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좋다'는 말, 엄마로 살아보니까 알겠어
'힘들어도 좋다'는 말, 엄마로 살아보니까 알겠어
  • 전아름 기자
  • 승인 2020.10.23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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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동의 쌍둥이들] 엄마가 하는 엄마 생각

【베이비뉴스 전아름 기자】

두 아이가 거실에서 껴안고 뒹굴다 까르르하고 웃는다. 함께 블록도 쌓고, 퍼즐도 맞추고 로봇으로 지구를 지키는 특공대인 양 역할놀이를 하다가 고새 또 장난감 하나 가지고 투덕거리고 싸운다.

“삐삐가 그랬쪄!”, “아니야 찌찌가 그랬쪄!” 사람이 살다 보면 싸울 수도 있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여서 갖고 싶을 수도 있는데 어른이 되어서는 “거, 싸울 수도 있지”라고 말하자니 너무 무책임하고, 그렇다고 명확한 근거 없이 무조건 “싸우지 마!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자니 논리가 달리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 궁리하다 보니 어느새 애들 싸움도 잠잠해졌다.

갑자기 조용해서 애들 노는 곳을 들여다보니 이 녀석들 엉덩이가 묵직하다. 쌍둥이들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비밀스럽게 응아를 하는 습관이 있다. 바로 옆에 너희들 변기가 있는데…. “언제까지 빤~쓰에 응아할래! 엉? 아무리 너희를 사랑해도 똥은 똥이라고~나도 똥 치우기 싫다고!” 우는 흉내를 내니 그게 또 재밌다고 깔깔대고 웃는다. 

◇ 가는 세월 야속하지만, 이렇게 나이 드는 것도 싫지 않다

아이들이 새로운 어휘를 배우고 말할 때, 나는 그 아이들만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전아름
아이들이 새로운 어휘를 배우고 말할 때, 나는 그 아이들만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전아름

1986년에 태어났으니 내 나이가 어느덧 서른다섯. 두 달 뒤면 꼼짝없이 삼십 대 후반이 시작된다. 극동아시아에 태어난 죄다. 저기 어디 서유럽 쪽에 나랑 같은 해에 태어난 친구는 아직 서른세 살일 텐데. 해가 제일 빨리 뜨고, 만 나이를 안 쓰는 나라에 사는 죄로 애매하게 두 살 더 많아졌다.

뭐 이렇게 시간이 후딱간다니.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내년에 서른여섯 되는 내 나이를 한탄하니, 나보다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의아하게 쳐다보며 묻는다. 

“언니는 나이 먹어도 상관없잖아.”

“왜 없어?”

“결혼도 했고, 애도 두 명이나 있잖아.”

“아줌마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거냐? 아줌마도 나이 드는 거 싫다고~.”

인생에서 결혼이란 남들이나 하는 일인 줄로 알고 살다가 덜컥 임신해서 결혼하고 아이 낳은 게 서른두 살의 일.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딱 요즘 적령기에 여차저차 결혼해서 벌써 애들이 네 살이다. 와, 그때 사실 다 때려치우고 시골 내려가서 파나 무 뽑는 알바 하면서 여생 즐기며 살려고 마음먹었는데. 결혼이라니, 임신이라니, 출산이라니. 육아라니.

동생의 말은 내가 아줌마라서가 아니라, 그냥 여덟 살에 초등학교 들어가고, 열네 살에 중학교 들어가듯, 30대에 결혼해 아이 낳고 키우며 살고 있으니, 그냥 그 나이 때에 해야 할 일을 ‘해치웠’으니, 지나간 시간을 후회할 것도,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 무서울 것도 없지 않냐는 말이었을 테다.

아줌마도 나이 드는 거 싫다고 말은 했지만, 후딱 가는 시간 때문에 부아가 치밀어오른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나이 드는 게 썩 나쁘지 않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해야 할 일이 빼곡히 차 있고, 하루를 알차게 보낸 뒤 피곤함에 지쳐 달게 자는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 좋다.

특히 아이들을 볼 때 그렇다. 매일 새로운 어휘를 발견하고, 입으로 말하는 쌍둥이들 보면 매일 그 아이들만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 같아 신비롭고 즐겁다.

“하늘을 봐, 뭐가 있어?”라고 물으면, “구름이 있고, 햇빛이 있고, 공룡이 있고, 사과가 있고, 나무도 있어요”라고 대답하는 엉뚱함에 정말로 즐겁게 웃는다. “이건 무슨 공룡이지? 티라노사우르스인가?”라고 묻는 내게 “아니, 엄마 이건 스테고사우르스잖아”라고 훈계하는 네 살 아이들의 명석함에 절로 박수가 나온다.

놀이터에서 높이가 1m도 안 되는 놀잇감에 오르며, 올림픽에라도 나간 국가대표처럼 “나는 할 쑤 이 따아아!”라고 외칠 줄 아는 자신감, 흥얼흥얼 혼자 노래 부르며 그 기분에 취해 엉덩이를 들썩이며 춤출 줄 아는 즐거움,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먼저 서로에게 나눠주고 꼭 엄마 한 번씩 챙기는 그 다정함과 따뜻한 마음을 발견할 때, 우연이긴 했지만, 그리고 솔직히 피하고 싶긴 했지만, 그리고 정말 많이 힘들었지만, 이 아이들을 만나 정말 다행이고, 내 인생에 와줘서 진심으로 고맙다. 

◇ 엄마에게 묻고 싶다, 엄마도 내가 있어 행복했냐고

이제 엄마의 그 마음을 조금 알겠다 ⓒ베이비뉴스
이제 엄마의 그 마음을 조금 알겠다 ⓒ베이비뉴스

내가 애매하게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고학년 때 즈음. 우리 엄마가 참 예쁘고, 나이도 젊은데 우리 아빠를 만나서, 우리 삼 남매를 키우느라 너무 고생하며 사는 게 눈에 밟혔다.

아무리 철없어도 큰딸은 큰딸이었나. 자꾸 엄마 생각하면 그 어린 맘에도 애가 닳아서, “엄마, 다음 생애에는 엄마 하지 말고 그냥 엄마 ‘독신’ 같은 거 하고 살아”, “엄마, 아빠랑 이혼하고 싶어? 우리 때문에 못 해? 엄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고 했다. 엄마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큼지막하게 웃으면서 “쪼끄만 게”라고 했다. 아잉. 이미 그때 엄마보다 컸는데. 

근데 이제 그 마음을 조금 알겠다. 사는 게 힘들어도, 아무리 어른이어도 묵묵히 참고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 있어도, 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와도 ‘그래도 살아야지’, ‘그래도 해봐야지’라고 견디게 만드는 힘, 살아내게 만드는 힘, 우연히 만나고, 솔직히 피하고 싶었던 만남이지만 내 인생에 큰 기회와 희망과 의지를 안겨준 존재가 아이들이라는 걸. 

나는 엄마가 우리 때문에 고생만 하고 젊고 예쁜 시간 다 날린다고 생각했지만, 살아보니까 아니다. 엄마는 우리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며 산 시간도 즐거웠겠구나.

스물네 살에 갑자기 '아름이 엄마'가 됐어도(엄마 아빠는 1985년 11월에 결혼했는데, 다음 해 4월에 내가 나왔다), 서른 살밖에 안 됐는데 벌써 애가 셋인 아줌마가 됐어도, 이래저래 아빠 때문에 곤란했어도 사는 게 외롭고 슬프지만은 않았겠구나. “엄마! 사는 게 좀 고달팠어도 그래도 우리 덕분에 즐거웠지?” 물어보고 싶은데, 어이구, 세상 떠난 지 벌써 10년이라 물어볼 수가 없네. 그냥 그렇다고 생각해야겠다. 

*전아름 기자는 38개월 남자 쌍둥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육아와 일상과 엄마와 아빠의 고민을 함께 풀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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