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탓 아니라는 거, 머리는 아는데 마음이 아프다
엄마 탓 아니라는 거, 머리는 아는데 마음이 아프다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0.09.15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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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애가 아프다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던 날

며칠 전 저녁을 준비하던 때였다. 별안간 ‘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우리 둘째, 딸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정신없이 소파 쪽으로 뛰어가니, 둘째가 바닥에서 팔을 잡고 엉엉 울고 있었고, 큰애는 둘째에게 괜찮냐고 걱정스럽게 물어보고 있었다. 둘째는 우느라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큰애는 둘째가 소파에서 장난치며 콩콩 뛰다가 소파 밑으로 떨어졌다고 대신 대답해줬다. 

◇ 애가 아프면 엄마는 왜 그게 다 자기 탓인 것만 같을까

아이들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다친다더니…. 소파가 높지도 않은데 떨어졌다고 이렇게까지 아파하나 의아하면서도 걱정이 됐다. 큰아이 말에 따르면 소파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다가 순간 휘청하더니 머리부터 부딪혀 떨어지고 몸이 구르면서 팔이 깔렸다고 했다.

다행히 바닥에 매트가 깔려 있었고, 아이는 머리가 아닌 오른팔 전체가 아프다고만 했다. 그나마 큰애가 옆에 있다가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었기에 답답함이 덜했다.

둘째는 이제 제법 대화가 통하는데, 놀란 데다가 아프기까지 해서 그런지 좀처럼 자기 상황을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우선 아이 팔이 움직이지 않도록 조심히 안아 달랬다. 놀란 마음이 좀 가라앉으면 좀 괜찮아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내내 등을 쓸어주었다. 순둥이 둘째가 그렇게 오래 운 적은 처음이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애가 아프거나 다치면 나도 모르게 내 탓을 하며 자아성찰에 들어가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깟 저녁 좀 천천히 먹이면 뭐 어떻다고 부엌에서 시간을 그렇게 시간을 끌었나’, ‘중간중간 거실을 좀 내다보면서 뛰는 아이에게 주의를 좀 줄걸…’ 후회해 봤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삼십 분쯤 지나자 남편이 퇴근해 집에 돌아왔다. 아이는 아빠한테 오른팔이 아프다고 말하고는 병원에 가자고 했다. 코로나 상황에서 병원에 가는 것이 참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계속해서 오른쪽 손목을 왼손으로 움켜쥐고 있고 오른팔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더구나 아이 오른팔은 작년에 이미 한번 탈구가 됐던 쪽이라 더 신경 쓰였다. 

저녁을 간단히 먹이고 주변의 얼전트 케어(Urgent Care) 중 문이 열린 곳을 찾았다. 혹시 모르니 엑스레이 촬영이 가능한 곳 중심으로 검색했다. 미국에선 예약 없이 병원에 갈 수 없다. 내가 오늘 아프다고 당장 병원에 갈 수 없다.

하지만 급한 경우 응급실 말고도 예약 없이 바로 찾아가서 (오래 기다릴지라도)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클리닉이 존재하는데, 그걸 바로 ‘얼전트 케어’라고 부른다. 얼전트 케어에서는 간단한 부상이나 감기를 진료하고 치료한다.

천만다행으로 아직 문 연 얼전트 케어가 집 근처에 있었다. 여기는 비상시 엑스레이도 찍을 수 있고, 코로나 검사는 제공하지 않는 곳이었다. 온 가족이 차를 타고 집을 나섰다. 

◇ 그래도, 아팠던 아이가 나으면 그게 또 그렇게 뿌듯하다 

얼전트 케어(Urgent Care)에서 아이의 팔에 간단히 감아준 붕대. 특별한 치료 효과는 없지만, 아이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는 용도라며 의료진이 추천했다. ​​​​​​정말로 붕대를 감은 후 얼마간은 덜 아프다고 말하던 아이. ⓒ이은
얼전트 케어(Urgent Care)에서 아이의 팔에 간단히 감아준 붕대. 특별한 치료 효과는 없지만, 아이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는 용도라며 의료진이 추천했다. ​​​​​​정말로 붕대를 감은 후 얼마간은 덜 아프다고 말하던 아이. ⓒ이은

평일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다행히 병원 대기실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며, 큰애와 남편에게 차 안에 있으라고 했다. 잠시 대기하다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었는데, 천만다행으로 엑스레이 결과는 정상이었다.

의사는 만 세 살이 안 된 아이들이 이만한 충격에 뼈를 다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나이의 아기들은 팔이 작아서 손목만 아파도 팔 전체가 아픈 것처럼 느끼고 표현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뼈를 다치거나 어디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니 안심이 되면서 굳었던 몸이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었다. 지금 둘째보다 더 컸을 때긴 해도, 큰애가 팔에 반깁스를 한 적이 있어서 더 긴장했던 것 같다. 이런 시국에 둘째가 한동안 병원에 드나드는 일이 생길까 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생각이 이렇게까지 미치자, 지금 이런 혼란한 상황에 지속적인 치료와 진단이 필요한 병을 앓는 아이들과 그 가족들은 얼마나 고생스러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많은 의료인류학자가 주장하듯, 아이가 아프면 대부분 어머니 중심으로 아이를 관리하고 돌보고, 또 책임지게 돼 있다.

하지만 아이가 아픈 것은 엄마 잘못이 아니고, 아픈 아이를 돌보는 일도 전적으로 엄마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되뇌어본다. 이게 당연한 일이건만, 뭔가에 세뇌라도 된 것인지 늘 내 탓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매일 밤 끙끙거리며 오른팔을 잡고 자던 딸은 사흘이 지나서야 겨우 오른팔을 조금씩 움직이더니 나흘이 지나자 스스로 숟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의식하게 하면 오른팔을 더 안 쓸까 봐 모른 척 아이 오른편에 반찬을 놓아준다.

아프던 아이가 나으면 그것만큼 엄마에게 힘이 되는 일도 없다. 물론 곧 받아볼 미국의 충격적인 의료비 납부 안내서가 조금 걱정스럽긴 하지만. ‘늘 건강히, 그리고 튼튼하게!’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내는 지금, 모두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순간마다 성장하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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