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사례 1] 원장님은 저와 같은 교실에서 일하는 교사가 누구와 전화를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저에게 염탐을 시켰습니다. 하루 일과를 원장에게 알려줄 것을 지시했습니다. 저는 안 한다고 했더니 ‘지시불이행’이라며 사직서를 쓰라고 했습니다. 사직서를 안 쓰고 있었더니 다른 교사한테 저를 염탐시킨 적도 있습니다.
[사례 2] 원장이 페이백을 강요했습니다. 시청에 물어본 뒤 그건 불법이라고 했더니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단체 채팅방에서 제외해서 따돌렸고, CCTV로 우리 반만 감시했습니다. 원장은 제가 녹음해서 신고하지 못하게 제 몸을 더듬으면서 핸드폰이나 녹음기가 있는지 수색까지 하고, 퇴직을 강요했습니다.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가 공개한 직장 내 괴롭힘 사례 일부다. 지난 20일 보육지부는 ‘2020 상반기 보육교사 노동실태조사’ 결과를 알렸다. 지난 7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된 조사에는 보육교사 1060명이 참여했다.
노동실태조사는 지난해 12월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됐다. 특히 이번 조사는 최근 ‘직장내괴롭힘금지법’(2019. 7. 16. 시행) 시행 1년을 맞아, 보육교사 노동실태 변화를 파악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조사 결과 1060명의 보육교사 중 지난 1년간 직장내괴롭힘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했다는 응답자는 70.28%(745명)였다. 지난 조사(57.30%)보다 12.98%p 상승한 수치다. 본인이 경험한 괴롭힘의 유형은 ‘CCTV 감시’가 42.10%로 가장 높았고, ‘폭언ㆍ모욕’(33.90%), ‘부당업무지시’(32.30%)가 뒤를 이었다.
◇ ‘직장내괴롭힘 경험 또는 목격’ 70%… 가해자는 ‘어린이집 대표’
그럼 괴롭힘의 가해자는 누구였을까. 지난 1년간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보육교사 745명 중 78.26%는 ‘원장 또는 이사장 등 어린이집 대표’를 지목했다. 지난 조사의 응답률 68.9%보다 9.4%p 상승한 것.
이들 중 ‘괴롭힘 때문에 의료적 진료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은 24.70%로 집계돼, 응답률 8.7%를 기록한 지난 조사에 비해 큰 폭(16.0%p)으로 상승했다. 또한 어린이집 내 괴롭힘의 심각 수준을 물은 결과, 열 명 중 아홉 명 꼴인 89.26%(매우 심각하다 33.29%, 심각한 편이다 55.97%)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지난 16일은 직장내괴롭힘금지법 시행 1년이 되는 날이었다. 보육교사들은 법 시행 이후 변화를 체감하고 있을까? 1060명의 보육교사 중 지난 1년간 직장내괴롭힘이 줄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20.6%(매우 많이 줄어들었다 6.79%, 조금 줄어들었다 13.87%)였다. 하지만 변화가 없다는 응답은 79.34%에 달했다.
그렇다면 어린이집에서 직장내괴롭힘이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지난 1년간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보육교사 745명 중 67.10%는 원장의 권력이 견제되지 않고 문제제기를 한 자에게 불이익이 쉽게 돌아가는 ‘비민주적 운영’ 구조를 원인으로 꼽았다.
다음 결과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적극적 대응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대응을 해도 상황이 개선될 것 같지 않아서’라는 응답이 65.70%(483명)로 가장 많았다. ‘대응 이후 괴롭힘이 더 심해지거나 불이익한 처우가 우려되어서’라는 응답도 64.80%(476명)로 조사됐다(중복응답).
지난 1년간 직장내괴롭힘을 경험한 보육교사 745명 중 10.34%(77명)는 직접 괴롭힘을 신고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중 83.12%(64명)는 ‘신고 후 조사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신고 후 불이익을 받았다’는 응답자는 76.62%(2차 괴롭힘 41.56%, 해고 10.39%, 사직서 제출 강요 9.09% 등)나 됐다.
◇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 돌봄의 질에 악영향 준다’ 95%
직장내괴롭힘은 보육교사의 노동조건에 큰 영향을 주는 것과 동시에, 보육의 질에도 직결된다. 보육교사 1060명 중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영유아 돌봄의 질에 악영향을 준다’고 응답한 교사는 95.00%(1007명)에 이르렀다. 그중에서도 ‘매우 그렇다’는 응답은 78.85%(804명)였다.
이들에게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업무상 관계를 물어본 결과, ‘원장과의 관계’라는 응답이 72.92%(773명)로 가장 많았다. 보육업무와 직결되는 ‘아이들과의 관계(원아 돌봄)’로 인한 스트레스(11.60%)보다, 오히려 원장과의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여섯 배 이상 높게 집계됐다.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직장갑질119의 조은혜 노무사는 “직장내괴롭힘 예방교육을 법정의무교육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목한 결과는, 직장내괴롭힘 관련 교육을 들어본 교사들이 직장내괴롭힘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느끼는 정도가 교육을 안 들어본 교사들보다 20.6%나 높았다는 것.
조 노무사는 지난 20일 보육지부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어린이집과 같이) 작은 사업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직장내괴롭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우선 ‘직장내괴롭힘으로부터 내가 벗어날 수 있다’라는 인식을 갖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직장내괴롭힘 예방교육의 법정의무교육화를 주장하며, “교육 내용에 각 업종별로 나타나는 괴롭힘의 특성, 어린이집의 경우 가해자가 원장인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반영하도록 규정한다면 실제 괴롭힘 발생 시 피해노동자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보육지부는 “괴롭힘을 경험한 보육교사 10명 중 8명이 가해자로 원장을, 10명 중 7명이 그 발생 원인으로 비민주적 운영 구조를 꼽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국가가 원장의 괴롭힘 행위만 아니라 전반적 문제들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여기에 현장 교사들이 안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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