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코로나19 상황은 점점 암울해지고 있다. 검사도 활발히 안 하는데 확진자 수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사망자 수도 점점 늘어난다. 여름인 데다가, 방학 중인 지금. 재개장한 워터파크와 해변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들은 당연한 듯 마스크도 안 쓴다. ‘사회적 거리 두기’도 이뤄지지 않는다. 코로나에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이 사람들 속에서 몸 사리는 우리 가족은 유난스러운 ‘별종’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코로나 피해 넉 달째 칩거… 이대론 안 되겠다, 떠나자!
집에서만 지낸 시간이 벌써 넉 달 하고도 열흘이 지났다. 이달 초부터는 많은 시설과 상점이 다시 문을 열었지만 우리 가족은 변함없이 철저히 ‘고립’을 지키고 있다. 외부 시설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직접 사람을 만난 일은 얼마 전에 출산한 한국인 가족을 만나 출산 선물을 게릴라처럼 전해준 것이 전부다.
식자재는 인터넷으로 주문해 드라이브 스루로 픽업한다. 생필품도 모두 배달시킨다. 어쩔 수 없이 우체국에 두 번 간 적 있었는데 큰 위험을 감수한 일이었다. 가끔 사람 없는 시간대에 집 주변 공원이나 호숫가를 산책하곤 했는데, 요즘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한창 뛰어놀 나이의 두 아이에겐 지겨운 일과가 반복됐다. 아빠와 엄마가 일하거나 공부할 땐 TV나 태블릿 PC를 보는 시간도 점점 길어졌다. 아이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맡게 해주고, 추억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늘 떠나지 않았다.
남편과 이런 고민을 나누다 ‘캠핑’이 떠올랐다. 미국은 워낙 땅이 넓고 녹지도 많은 편이라 캠핑 접근성이 높다. 캠핑 장소를 저렴하게 대여해주는 웹사이트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한국의 반값 정도에 캠프 사이트를 대여할 수 있다.
간단한 먹거리와 텐트를 챙겨 집을 나섰다. 우리가 빌린 캠프 사이트는 펜실베이니아 중부의 어떤 숲 안에 있는데, 반경 500~600m 안에는 아무도 없다. 오롯이 우리 가족만 있다. 땅 넓고 인구밀도가 낮은 미국 시골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무로 둘러싸인 곳에서 고즈넉하게 앉아 풀 향기를 맡자니 기분이 절로 상쾌해졌다.
남편은 땀 흘리며 텐트를 치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먹거리를 정리했다. 모닥불을 피우려고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들도 모았다. 텐트가 세워지자마자 아이들은 그 안에 들어가 까르르 웃고 장난치기 시작했다. 마스크 없이 야외에 나와 본 것이 얼마 만인지, 이렇게 큰 소리로 밖에서 웃어본 적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두 시간 반이나 운전해 온 보람이 있다.
나뭇가지가 약간 젖은 탓에 불이 붙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모닥불이 붙자마자 아이들은 더 신났다. 큰아이는 동생 태어나기 전에 캠프파이어를 본 적 있지만, 우리 둘째는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눈을 못 뗀다. 엄마는 혹시라도 안전사고가 날까 봐 아이들에게서 눈을 못 뗀다. 모닥불 주변에선 뛰지 말라고 주의를 시키고, 불 앞에 너무 가까이 가지 않도록 신경 쓴다.
◇ 코로나로 우울하고 답답한 일상에 캠핑이 있어 다행이다
미국 캠프파이어에서는 스모어(S`more)를 빼놓을 수 없다. 모닥불에 구운 마시멜로와(Marshmallow) 초콜릿 바, 그리고 그레이엄 크래커(graham cracker)을 샌드위치처럼 포개어 먹는 간식이다. 칼로리는 좀 높지만, 달고 맛있어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 수밖에 없는 대표 캠핑 간식이다. 태어나 처음 마시멜로를 맛본 둘째의 눈이 반짝인다. 거기에 초콜릿까지! 아이가 캠핑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이렇게 또 하나 늘었다.
어디에 있건, 누구와 있건 혼자 모기에 물리기 일쑤인 나는 이번에도 또 산모기에 물리고야 말았다. 아이들에겐 벌레 방지 천연 스프레이를 뿌려주었는데, 이 스프레이 덕인지 아니면, ‘천연 모기 유인제’인 엄마 덕인지 아이들은 다행히 벌레에 물리지 않았다.
산속 곤충을 관찰하고, 들꽃을 구경하고, 나뭇가지와 돌로 땅에 그림 그리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모처럼 마스크 없이 신선한 공기를 잔뜩 들이마셔 본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지만, 텐트 안에서 옹기종기 서로의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잠들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코로나 때문에 피난 오듯 떠난 짧은 여행. 엄마 아빠는 좀 피곤해도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남길 바라며 마음만은 홀가분했던 하루를 마감했다. 암울한 코로나 상황에서도 이런 작은 탈출구가 있어 참, 다행이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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