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에 사는 아이를 세상 밖으로 구하라
반지하에 사는 아이를 세상 밖으로 구하라
  • 기고=설혜영
  • 승인 2020.10.2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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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주년 특별기고 ‘육아의 미래’⑪] 설혜영 서울 용산구의원·정의당 반지하가구주거권특위 위원장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창간한 베이비뉴스가 올해로 창간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아동과 양육자의 권리를 더 폭넓게 보장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설계해야 할까요. 각계의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베이비뉴스 창간 10주년 기념 연속 특별기고를 통해 ‘육아의 미래’를 전망합니다. - 편집자 말

한낮의 햇볕조차 귀한 집. 비가 오면 오물이 넘치고, 쥐와 곰팡이가 들끓는 집. 이런 집에 영화 주인공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삽니다. 영화 '기생충' 장면 중. ⓒCJ엔터테인먼트
한낮의 햇볕조차 귀한 집. 비가 오면 오물이 넘치고, 쥐와 곰팡이가 들끓는 집. 이런 집에 영화 주인공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삽니다. 영화 '기생충' 장면 중. ⓒCJ엔터테인먼트

제가 사는 동네는 한남뉴타운 대상 지역인 보광동입니다. 서울 '저렴이' 주거지 중 한 곳이지요. 어느 날, 보광동 지하방에 주거위기 가구가 산다는 민원을 들었습니다. 엄마의 '저장강박증'이 심한 탓에 집에 못 살고, 엄마와 두 아이가 임시거주지에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었습니다. 이 가정의 아이들이 제 아들 진우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우리의 일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그중 가장 많은 변화가 '집'에서 일어났습니다. 학교와 직장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내며, 주말이 아니고서야 거의 머무를 일 없던 집의 역할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집은 이제, 휴식과 여가를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 코로나 시대, 집은 이제 ‘대피 장소’… 국가 책임 커져야 하는 이유

코로나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 집에 머물기 캠페인이 권장됐습니다. 집은 이제 학교이자 직장이며, 이웃의 안전을 위해 머물러야 하는 '안전장소'가 되었습니다. 그 말인즉, 집에 대한 국가적 책임 또한 커져야 할 시기라는 것입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반지하가구 실태를 파악하고, 지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아동 주거권 보장 주거 지원 강화 대책을 통해 아동 등 주거 취약계층 지원 강화계획을 내놓았습니다. 이 계획에는 다자녀가구 1만 1000가구와 보호 종료 아동 6000명에게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무주택, 저소득,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하면서 두 자녀 이상을 둔 가정 중 공공임대주택 이주를 희망하는 가정에 맞춤형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거나 금융지원 등 쾌적하고 안정된 주거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 가정위탁, 아동복지시설의 보호 종료 아동 중 주거 지원이 필요한 아동을 지원합니다. 

그러나 매우 안타깝게도, 국토교통부의 2020년 주거종합계획과 2019년 아동 주거권 보장 주거 지원 대책 사업에도 반지하 사는 아동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을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반지하에 사는 아동의 규모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2018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반지하 가구원 중 1인 가구가 38.9%로 가장 많았고, 2인 가구는 20%, 3인 가구는 12.2%, 4인 이상 가구는 28.9%였습니다. 3~4인 가구의 총합인 41.1%에 아동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시흥시에서 반지하가구 실태조사에 나섰는데, 이 조사에서 반지하가구에 사는 아동의 구체적인 규모와 어려움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반지하에서 18세 미만 아동과 함께 거주하는 가구는 전체 조사대상 500가구 중 90가구(18%)였습니다. 이들은 지금 사는 집에서 나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습기 및 곰팡이(66.3%), 채광 부족(54%), 환기 부족(46.2%), 쥐나 해충(40%)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조사를 진행한 조사원들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집 입구에서부터 악취가 나고, 채광이 안 되며, 위생상태도 열악해 아동을 양육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곳이 다수 발견됐다."

"도저히 아이 키울 환경의 집이 아니었다. 냄새는 물론이고 '쓰레기 집'이라 불러도 무방한 집도 있었다. 어떤 집은 도로에 있어서 침수가 잦았는데, 들어가 보니 '이게 사람이 살만한 집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안에 들어가니까 냄새 때문에 숨이 안 쉬어졌다. 햇빛도 하나도 안 들어오고….“

◇ 반지하에 사는 아이를 구하면, 그 아이가 세상을 구한다

국토부의 주거 취약계층 주거 지원 사업대상이 반지하 사는 아이들에게도 닿길 바랍니다. ⓒpexels
국토부의 주거 취약계층 주거 지원 사업대상이 반지하 사는 아이들에게도 닿길 바랍니다. ⓒpexels

무주택 서민의 주거환경 해결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비영리단체 해비타트는, 1989년부터 2014년 사이 미네소타 해비타트의 도움으로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402가구를 연구한 보고서를 2015년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아동은 아동·청소년기에 뇌수막염, 천식, 발달장애 등 질병으로 고통받을 확률이 최대 25%에 달한다고 합니다. 

최소 주거권을 충족한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가구는 보건, 안전, 교육, 자신감, 경제, 지역사회 화합, 만족도 측면에서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특히 입주가정 아동의 50% 이상이 학업 성취도가 상승했고, 90%는 자신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취약계층 아동의 주거 지원 사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지하'에 사는 아동에 대한 실태 파악과 지원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국토부의 주거 취약계층 주거 지원 사업대상이 현재 쪽방, 고시원 거주 아동에서 지하방 거주 아동에게까지 확대되길 바랍니다.

쾌적하고 안정된 주거여건은 돌봄, 교육과 함께 미래세대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이끄는 핵심요소입니다. 특히, 코로나 시대 제2의 학교인 주거여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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