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오늘은 뭐하고 놀아요?”라고 묻는 이유
아이들이 “오늘은 뭐하고 놀아요?”라고 묻는 이유
  • 기고=조영옥
  • 승인 2020.08.2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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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놀아요?⑩] 조영옥 놀이활동가

놀이를 빼앗긴 대한민국 아이들. 놀이라는 ‘권리’를 되찾아주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서울시 아동 놀이권 조례 제정을 위한 시민연대’의 연속 특별기고로 놀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 편집자 말

넓디넓은 학교에 아이들이 충분히 놀이할 수 있는 공간은 보장돼 있지 않다 ⓒ베이비뉴스
넓디넓은 학교에 아이들이 충분히 놀이할 수 있는 공간은 보장돼 있지 않다 ⓒ베이비뉴스

햇수로 5년째 갔던 학교 운동장에 축구하기 적당한 인조잔디가 아주 깔끔하고 넓게 깔려 있다. 가끔 축구공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 몇몇 있곤 했다. 놀이수업을 하기 위해 학교에 머문 시간대는 주로 오후 1시에서 4시 사이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수업이 중지돼야 했던 7월 어느 날에도 아이들과 운동장에 나갔다. 엄청나게 뜨거웠고 그 열기로 인해 인조잔디와 우레탄 특유의 냄새는 코끝을 자극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아무리 넓은 운동장이라지만 그곳에서는 놀 수가 없었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손바닥만 한 그늘과 놀이기구가 있는데, 날이 뜨거울 땐 주로 그곳에서 놀았다. 제법 놀이에 도움이 되는 장애물(놀이기구)과 약간의 나무울타리, 쉴 수 있는 의자가 있어, 넓지 않지만 놀이하기에 적당했다.

술래잡기를 할 때 장애물이 있으면 다치기 쉽다지만 적당한 장애물은 피해 다니는 재미가 있고, 달리기가 빠르지 않아도 술래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줘서 아이들이 더욱 좋아한다.

그래서 미끄럼틀, 철봉, 사다리 등의 놀이기구를 장애물 삼아 진치기 등의 술래잡기를 많이 했다. 놀이기구 사이사이를 샤샤삭 피해 다니는 아이들이 행여나 다칠세라 눈에 불을 켜고 보다 보면 순간 회전력에 경이로울 때가 있다.

밋밋한 놀이기구지만 그 안에서 지탈(지옥탈출), 경찰과 도둑, 물귀신놀이, 좀비놀이 등이 만들어졌고 출처가 불분명한 상태로 아이들에게 퍼져나갔다. 주어진 놀이기구 안에서 만들어지는 놀이인 것이다. 

다시 마지막 날 놀이로 돌아가면, 많이 뜨겁기도 하고 야외지만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되도록 움직임이 적은 신발숨기기 놀이를 했다. 술래 두 명이 눈을 가린 채 숫자를 100까지 세면, 그동안 나머지 아이들은 신발 한 짝을 숨긴다. 술래는 수를 다 헤아린 후 숨겨진 신발을 찾는다.

◇ 이 넓은 학교에도 아이들이 놀 공간은 ‘제한적’

이 간단한 놀이를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놀이 공간 주변에 있는 각종 장애물에 숨기고 찾는다. 숨길 곳이 너무나도 뻔할 것 같지만 기발한 곳이 늘 생겨난다. 나무울타리에 던져 넣기도 하고 높은 나무 위에 신발을 살짝 올리기도 하고, 뻔히 보일 듯하지만 숨은 그림 그리듯이 엉뚱하게 그냥 놓기도 한다.

이렇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늘 생각했다. ‘아이들이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할 학교라는 커다란 공간에 마음껏 탐색하고 놀이할 수 있는 공간이 참 제한적이구나.’ ‘작은 공간에서도 재밌게 놀 수 있는데 이보다 더 많은 다양한 공간이 주어지면 얼마나 더 놀이를 잘 할 수 있을까.’

그 넓은 인조잔디 운동장 반만이라도 나무를 심어 작은 숲처럼 가꾸면 그늘에서 시원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놀이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 건물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거나 구름다리가 있는 아래는 그늘져 시원하지만, 그런 곳은 주로 교직원 주차공간으로 쓰여 아이들은 접근도 할 수 없다. 안전상의 이유로 말이다.

체육관도 수업시간 외에는 아이들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공간이다.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간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교사나 활동가가 그 장소를 지켜주면 될 것이다. 안전을 보장해주면 되는 것이다.

넓디넓은 학교에 아이들이 충분히 놀이할 수 있는 공간이 언제나 보장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슬프다. 아이들은 쾌적한 장소에서 놀이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알려준 놀이는 이 시간 말고, 다른 친구들과 같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꼭 해보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밖에 못 나가요”, “시간이 없어요”라고 답하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적당히 뛰어노는 몸놀이가 많아야 할 초등 저학년은 담임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교실 밖이나 학교건물 밖으로 나갈 수가 없고, 절대적으로 같이 놀이할 시간이 없다.

◇ 아이들에게 부족한 놀이 경험… 가장 큰 변수는 ‘시간’

아이들끼리의 놀이 경험이 풍부해져야 하는데, 가장 큰 변수는 시간이다 ⓒ베이비뉴스
아이들끼리의 놀이 경험이 풍부해져야 하는데, 가장 큰 변수는 시간이다 ⓒ베이비뉴스

내가 되고 싶은 놀이활동가의 모습은 놀이에서 빠져 구경꾼 혹은 보호자 정도가 되는 것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끼리의 놀이 경험이 풍부해져야 하는데, 시간이 가장 큰 변수라 생각한다.

놀이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면 아이들은 하고 싶은 놀이를 이야기하기보다 “오늘은 뭐하고 놀아요?”라고 자주 물어본다. 편 나누기를 힘들어하고, 놀이 사이사이 틈을 지루해하면서 다른 아이들의 놀이를 구경하지 못해서 방해하거나 떠돌게 되고, 결국 나의 개입이 많아졌다.

한 학교에서 4년간 놀이로 만난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1~2학년 때 만나서 4~5학년 때까지 같이한 것이다. 꽤 긴 시간인 것 같지만 간단히 계산해보면 대략 최대 50주×1시간×4년=200시간밖에 안 된다. 매일 2시간씩만 놀았다면 100일 즉, 세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다.

4년에 걸친 시간과 100일이라는 함축된 시간을 똑같이 비유하기는 어렵지만, 지속적으로 놀이했던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을 이해하는 힘도 커지고, 술래가 되어 다른 사람을 치는 힘도 조절이 됐다.

어린 아이들(약자)에 대한 배려심도 커졌고, 같이 놀아야 재밌다는 것을 이해하고 일부러 꺾이는 모습도 자주 보여줬다. 그리고 보다 어린 아이들은 그 점을 고마워했다. 또 하고 싶은 놀이를 강하게 주장했다.

오히려 원하는 놀이를 못하게 하는 것은 나를 포함한 어른(학교 담당자)이었다. “그 놀이는 좀 위험해서 이제 못해”, “시간이 부족해”, “공간이 안 맞아”라고 말하는 내가 더 미안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나를 만난 그만큼은 놀이시간이 보장됐다는 점이다. 놀이는 배우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것이다. 자연환경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도 저도 부족한 상황에는 적어도 시간과 장소를 보장해줘야 하고, 그 사이에서 놀이촉진을 할 수 있는 활동가가 꼭 필요함을 학교에서 많이 느꼈다.

◇ 놀이를 통해 이어지는 마을과 마을사람들

딸이 초등 1학년이던 2012년 8월 29일 수요일 오후 6시 30분에 동네 까치공원에서 첫 수요놀이를 시작했다. 몇몇의 엄마들과 그 아이들, 그리고 친구들과 모여 놀았다. 매주 수요일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보장하고, 놀이터에서 어른이 같이 있어주며 공간을 보장했고, 처음엔 뭘 할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놀이를 안내했다.

그렇게 간단하게 시작했던 것이 2016년 말까지 4년 반이나 더 진행됐다. 거의 매주 빠짐없이.

더우면 더운 대로 밤중에 줄다리기를 했고, 시원할 땐 바닥에 그림을 그려 두부놀이나 8자놀이, 달팽이 놀이를 했고, 비가 오면 비를 피해가며 실뜨기나 만칼라를 했고, 아주 드물게 눈이라고 온 겨울날은 그 눈이 녹을세라 모여서 비닐이 찢어져라 팔이 떨어져라 눈놀이를 했다.

성별의 구분이 점점 없어지고, 어린아이들도 덩달아 즐거워했고, 구경하는 어르신들도 재밌어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놀이하는 친구들이 늘어났고, 서로 어울려 노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이들이 지금은 꼭 친구가 아닐지라도, 그때 같이 어울려 논 기억과 경험이 지금 마음속 어딘가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후 까치공원을 포함해 여러 곳에서는, 작년까지 복지관 사업으로 놀이가 이어졌다. 올해도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계속됐을 것이다. 그러면서 마을과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을 하고, 혹시나 있을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까지 챙기는 등 폭과 깊이가 넓고도 깊어졌다.

그렇게 놀이로 인해 마을이 좀 더 관계를 맺어갔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인권놀이터’팀이 놀이터를 기점으로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놀이터라는 공간이 새롭게 중요한 거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기를 쓰고 놀이하고 싶어 한다. 학교든 공원이든 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면 10분을 머물더라도 기억하고 꼭 들르고 다시 찾아온다. 이 아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자생적으로 놀이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쾌적한 공간을 보장해주고, 이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활동가가 필요하며,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관계할 수 있도록 지원이 꼭 필요함을 다시금 느낀다.

*시민참여 플랫폼 ‘민주주의 서울’에서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는 조례를 만들면 어떨까요?”라는 주제로 온라인 토론이 진행 중입니다. 9월 12일까지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시민토론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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