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예방접종 하러 갔는데… "뉴스 못 보셨어요?"
독감 예방접종 하러 갔는데… "뉴스 못 보셨어요?"
  • 칼럼니스트 여상미
  • 승인 2020.09.2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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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로 보는 육아맘] #예방접종 #백신 #독감 #무료접종 #BCG #코로나19 #질병관리청

어제(22일)는 무료 독감 예방 접종 시작일이었다. 우리 동네는 아이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혹시라도 병원에 사람이 몰려 붐비기라도 할까 걱정되어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서둘렀다.

‘주사’라는 말만 들어도 잔뜩 겁먹는 아이 때문에 이런저런 말로 설득하랴, 준비하랴, 가는 김에 나도 같이 접종(유료)하자 마음먹은 터라 괜히 더 바빴다. 그런데 이런 분주함이 무색하게도, 우리는 병원 입구에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독감 예방 접종하러 왔는데, 간호사가 "뉴스 못 보셨어요?"라고 묻는다. 백신 유통 과정에서 사고가 있었다고. ⓒ베이비뉴스
독감 예방 접종하러 왔는데, 간호사가 "뉴스 못 보셨어요?"라고 묻는다. 백신 유통 과정에서 사고가 있었다고. ⓒ베이비뉴스

입구에서 열 체크를 하고 간호사가 방문 목적을 물었다. 아이 독감 예방 접종을 하러 왔다고 하니, 오늘은 맞을 수 없다고 돌아가라는 것 아닌가. 이유를 물으니 백신 유통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그다지 확신 없는 말투로 대답하며 도리어 내게 “뉴스 못 보셨어요?”라고 물었다.

하필 오늘 아침 뉴스를 못 본 내 탓이지만, 분명한 이유도 못 듣고 ‘뉴스 못 봤냐’는 말만 반복해 듣다 보니, 예방 접종을 못 한 원인이 내가 뉴스를 확인하지 못해서인 것만 같아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그 뉴스는 결국 인터넷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가 됐다는 백신은, 이 백신을 조달하기로 계약한 업체가 유통 과정에서 냉장 보관해야 할 백신을 상온에 노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백신은 무료 접종 대상자 중 13~18세를 대상으로 한 물량이라곤 하지만, 질병청이 철저한 품질을 검증한 후 배포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병원에선 전체 대상자에 대한 접종을 모두 중단한 상태다.

올해는 코로나19와 독감이 겹쳐 유행할 것을 대비해 전년보다 접종도 미리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런 사고로 접종 날짜가 미뤄진다면 앞서 대비한 의미가 있을까? 설상가상, 미리 접종을 마친 (유료) 접종자들에 대한 안전도 확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사에 따르면 백신 접종 중단 결정을 내리기 전 접종한 백신은 전혀 문제없다지만, 최근 의료계의 행태를 지켜보며 불신이 커진 나로선 괜한 의구심이 자꾸 든다. 

◇ 2018년 BCG 비소 검출 사태부터 이번 독감 백신 유통 사고까지

아이 신생아때 BCG 비소 검출 사태에 이어 독감 백신 유통 사고까지. 믿으라는 말, 정말 믿어도 될까요? ⓒ여상미
아이 신생아때 BCG 비소 검출 사태에 이어 독감 백신 유통 사고까지. 믿으라는 말, 정말 믿어도 될까요? ⓒ여상미

돌이켜 보면, 아이 신생아 때도 백신 때문에 황당한 일이 있었다. BCG 접종 때의 일인데, 결핵을 예방하는 이 백신은 피내용과 경피용으로 접종법이 나뉜다. 피내용은 무료, 경피용은 유료인데, 경피용이 흉터가 덜 생긴다고 해서 그걸 맞혔다. 우리 아이가 BCG를 맞았던 그때 내 주변 대부분 부모는 아기에게 경피용을 선택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시기 경피용 백신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비소가 검출되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백신을 회수한 일이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비소가 검출된 백신을 맞았다고 하더라도 그 비소가 피부에 들어갈 확률은 매우 적어 위험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그 경피용 BCG를 맞은 우리 아이 역시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자라고 있긴 하지만, 뉴스를 보고 얼마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지…. 병원만 믿고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나 자신을 얼마나 원망했나 모른다.

정말 이 모든 일이 일부 과정에서 일어난 작은 사고이기를, 인명 피해로 이어지지 않을 가벼운 에피소드이기를 바라고 또 바라지만 솔직히 내 자식의 건강, 생명과 연결된 의료 행위를 더는 믿으라는 대로 믿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특히 최근 위기 상황 속에서도 의료 파업을 이어가던 특수 집단의 행동들은 불신을 떠나 윤리적인 관점에서 ‘왜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을까?’라는 의문이 들게 했었다. 그러나 나는 의사도 아니고 관련 지식도 없어, 의약의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는 방법은 선택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나도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정보를 얻고, 검증된 결과만 놓고 신중히 선택하게 될 것 같다.

해외에 거주 중인 지인들은 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이 정말 훌륭하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그렇다고 동의는 하지만, 100% 확신은 들지 않는 아이러니함이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지 모르겠다. 환자가 의사를, 아니 병원과 나라의 의료 시스템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한다는 현실이 정말 안타깝고 씁쓸하다.

예방 접종은 해결이 아니라 대비책이다. 아직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에게는 최선의 방어막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의 방어가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접종 시기도 무시할 수 없다. 대상자들의 백신 접종이 하루빨리, 그러나 무엇보다도 안전하게 이루어지길 바란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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