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은 내게 가장 ‘핫한’ 달이다. 4일, 11일, 23일이 특히 그렇다. 나를 제외한 온 가족의 생일이 모두 8월 달력에 있기 때문이다. 삼복더위에 세 번의 미역국 노동이 나를 기다리는 8월. 생각만 해도 땀이 흐른다.
‘미역국 노동’이라 말하긴 했지만, 미역국 끓이는 일이 그렇게 싫진 않다. 아마도 그건 내가 미역국을 좋아하기 때문이리라. 어떤 사람은 아이 낳고 미역국은 쳐다도 보기 싫어졌다는데, 나는 두 아이 낳고 미역국을 그렇게 먹었는데도 하나도 질리지 않았다.
가족의 생일 하루 전날 미역국을 준비한다. 오래 끓일수록 맛있는 게 미역국이니까. 때깔 좋은 소고기를 듬뿍 넣어 참기름, 간 마늘 넣고 달달 볶다가 불린 미역을 한 움큼 넣어 사골 고듯 푹 끓이면 끝.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한 번 더 끓인 후에 간을 맞추면 미역국 완성이다. 어쩐지 생일날엔 식탁에 밥과 미역국만 놓고 먹어도 좋다. 가족들 얼굴 한 번 더 보게 되는 그런 날. 그런데 이번 23일 둘째 아이 생일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뭔 국거리 소고기가 2만 4000원이나 해?”
22일, 저녁 운동 나가는 남편에게 돌아올 때 미역국 끓일 소고기를 사 오라고 했더니, 평소 1만 3000원 정도면 샀던 고기와 가격대가 달랐다.
“좀 좋은 거로 샀어. 그거 양지 아니고 등심이야.”
“등심으로도 국을 끓여?”
“응, 그게 더 맛있을걸?”
그래서 끓이게 된 등심 미역국이다. 이날은 남편이 주방에 서서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옆에서 나는 냉동실에 있는 간 마늘을 꺼내 넣고, 참기름만 휘휘 뿌리는 수준으로 도왔다. 그런데 이런. 참기름에 볶아지는 고기 냄새가 장난이 아닌 거다. 모양은 깍두기 같아도 등심은 등심이니까! 냄새를 맡고 온 둘째 아이가 고기 좀 달라고 조른다.
프라이팬을 꺼내 버터를 두르고 깍두기처럼 잘린 등심을 구워주는 남편. 그게 뭐라고 아이는 신나 죽는다. 너무 맛있다고 환호성을 친다. ‘새끼 참새가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이 딱 저렇겠지 싶은 장면이었다. 나라면 귀찮아서 “내일 미역국에 든 고기나 먹어” 그랬을 텐데. 의문의 1패다.
국이 막 끓고 있는데, 남편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한참을 그냥 두기에 “그만 불 꺼야 하는 거 아냐?”라고 물었더니, 괜찮단다. “졸아들 거 같은데”라고 우려했더니, “졸아들면 물 넣으면 되지, 괜찮아”라고 한다. 그래 뭐 오래 푹 끓인 미역국은 맛있으니까.
남편도 하는 말이지만, 사실 미역국처럼 끓이기 쉬운 국이 없다. 그냥 오래 끓이면 되니까. 그리고 요즘 전기레인지는 한 시간 끓이면 자동으로 꺼지니까 깜빡 잊고 태울 일 없어 편하긴 하더라.
그렇게 하루가 가고 23일, 드디어 ‘그분(우리 둘째)이’ 기다리던 생일 아침. 출근 일찍 하는 나를 대신해 남편이 차린 아침 밥상. 밥과 국이 정갈하게 놓인 식탁 앞에서 나는 10년 전 그날을 떠올렸다.
아이가 거꾸로 있어서 제왕절개 하러 수술실에 들어가던 기억, 아이를 낳고 혈압이 안 떨어져서 걱정이 많았던 날들, 계속 혈압이 안 떨어져서 결국 모유 수유를 중단해야 했던 일, 그 좋다는 초유를 일주일 밖에 못 먹였다고, 분유를 탈 때마다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을 삭여야 했던 기억. 그때의 내가 미역국 한 그릇에 다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가족들을 하나하나 눈에 넣어 본다.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 고맙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살아온 우리에게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드는 순간이었다. 아침부터 미역국 노동을 하느라 바빴다면 좀처럼 생기지 않았을 여유였다. 아이 생일에 아빠가 미역국을 끓이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밥 한 그릇 뚝딱 잘 먹고, 든든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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