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아이 마음 연 제주의 자연… “숲에서 평범해져요”
자폐 아이 마음 연 제주의 자연… “숲에서 평범해져요”
  • 김재희 기자
  • 승인 2020.07.29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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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러 제주 왔수다⑤] 발달장애아동 박건하 군 동행취재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바람도 돌도 많은 섬, 제주도. 제주 땅의 척박함만큼, 한국에서 발달장애 아동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또한 척박하다. 자녀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고자 옥답을 가꾸듯 투쟁하는 부모들이 제주에 있다. 발달장애·발달지연아동 부모모임 ‘제주아이 특별한아이’를 만나 조금 느릴 뿐인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우리 사회는 어느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지 모색했다. - 기자 말

박건하 군은 남들보다 조금 느린 발달장애 아동이라지만, 엄마 박정경 씨에겐 항상 빠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박건하 군은 남들보다 조금 느린 발달장애 아동이라지만, 엄마 박정경 씨에겐 항상 빠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건하야!”

기자와 대화를 나누던 박정경 제주아이 특별한아이 대표(45)가 갑자기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 박건하 군(9)을 다급하게 불렀다. 건하가 학교를 향해 뛰기 시작한 것. 아이는 교문 안으로 빨려들어가듯 뛰었다. 교실까지 멈추지 않고 내달렸다. 작은 추격전이 시작됐다. 너무 갑작스럽게 펼쳐진 상황에 취재진은 두 사람을 뒤따르지도 못하고 그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건하가 차가 올 때는 기다렸다 건너야 하는 걸 아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늘 불안해요.” 

10분 뒤 박 씨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돌아왔다. 건하에게 가방을 전해주고 교실에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왔다고 했다. 학교 앞 이면도로는 등교하는 아이들로 꽤 복잡했지만, 다행히 건하가 달려갔던 때는 도로에 차가 없었다.

“그래도 주변을 안 보고 뛰는 것 같진 않네요.”

박 대표는 “구두를 잘 신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8일 박 대표의 집을 찾았을 때 취재진을 처음 맞은 것은 거대한 신발장이었다. 다섯 식구의 신발이 빼곡한 신발장엔 박 대표 말대로 구두를 찾기가 어려웠다. “건하와 움직일 때면 거의 뛰어다니기 때문에 구두를 못 신는다”고 설명했다. 구두를 신어야 하는 용무가 생기면 그 자리에서만 신고 일이 끝나면 바로 갈아 신는다.

숫자와 컴퓨터를 좋아하는 아홉 살 박건하.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숫자와 컴퓨터를 좋아하는 아홉 살 박건하.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조금 느리다지만’ 엄마에겐 너무 빠른 아이 

그날 아침도 삼형제는 거실에서 아침을 맞고 있었다. 건하는 삼형제 중 둘째다. 큰형 성하는 갓 반항기에 들어선 초등학교 5학년. 정하는 건하의 쌍둥이 동생이다. 낯선 어른들에게 먼저 살갑게 말을 건 것도 정하였다. 박 대표는 “건하를 주로 돌봐야 하니까 정하가 엄마 사랑을 고파한다”며 미안함을 드러냈다. 그는 “성하도 요즘 들어 건하를 이해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건하는 식탁에 앉아 간밤에 못다 한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밖으로 나가 야채주스 세 개가 담긴 봉지를 들고 식탁으로 돌아왔다. 박 대표는 “월, 수, 금요일마다 야채주스가 배달되는데 이걸 꼭 건하가 챙긴다”며 “자폐가 있는 아이들은 패턴이 생기면 그대로 움직이고, 패턴이 어긋나면 무척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건하의 장애 정도를 “인지가 조금 낮고 자폐성향이 굉장히 강하다”고 설명했다. 국립특수교육원의 장애영유아 양육 가이드북 ‘양육 길라잡이’는 자폐성장애를 “사회적 상호작용과 언어 사용과 의사소통에 제한이 있고,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관심과 활동을 보인다”고 정의했다. 

건하가 집에 그려놓은 대형 엘레베이터.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건하가 집에 그려놓은 대형 엘레베이터.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건하는 단어를 나열하는 형태로 문장을 만들어 주변과 대화했다. 주변을 잘 의식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오늘 며칠이야?’, ‘지금 몇 시지?’, ‘건하는 몇 학년이야?’와 같은 수개념을 이용한 질문에 곧잘 답했다.

이런 건하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숫자나 한글 같은 문자. 특히 계기판은 건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벽엔 선풍기, 자동차, 공기청정기 등 각종 계기판 그림이 가득했다. 건하 작품이었다. 박 대표는 “기억력이 좋아 이미지를 받아들이면 그대로 그린다”고 말했다. 

컴퓨터 문서작업은 아이 성향과 잘 맞았다. 박 대표는 “한글로 처음에 책을 읽어주면 똑같이 문서로 만들고 인쇄를 했다”며 “너무 신기해서 컴퓨터와 프린터를 집에 설치해줬다”고 말했다.

1학년 1학기에 제주도 특수학급 정보화대회에서 상을 받은 건하는 같은 해 9월 서울에서 열린 전국 장애학생 e페스티벌에 제주 대표로 출전했다. 서울대회 때 로보트를 구동하고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체험을 해봤던 기억이 좋았는지 “또 서울 갈 거”라며 문서작성 연습에 열심이었다. 그러면서도 “영어는 치기 싫다”고 말해 엄마를 '웃프게'(웃기지만 슬프게) 만들었다.

건하네 가정도 처음부터 웃음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박 대표가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된 건 두 돌쯤 됐을 때였다. 아무리 불러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큰 병원에서 진단을 받으면 끝이란 생각이 들었다”는 박 대표는 차마 병원은 가지 못하고 발달지원센터에서 아이 상태를 물었다고 했다. 

컴퓨터 앞에 앉은 건하는 표와 서식이 포함된 한글문서를 어려움 없이 만들어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컴퓨터 앞에 앉은 건하는 표와 서식이 포함된 한글문서를 어려움 없이 만들어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이 장애를 받아들이기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박 대표 역시 ‘건하가 언젠간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제주에 와서야 건하는 장애판정을 받았다. 

박 대표 가족이 처음 제주로 온 것은 건하가 다섯 살 때인 2016년. 박 대표는 육아에, 남편은 업무에 지쳐있을 때였다. 우연히 평일 저녁 9시에 퇴근한 아빠에게 “우리 집에 왜 왔냐”고 묻는 큰아이의 질문에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는 박 대표. 당시를 회상하며 크게 웃었다. 

“그래도 큰 애는 아빠인 줄 아는 게 다행이었죠. 건하는 아빤지도 몰랐어요. 자폐가 있는 아이는 사람에 특히 신경 안 쓰니까요. 엄마는 매일 같이 있으니까 누군지 아는데, 아빠는 그냥 가끔 ‘집에 오는 사람’쯤으로 알았겠죠. 건하는 아빠라는 존재를 제주도에서 알았어요.”

“전세금 빼서 진짜 놀기만 했던” 1년짜리 제주 생활은, 아이들 덕에 지금까지 이어졌다. 특히 건하가 눈에 띄게 좋아지는 걸 보면서다. 다섯 살 때 입을 닫았던 건하는 제주에 와서 숲어린이집에 다녔다. 다른 아이들 사이에 섞여 ‘평범하게’ 뛰어노는 생활을 반복했다. 일곱 살을 며칠 앞둔 2017년 말, 건하의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자연이 주는 치유가 있어요. 건하가 육지 살 땐 ‘땅’이나 ‘하늘’이란 단어를 몰랐어요. 제주에 와서 자연을 보니까 바로 배우더라고요. 아이 표정도 많이 바뀌었죠. 서울에선 건물 속에 갇혀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여기선 숲 많고 여유도 있으니까요.”

◇ 코로나19는 학교도 닫고 아이 마음도 닫았다

학교는 발달장애아동에게 도전이다. 박 대표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보호자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긴 시간 집중해야 하는 수업도 듣기 어렵다. 흥미가 떨어질 경우 돌발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합반에서 수업이 진행되더라도 특수반 도움교사가 배석해 아이 집중을 돕는다. 

이마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어렵게 됐다. 아이들이 긴 시간 학교에 가지 못하면서 발달장애 아동들이 지난 1년간 만들어온 습관이 무너진 것. 지금은 지난해처럼 특수반 교사가 함께하며 통합반 수업에 아동들이 적응하도록 돕고 있다.

활동지원사 서경임 씨와 민오름에 나들이 간 건하. 이날 기분이 무척 좋아보였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활동지원사 서경임 씨와 민오름에 나들이 간 건하. 이날 기분이 무척 좋아보였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건하는 학교를 마치면 장애인 활동지원사와 함께 치료를 받으러 간다. 장애인활동지원은 ‘활동지원급여를 제공해 장애인의 자립 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으로, 만 6세 이상부터 만 65세 미만의 등록 장애인을 대상으로 활동지원 등급심사를 거쳐 수급자격을 부여한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은 이른 시간 학교를 마치고 치료실로 이동하는 일이 잦다. 이때 활동지원사의 이동지원은 양육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박 대표도 “장애인 활동지원사업 덕에 마음의 짐을 많이 덜 수 있었다”고 했다.

활동지원사 서경임 씨와 건하는 사이가 좋다. 그런 건하는 엄마를 보자 울상을 지었다. 서 씨 뒤에서 “‘6○○○(박 대표 차 번호)’ 타기 싫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건하가 활동지원사 선생님을 좋아한다”며 “엄마가 학교에 나타나면 집에 돌아가야 하니까 싫은 티를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씨는 건하의 활동량을 높여주려고 짬이 나는 대로 오름으로, 숲으로 간다. 이날은 언어치료를 받으러 가기 전 남은 시간을 민오름에서 보내기로 했다.

“보리밭, 노란색, 2021년에 다시!” 

민오름에 도착한 건하는 서 씨의 손을 잡고 오솔길을 걸었다. 지난번 보리밭을 봤다는 건하는 위치를 기억하고 ‘내년이 돼야 보리밭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말을 했다. 학교에서 배운 동요도 서 씨와 함께 불렀다. 오가는 등산객들에게 인사도 건넸다. 박 대표는 “건하는 민오름에서 열매를 따 먹는 걸 좋아한다”며 “먹을 게 많아서 숲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웃었다. 

건하는 흘끔 뒤를 돌아보곤 엄마 들으라는 듯 “6○○○ 안 탈 거야!”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는 뜻이다. 박 대표는 ‘어휴~’ 하며 웃음 섞인 한숨을 쉬었다.

엄마(왼쪽) 손을 잡으면 집에 돌아가게 될까봐 활동지원사 서경임 씨(오른쪽) 옆에서 바짝 긴장한 건하.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엄마(왼쪽) 손을 잡으면 집에 돌아가게 될까봐 활동지원사 서경임 씨(오른쪽) 옆에서 바짝 긴장한 건하.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엄마가 꿈꾸는 평범한 미래… “좋아하는 일 찾아주고 싶어”

건하는 두 종류의 언어치료와 음악치료, 사회체험학습 등을 받는다. 그중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사회체험학습은 인기가 높다. 버스를 타거나 공공기관을 이용해보며 장애아동들에게 사회성을 높이고 자립 생활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건하는 프로그램에 지원했으나 떨어졌다. 올해는 ‘운 좋게’ 붙었다. 이마저도 코로나19 감염 위험 탓에 운영이 잘 안 돼 아쉬움이 크다. 

박 대표는 초등학생인 발달장애아동이 강제연행 당한 일을 언급했다. 지난달 10일 발달장애가 있는 A 군은 지하철을 이용하던 중, 성추행을 당할 뻔했다는 시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역무원에게 붙잡혔다. 역무원과 승객 등 성인 다섯 명은 A 군을 역무실로 끌고 갔고, 30분 동안 붙잡혀 있어야 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이 사건을 “발달장애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발달장애인에게 가장 높은 턱은 문턱이 아니라 ‘지역사회’ 그 자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발달장애인 생활실태 분석 및 통계구축방안 연구’는 발달장애인 590명을 대상으로 한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서 “발달장애인의 58.7%는 외부활동 시 불편함을 느꼈다”고 답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조사에서 이들은 외부활동에 불편함을 느낀 이유로 ‘외출 시 동반자가 없어서’(46.2%),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어서’(31.8%), ‘주위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15.9%)를 꼽았다.

연구는 이 답변을 근거로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활동을 촉진시키기 위한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박 대표 또한 “발달장애아동들이 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경험 기회를 늘리는 한편, 지역사회의 이해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건하는 한참을 디지털 탁상 시계 앞에서 숫자를 들여다봤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건하는 한참을 디지털 탁상 시계 앞에서 숫자를 들여다봤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박 대표에게 ‘아이 미래를 생각해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직장을 다니고 취미가 있는 생활”이라는 사뭇 평범한 대답을 했다. 박 대표는 “건하가 클 때쯤엔 마땅한 직업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다”며 “지역사회에서 이웃과 어떤 관계를 맺고, 건하에겐 어떤 기능을 계발해줘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하가 할 수 있을 만한 일, 좋아하는 일을 찾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을 덧붙인 박 대표는 컴퓨터와 문자를 좋아하는 건하가 적성을 살렸으면 했다. 코딩이나 프로그래밍도 가르쳐볼 예정이다. 

“최근 들어 장애 예술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어요. 발달장애인들의 시선이 예술인들에겐 색다르게 다가오나 봐요. 그런데 건하는 그림엔 소질이 없는 것 같아요.(웃음) 건하는 문서 작성 능력을 살려서, 그림에 소질 있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 미래가 걱정스럽진 않아요. 아직 어리고, 충분히 준비하면 ‘뭔가 마련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거든요.”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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