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표대로 배우는 놀이… 그건 ‘놀이’가 아니야
시간표대로 배우는 놀이… 그건 ‘놀이’가 아니야
  • 기고=정회진
  • 승인 2020.09.0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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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놀아요?⑮] 정회진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아동팀장

놀이를 빼앗긴 대한민국 아이들. 놀이라는 ‘권리’를 되찾아주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서울시 아동 놀이권 조례 제정을 위한 시민연대’의 연속 특별기고로 놀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 편집자 말

나무를 발견하고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올라간 아이들 ⓒ송파파란하늘방과후 제공
나무를 발견하고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올라간 아이들 ⓒ송파파란하늘방과후 제공

많은 놀이가 수업이나 프로그램으로 변질되고 있다. 인터넷에서 ‘놀이학교’ 경험담을 수집해봤더 대체로 이렇다. 30~40분 단위로 촘촘하게 수업이 구성돼 있고, 가베, 요가, 과학, 음악, 체육, 원어민 영어 등 다양한 수업을 교실을 순회하며 듣는다고 한다.

소수 정예 수업이고 1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단다. 가베, 과학, 체육, 영어라니, 아마도 놀이를 가장한 ‘학원’이 아닌가 싶다. SNS를 검색해보면 종이접기도 수업이 있다. 종이접기를 수준별로 수업한다는 광고도 봤다. 레고도 선생님에게 배운다. 놀이가 무엇인지 헷갈리는 요즘이다.

이렇게 프로그램이 돼버린 놀이, 전문가에게 지도(?)받는 놀이, 이게 ‘진짜 놀이’가 될 수 있을까?

놀이에는 있고 프로그램에는 없는 것들이 있다. 첫째, 이런 프로그램에는 아이의 선택권이 없다.

부모가 원하고 교사가 짜놓은 프로그램에 아이가 들어가는 것이다. 아이는 어떤 활동은 재미있기도 하고 어떤 활동은 재미가 없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재미있는 놀이라고 해서 더 할 수가 없다. 시간표대로 진행돼야 하니 말이다.

어릴 때 집 앞 골목에 나가 놀던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한 번 바깥 놀이에 빠지면 저녁 먹으러 오라고 부를 때까지 노는 게 놀이 아니던가? 아이의 선택권이 없는 프로그램, 이게 과연 놀이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볼 일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아이들에게 훨씬 많은 시간을 부여한다. 며칠 동안 보자기만 두르고 뛰어다녀도 잔소리를 듣지 않는다. 온종일 마당에서 흙만 파도 괜찮다. 흙마당만 있어도 아이들은 무궁무진 놀 수 있다. 흙을 파다가 개미도 만나고 공벌레도 만난다. 구멍을 파고 물을 부을 수도 있다.

비가 오는 날은 물웅덩이가 생긴다. 물웅덩이를 더 깊게 파기도 하고 물길을 내기도 한다. 나들이길에 만난 물웅덩이에서 장화를 신고 첨벙 뛰기도 한다.

지켜야 하는 시간은 점심시간뿐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놀이에 마음껏 빠져들 수 있다. 이렇게 놀 때 아이들은 몰입을 경험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에 푹 빠져본 아이는 어른이 돼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어른이 만들어놓은 프로그램 속에서 아이들은 이런 몰입의 경험을 할 수가 없다.

◇ 놀이에는 있고 ‘놀이프로그램’에는 없는 다섯 가지

둘째, 프로그램에는 아이들의 시간이 없다.

놀이학교의 프로그램도, 종이접기 수업도 30분, 40분 단위로 쪼개진다. 아이마다 관심이 다르고 적응의 속도가 다르고 취향도 다를 것이다. 그런데 모두 동일한 시간표에 몰아넣고, 가베 40분을 마치면 다음 교실로 이동해 체육 40분, 이렇게 하루를 보내면 아이들의 삶도 40분마다 분절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삶과 생활에도 리듬이 있고 주기가 있다. 시간표가 아니라 아이의 리듬을 따라 하루를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아이들의 리듬은 잠에서 깨어 밤사이 충전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놀고 또 기운이 빠지면 좀 먹고 쉬겠지. 이런 흐름을 몇 차례 거치면 저녁이 될 것이다.

공동육아는 그 흐름에 따라 하루를 보낸다. 아침 간식을 먹고 잠깐 놀다가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밖으로 나들이를 나가서 논다. 동네 야산에도 가고 공원에도 간다. 가다가 만나는 어른들에게 인사도 하고 말도 건다.

사계절을 온 몸으로 느낀다. 매일 달라지는 기온, 습도, 바람, 태양을 느끼고 조금 더 자란 꽃나무와도 인사한다. 산기슭 공터가 가장 좋은 놀이터이다. 나무를 기어오르기도 하고 곤충 한 마리를 만나 머리 맞대고 구경하기도 한다.

하루를 40분 단위로 쪼개 교실을 한 바퀴 돌고 집에 오는 아이보다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원하는 걸 따라 하루를 보내는 아이가 더 행복하지 않을까?

아이들 비 오는 날 나들이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아이들 비 오는 날 나들이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셋째, 프로그램에는 온전한 경험이 없다.

정해진 프로그램에는 많은 과정이 생략돼 있다. 놀이에는 사실 ‘본놀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놀이와 후놀이가 있다. 사방치기를 하려면 먼저 “사방치기 할 사람 여기 붙어라” 하고 같이 할 친구를 모집(?)해야 한다. 그리고 땅에 사방치기 판을 그려야 한다. 규칙도 합의를 해야 한다. 돌도 하나씩 구해와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본놀이’가 시작된다. 끝나면 승부도 가리고 평가도 한다. 오늘은 돌이 너무 동그래서 졌다, 오늘은 키 큰 아이들이 더 편한 칸 크기였다 등. 이런 것들은 평가이기도 하고 다음번의 전략이 되기도 한다.

진짜 놀이는 이런 건데, 정해진 프로그램 속에 들어가면 다른 친구들을 같이 놀자고 설득하는 과정도 없고 나름의 전략을 세워 돌을 고르는 과정도 없다. 앞뒤 과정은 모두 제공되고 오로지 서비스 받는 놀이이다. 

이게 아이들에게 진짜 놀이일지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삶의 과정이 다 있는 놀이가 더 풍부한 놀이가 아닐까? 이렇게 온전한 경험이 아이를 더 성장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 선택권도 몰입 경험도, 주도권까지 빼앗는 ‘이상한’ 놀이

넷째, 프로그램에는 친구가 없거나 또는 친구가 불필요하다.

진짜 놀이는 친구와 함께 하는 놀이다. 코로나 시기 친구를 만나기 어려운 비대면의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많은 아이들이 심심해할 것이다. 집에서 혼자 노는 것이 계속될 때 아이들은 더 쉽게 스마트폰에, 게임에 빠진다. 함께 하는 놀이의 재미를 아는 아이들은 스마트폰에 쉽게 중독되지 않는다.

다섯째, 아이를 위한 프로그램에 아이가 없다.

어른이 짠 프로그램, 아이는 놀이의 주체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대상이 된다. 선택권도 없고 몰입의 경험도 뺐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도권을 빼앗아버린다.

아이가 자유롭게 하는 놀이 속에서는 스스로 해야 하는 일들이 아주 많다. 어떤 놀이를 할지 생각해 선택하고 재밌게 놀기 위한 방법을 찾기도 하고 이기기 위한 전략을 짤 수도 있다. 친구를 찾아야 하고 친구들과 규칙도 협의해야 한다.

그러나 어른들이 짠 프로그램 시간표 속에서 아이들은 서비스 대상이 될 뿐이다. 아이는 놀이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코로나 때문에 기관에도 갈 수 없고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기 어렵다. 친구를 만날 수 없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럴 때 아이와 함께 진짜 놀이를 하나씩 찾아 즐겨보면 어떨까. 놀이운동가 편해문 선생님의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가장 훌륭한 배움터는 천장이 하늘이다.”

*시민참여 플랫폼 ‘민주주의 서울’에서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는 조례를 만들면 어떨까요?”라는 주제로 온라인 토론이 진행 중입니다. 9월 12일까지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시민토론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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