다. 내 품에만 안겨 있던 아기는 이제 늠름하게 두 다리로 서서 세상을 올려다본다. 

작디작았던 예준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고 어쩔 줄 모르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엄마를 앞서 저만치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짓는다. 그런데 늘 마음 한편엔 예준이가 바라보는 ‘농인 부모’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함이 자리잡고 있다.

'네가 올려다본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그 세상은 너에게 ‘농인 부모’를 뭐라고 설명하고 있을까…. 이 궁금한 마음이 네 마음에 닿았을까.'

농인 부모의 자녀들은 부모에 대한 일종의 ‘의무감’을 갖고 자라난다고 했다. 부모가 소리를 모르니, 자녀가 부모에게 소리를 알려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날 ‘치킨 사건’ 이후 우리의 현실을 예준이가 되도록 버겁지 않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요즘 예준이 손가락이 참 바쁘다.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밥솥으로, 빨래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 세탁기로, 이젠 초인종 소리까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엄마 아빠에게 알려준다. 미안하고 대견스럽다. 아이와 함께하는 매일매일 내 마음은 감동에 물든다. 부모에 맞춰 자라는 아이가 기특하다.

엄마 아빠에게 소리를 알려주는 예준이의 손가락 마디 마디가 자라는 만큼, 엄마 아빠의 마음결에도, 눈 맞춤에도 진심을 가득 담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칼럼니스트 이샛별은 경기도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에서 농인(=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이는 뉴스를 제작하며, 틈날 때마다 글을 쓴다. 유튜브 ‘달콤살벌 농인부부’ 채널 운영, 다수 매체 인터뷰 출연 등 농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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